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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민주화 운동권이 박근혜로 간 까닭은?

화이트보스 2012. 10. 23. 09:52

과거 민주화 운동권이 박근혜로 간 까닭은?

  • 류근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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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2.10.22 22:36

    4·19부터 민청학련·전대협까지 역대 학생 운동 캐릭터들 참여
    민주화 운동 안의 우파 세력이 좌파 통일전선 배척하기로 한 것
    종북과 친북에는 이들이 天敵… 이제 극좌 전체주의가 투쟁 목표

    류근일 언론인
    정치적·역사적 주제(主題)가 없는 이번 대선 판에 비록 크지는 않지만 한 가지 눈여겨볼 만한 징후가 있다. 박근혜 후보 쪽의 '국민통합위원회'에 역대 학생운동의 캐릭터들이 참여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의 4·19 세대, 1964년의 6·3 세대, 1974년의 민청학련 관련자, 1980년대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 주동자와 전대협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학생운동사를 대표한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왕년의 반독재 투사(鬪士) 중 일부가 감히(?) '박근혜와 통합'하기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의 선택은 민주화 흐름의 한 가닥이 산업화 흐름과 화해하기로 한 '사건'이며, 민주화 운동 안의 우파가 좌파 통일전선을 배척하기로 한 '사건'이다. 이전엔 보기 힘들던 현상이다.

    사람들은 흔히 '민주화 운동…' 하면 좌파를 떠올린다. 민주화 운동이 반(反)기득권, 약자에 대한 배려 등 진보적 이슈에 친근감을 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4·19 이래 민주화 염원의 출발은 다소 진보적이었을지언정 결코 훗날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NL)' 같은 건 아니었다. 그들의 함성은 "대한민국 헌법이 언제 부정선거와 인권 탄압과 특권을 자행하라고 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운동에 극좌 민족해방(NL) 계열이 집요하게 편승하려 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 이르러선 그들이 학생운동의 기장(機長)실을 공중 납치했던 것도 사실이다. 엄혹한 탄압의 시대일수록 극단주의가 온건주의를 압도하기 일쑤인 까닭이다.

    이런 1980년대의 현상은 정치사적 불행이었다. 그리고 사상사적 일탈이었다. 전체주의, 수령 독재, 세습 왕조, 인권 압살, 쇄국주의, 기아(饑餓)체제, 수용소체제를 감싸주는 게 진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운동의 타락, 인식의 오류, 가치의 전도(顚倒)였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런 걸 진보입네 착각해서 덤을 얹어주는 게 오늘의 웃기는 강남좌파 스타일이다. 어떤 와인, 어떤 치즈가 좋으냐를 따지는 주제에 '요덕수용소장(長) 편들기'나 하는 부류를 진보라니….

    세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민주화 우파'의 방치 내지 침묵에도 원인의 일단이 있다. 한쪽으로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횡포 앞에서, 또 다른 쪽으로는 고문치사당하는 박종철 학생의 죽음 앞에서 섣불리 온건론을 폈다간 먹혔을 리도 없지만 그게 초래할 돌팔매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후엔 다르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권위주의는 사라졌고, 권위 자체마저도 "네가 뭔데?"라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북의 귀순병이 전방 막사의 문을 똑똑 두드릴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면 그건 다 된 것 아닌가? 아니, 그 정도를 넘어 대통령이란 사람이 NLL을 아예 '땅따먹기'라고 매도하는 지경까지 됐다.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게 급하다고 해서 종북(從北), 친북(親北), 연북(連北)을 방치할 시대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지금 세상에 종북, 친북, 연북이 무슨 위협이 되느냐?"고 일부 '먹물'들은 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그런 부류가 서구에서처럼 고립돼 있지 않고 '반전(反戰)평화' '우리 민족끼리' '1% 타도' 같은 통일전선 구호 아래 다양한 군중을 한 광장으로 연동(連動)시키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그 연동 고리를 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끊기의 선봉에 '민주화 우파'가 서야 한다. 종북·친북·연북엔 '민주화 우파'가 천적(天敵)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박근혜와 만난 것은 그들의 천적 행보가 불가피하게 박근혜의 정치 행보와 교차한 결과다. 박근혜란 특정인이 중요한 게 아니란 뜻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민주화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극좌 전체주의로 돌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이 좌파 통일전선에 맞설 '대한민국 통일전선', 즉 민주화와 산업화의 합류(合流)를 의욕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 범(汎)좌파는 4·11 총선 때와는 달리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꽤 머리를 쓰고 있다. "한·미 FTA는 이완용…" "제주 해적기지…"라며 난리를 피우지 않는다. 박근혜도 조심조심 경제 민주화 이야기만 꺼낸다. 이 마당에 굳이 득(得) 될 게 없다고 여겼는지 민감한 뇌관은 피해가려 한다. 그렇다면 '천안함' '연평도'는 단군조선 때 일이었나? 동아시아 신(新)냉전도 강 건너 불인가? '민주화 우파'는 이런 핵심 흐리기와 물타기 선거판에 "대한민국다움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뜨거운 논점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는 이에 화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