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102동 702호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서울시 부시장 "딸과 '결혼하겠다'는 남자는…"

화이트보스 2012. 9. 18. 14:22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서울시 부시장 "딸과 '결혼하겠다'는 남자는…"

  • 김수혜 기자
  • 입력 : 2012.09.18 03:03 | 수정 : 2012.09.18 07:16

    6부-[2] 결혼식 바꾸는 사람들
    문승국 서울시 부시장, 작은 박물관서 100명만 모여 딸 결혼식

    "살아보니 결혼은 사랑이고 사랑은 사람이더라고요
    딸 보내면서 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굉장히 편했습니다"

    지난 6월 3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휴대전화에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문승국(60) 서울시 부시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시장님, 제 여식(女息·딸)을 지난주 결혼시켰습니다. 사위는 부산 출신으로 지난해 9급 경찰관 시험에 합격한 청년입니다. 사위가 100일 됐을 때 바깥사돈이 돌아가셔서 안사돈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처음엔 반대했는데 노모(老母)가 만나보시더니 '그만하면 됐다'고 하셨습니다. 사회에 나간 지 얼마 안 돼 자기들 힘으로 집 얻을 형편이 못 되므로 우선 저희 집에 들어와 살기로 하고 가족끼리 모여 식을 치렀습니다. 30년 키운 딸인데 요즘처럼 행복해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저희 부부도 정말 행복합니다."

    문승국 서울시 부시장은 “두 아들을 남들처럼 결혼시켰을 때보다 막내딸의 작은 결혼식이 가슴에 아련하게 오래 남는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

    "쑥스럽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던 문 부시장과 어렵게 마주 앉았다. 그는 "안사돈이 반듯한 어른이라 사위도 참 순수하다"면서 "사돈에게 '작은 결혼식을 올리자'고 하니 흔쾌히 허락하셔서, 서울 강북의 조그만 박물관에서 양가 가족·친지와 신랑·신부 친구 100여명이 모여 식을 올렸다"고 말했다.

    문 부시장의 고향은 전남 순천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방 부대 소위로 복무할 때 부인(58)과 만났다. 결혼식 전날 서울로 나와 양복 대신 군복 입고 성당에서 식을 올렸다. 이튿날 아침 둘이 나란히 임지로 돌아가 부대 앞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는 "입던 옷만 가지고 수저 두 벌, 요강 하나 마련해 칼바람 부는 전방 부대까지 따라와 준 아내가 고맙고 예뻤다"고 했다.

    그는 1979년 예편해 서울시로 옮겼다. 10년 전 큰아들(37·회사원), 5년 전 둘째 아들(35·대학 병원 인턴)을 결혼시켰다. 두 며느리 모두 넉넉한 집 딸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람 됨됨이가 마음에 쏙 들더라"고 했다.

    큰아들이 연애하다 군대 갔을 때 문 부시장 부부는 예비 며느리에게 편지도 쓰고 사돈댁에 참기름도 보냈다. 그는 "아들이 좋은 사람 놓칠까 봐 꽉 잡았다"고 했다. 둘째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땐, 막내딸(30·학교 교직원)이 먼저 만나보고 돌아와 "오빠가 여자 보는 눈이 있더라"고 했다.

    그사이 딸도 차차 혼기가 찼다. 이른바 '조건 좋은 신랑감'과 맞선도 봤다. 그때마다 딸은 고개를 저었다. 문 부시장은 속으로'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 걱정을 했다. 그런 딸이 데려온 사람이 지금의 사위였다. 문 부시장은 "제 아버지가 경찰관이셨고 저 자신도 군인 출신이라서, 제복을 입고 조직에 자신을 맡긴 채 사는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면서 "솔직히 속으로 '헤어졌으면' 했다"고 말했다.

    "딸이 마음 아파할까 봐 제 입으론 말 못하고, 아내한테 '당신이 잘 타일러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노모를 모시고 사위를 만나 보더니, 말리긴커녕 사위의 팬이 돼서 돌아왔습니다. '키도 크고 순수하고 사람이 참 괜찮더라. 선봐서 싸우고 살면 불안할 텐데, 사랑하는 사람이랑 살겠다니 얼마나 좋으냐'고 되레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문 부시장은 "저도 위로 두 아들을 남들처럼 보내보니, 우리나라 결혼식이라는 게 날 잡기 전에는 돈 많이 들까 봐 걱정스럽고, 날 잡고 나면 축의금 얼마나 들어올까 걱정스럽더라"고 했다.

    "살아보니 결혼은 사랑이고 사랑은 사람입니다. 막내딸 보내면서 다 내려놓으니 굉장히 편했습니다. 3남매 모두 사랑하지만 막내딸 결혼식이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아련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문 부시장은 "요즘 사위와 한집에 살아보니, 혼자 힘으로 이렇게 반듯한 아들 키워서 우리 집에 장가 보내 준 안사돈이 존경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