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23 22:31
김지태씨 재산 '강압 헌납' 등 설립 과정 문제점 국민이 알아
朴 후보 제시한 해법 불충분… 친소관계 확실하게 정리하고
'사회적 논의 기구'서 해결을… 최 이사장, 명예로운 선택하길
-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정수장학회는 부산지역 기업인으로 2·3대 민의원을 지낸 고(故) 김지태씨가 5·16이 일어난 뒤 부정 축재 혐의로 구속되자 국가에 헌납한 문화방송과 부산일보 주식, 토지 등을 기반으로 설립된 공익 재단이다. 부일장학회, 5·16장학회라는 이름을 거쳐 1982년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이 조직의 이사장을 역임했고 그 이후 현재까지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제 온 국민이 이러한 사실을 잘 안다.
온 국민이 또 분명하게 아는 것은 정수장학회의 설립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김지태씨 유족의 분노와 사회적 차원의 문제 제기는 정당하다. 2007년 6월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국가가 공권력의 강요로 발생한 재산권 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명예 회복 및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그리고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7부는 장학회 설립 과정에서 김지태씨의 재산이 강압으로 넘어간 사실을 인정했다.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 30%, 부산일보 지분 100%를 동시 소유하고 있는 현행법 위배 문제 역시 소급 적용 금지라는 법원칙과 무관하게 해결책을 찾는 것이 옳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딜레마를 모르는 바 아니다. 박 후보가 이사장을 물러난 순간 정수장학회와의 관계는 끊어졌고, 이 조직의 운영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외부 자의 간섭이다. 그간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취해온 소극적 입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21일 회견에서까지 고수했던 이 안타까운 진정성은 두 가지 점에서 불충분한 것이다.
첫째, 정수장학회와 같은 특수법인의 지배는 내밀한 인적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이사진에 자기 사람을 심어 의사 결정 과정을 지배하는 것이다. 박 후보와 정수장학회 이사진 간에 아무 관계가 없을지라도 의혹의 소지를 원천 차단하는 근본적인 친소관계의 단절이 아니고서는 사람들의 눈에 정수장학회가 박 후보로부터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둘째, 정수장학회 문제의 해결에 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의혹의 당사자인 정수장학회 이사회에 맡기는 것 역시 온당하지 못하다.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면 '국민적 차원의 문제'인 정수장학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사회적 논의 기구'에서 다루는 것이 합당하다.
대선이 60일도 남지 않은 시기에 우리 사회가 정수장학회 문제로 극심한 갈등 상태에 빠져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해법은 불충분했다. 좀더 적극적이고 충분한 입장 표명을 국민은 갈망한다. 최필립 이사장은 계속되는 사퇴 종용에도 고집스레 버팀으로써 그와 박근혜 후보 사이에 제기되던 특수 관계의 의혹이 사실무근임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너무 늦지 않게 그간의 행적이 '노추(老醜)'가 아니라 '명예'를 지키고자 한 충정이었음을 보여줄 때다. 노병은 사라짐으로써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