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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 박근혜는 이미 알고 있다

화이트보스 2012. 9. 18. 10:52

자연인 박근혜는 이미 알고 있다

기사입력 2012-09-18 03:00:00 기사수정 2012-09-18 03:00:00

박근혜 씨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불리한 문제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면서 아버지의 업적과 시대적 요청 등만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 명백하게 잘못된 것으로 평가가 내려진 유신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등 솔직하지 못한 태도가 거슬렸다.’

1989년 5월 20일자 동아일보 보도다. 박근혜 후보는 전날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출연했다. 박 후보가 직접 박정희 시대를 평가한다니 국민은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박 후보는 이 자리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5·16혁명은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4·19혁명의)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고 했다. 유신을 두고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결정을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안보를 이용했다’는 말을 갖다 붙여서 자라나는 세대도 전부 그렇게 알도록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왜곡이냐”고 반문했다.


박 후보의 이런 발언을 놓고 당시에도 논쟁이 뜨거웠다. 23년이 지난 지금, 같은 논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쯤 되면 박 후보의 생각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다. 그의 측근들이 아무리 조언하고, 박 후보의 발언을 포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거나 박 후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100% 대한민국이니, 국민통합이니 하는 그럴듯한 포장 속에 어설픈 반성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것은 ‘신뢰와 원칙’이란 박 후보의 브랜드 가치만 떨어뜨릴 수 있다.

만약 박 후보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한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 20대에 부모를 잃고 절망과 좌절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40대가 돼서야 삶의 깊이를 깨친 한 수필가의 일기 모음이다.

그는 말한다. ‘이 세상의 많은 문제는 내가 남을 못 다스려서라기보다 자기가 자신을 못 다스려서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박 후보의 문제도 박 후보 자신에게서 비롯됐다. 다시 수필가는 말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시대와 시간, 상황에 따라 가치기준, 판단이 달라진다.’ 박 후보가 유독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평가만은 양보하지 않는 게 문제의 출발이다. ‘세상만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박 후보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게 전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이 범하는 모든 악, 그릇된 언행은 애착심과 오만에서 비롯된다’ ‘극심한 분노도 어느 의미에선 오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박 후보는 수많은 배신자들을 보며 ‘아버지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빛 뒤에는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수필가의 말이다.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제국을 과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쟁터에 몰아넣었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을 울리고 고통스럽게 하였는가.’ 박정희의 경제성장 뒤에는 수많은 피와 눈물이 어리어 있다.

‘인간의 위대함이란 얼마나 자신을 바르게 할 수 있는가, 또 얼마나 남을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며 편안히 해줄 수 있는가 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여기서 인용한 글들은 모두 1993년 발간된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 담겨 있다. 저자는 다름 아닌 박근혜다. 당시 그의 나이 41세였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blog_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