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구 이동 통계에서 충청남도에 이어 순유입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충청북도다. 바다를 면한 충남 지역과 달리 온전히 내륙인 충북은 농업에 집중된 지역의 산업 특성상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풀어야 할 오랜 과제다. 하지만 인구 이동 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최근 인구 유입이 늘어나면서 농업도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특화 작물의 해외 수출, 귀농을 통한 선진 영농 기술 도입 등 지자체(군)별로도 ‘부농’ 프로젝트를 속속 가동하며 과거의 천수답식 경영에서 벗어나고 있다.
충북 진천군의 특산물은 ‘곱단이’라는 캐릭터로 상징되는 ‘장미’다. 1989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의 4만㎡ 터에 처음 장미를 심은 것이 시초다. 진천군은 이후 2002년부터 3년여에 걸쳐 장미 무농약 재배 연구 실증 시험 끝에 2004년에 국내에선 처음으로 장미 무농약 친환경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는 처음으로 장미 해외 수출에 나섰다. 현재 진천에서 생산된 장미는 90% 이상이 최대 수출 시장인 일본과 러시아 등으로 나가고 있다. 진천군 이월면 장양리에서 ‘MS명성농원’을 운영하는 조용성 대표도 장미 재배를 통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2006년부터 장미 재배에 뛰어든 조 대표는 지역 내 대표적인 귀농인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과 청주 등지에서 여러 사업을 벌였지만 결과는 늘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1송이 6000원, 장미 전량 수출
마침 고향인 진천에서 수박 재배를 하던 친형의 영향으로 귀농을 결심한 그는 재배 아이템으로 장미를 선택했다. 지역 특산품으로 선정돼 귀농 시·군이나 도 차원에서 지원금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귀농에 따른 혜택만으로 장미를 택한 건 아니다.
장미는 잘만 키우면 채소나 감자·콩·벼 같은 식량 작물의 가격을 훨씬 뛰어넘는 고부가가치 작물이다. 조 대표는 “꽃의 모양에 따라 각양각색인 장미의 매력에 끌렸다”고 말했다. 장미는 ‘특·상·중’ 등으로 품질 선별이 이뤄지는데, 단가가 비싼 일본에는 내수용보다 많게는 10배 높은 가격에 팔린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고향에 돌아와 농사꾼으로 변신하기로 한 조 대표는 재배 방법도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수경 재배’다. 수경 재배는 전통적인 토경 재배, 즉 밭에서 키우던 방법과 확연히 다르다. MS명성농원에서는 유리로 된 온실 안에서 15가지 비료를 적정한 수준으로 혼합한 양액을 각각의 작은 화분 형태로 분리된 장미에 공급한다. 땅바닥이 아닌 배꼽 높이의 베드에서 자동화 시스템으로 양액을 공급받아 자라는 장미는 뛰어난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조 대표는 “토경 재배에 비해 생산량이 35~40% 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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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군 MS명성농원의 조용성 대표는 장미 재배와 전량 수출로 매년 1억 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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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에서 생산된 장미는 100% 수출된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일본이 주요 수출 대상국인데, 얼마 전부터는 러시아 판로를 뚫는 데도 성공했다. 해외시장의 판로 개척은 도 차원이나 전문 수출 대행업체가 나서 진행하는데, 지난 9월에도 조 대표는 이들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아가 100만 달러어치 수출 계약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기후 조건 때문에 장미 재배가 어렵지만 가장 인기 있는 꽃 가운데 하나가 장미다. 유럽과 가까운 모스크바 등은 네덜란드산이 대부분인데, 우리와 가까운 극동 지역(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등)은 지리적 이점과 물류비 강점 때문에 전략적 수출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MS명성농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조 대표를 제외하고 3명에 불과하다. 자동화 설비 덕분이다. 이들의 1년 인건비 3600만 원, 양액 등 비료 구입비용, 전기 온수 보일러 난방비 등이 억 원 단위로 들어가지만 1년 순수익이 1억 원에 이른다는 게 조 대표의 말이다. 총매출액이 2억 원 정도니 절반가량이 순수익으로 남는 셈이다.
평소 들어가는 고정비용 외에 따로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유리 온실 방풍을 위해 설치한 비닐은 5년마다 교체해야 하는데, 작년에 이를 위해 8000만 원을 썼다. 지난해에는 2875㎡(870평)를 늘렸는데, 사업 금액만 4억 원이 들었다. 이 중 지원금을 제외한 자부담은 1억2000만 원 정도. 조 대표는 “유리 온실, 자동 재배 시스템 등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 더 규모를 키우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경제적 성과를 얻기 위한 최소 규모는 3305㎡(1000평) 정도인데, 이를 위해선 평균 4억~5억 원 정도의 초기 투자금이 필요하다.
비교적 돈이 많이 드는 작물이지만 수익과 부가가치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한 번 심은 장미 묘목은 4~5년 정도 키우는데, 1번 꽃을 따 자르고 다시 꽃을 수확하기까지 45일이 걸린다. 1년으로 치면 7~8번 정도 수확하는데, 1번 수확할 때마다 1만5000단 정도를 딴다.
농업 분야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장미는 별다른 피해 없이 포화를 피해갈 대표 작물 가운데 하나다. 전 세계 화훼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곳은 네덜란드인데, 미국은 의외로 장미 산지가 거의 없는 편이다.
조 대표는 “화훼는 수출이 살 길”이라며 “물류비가 적게 드는 일본과 러시아를 집중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장미 한 송이에 2만~3만 원 하는 ‘명품’ 꽃이 내수에서 소비될 정도로 인기가 높고 러시아도 장미 한 송이 수출 가격이 6000원에 이른다. 우리도 재배는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내수에 이런 판로가 없는 이상 답은 고부가가치 장미의 수출에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국내 최고의 ‘명품’ 대추
충북 보은군은 속리산국립공원과 법주사 등이 있는 대표적 청정 지역이다. 예부터 왕에게 진상하던 ‘대추’로 유명한데 풍부한 일조량, 비옥한 황토, 밤낮의 큰 일교차 등에 따른 높은 당도 덕분이다. 보은군은 바로 이 대추를 5년 전부터 지역 특화 작물로 선정해 재배 연구와 농가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보은군에서 생산되는 대추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과 비교해 직경이 평균 2~4mm 정도로 크고 당도 또한 뛰어나 건대추보다 ‘생대추’ 판매에 집중할 정도다. 제수용이나 건강용으로 인식돼 오던 대추를 과수화하는 데 성공한 것. 명품 대추의 비밀은 ‘비가림 하우스’에 있다.
보은군 회인면 건천리 ‘아랑농원’의 김종식 대표는 보은군에서 가장 먼저 비가림 하우스를 이용해 대추 재배에 나선 사례다. 비가림 하우스는 말 그대로 ‘비를 피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를 말한다. 사방 벽은 외부에 그대로 노출시키되 비닐 지붕을 만들어 비를 피하게 만든 일종의 약식 비닐하우스라고 이해하면 된다.
산비탈 같은 노지에서 키우던 대추나무를 하우스 안으로 옮긴 건 보은군이 5년 전에 처음 시작했다. 대추를 지역 특화 작물로 선정한 군의 기술 지도와 군청의 사업 지원으로 김 대표가 처음 비가림 하우스 재배에 나선 것.
선례가 없는 신기술 도입이라는 리스크도 있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대추 자체가 깨끗했다. 노지에서 생산된 대추에 비해 열매의 크기도 2~4mm 정도 커졌고 당도도 훨씬 뛰어났다. 생대추 생산량도 노지 재배 시 1헥타르당 900kg 수준이던 것이 비가림 하우스에선 5000kg으로 폭증했다.
현재 보은군 전체의 대추 재배 면적은 635헥타르로 농가 수도 1233가구에 이른다. 그 중 비가림 하우스를 채용한 비율은 17% 정도다. 전국적으로 보면 보은군에 설치된 비가림 시설이 90%를 차지하고 있다. 흔히 제수·건강식품용으로 많이 쓰이는 건대추가 많이 유통되는데 비해 보은군은 생대추 생산량이 611톤으로 건대추의 2배에 이른다. 껍질이 얇고 무르며 크고 단 생대추를 과일화하는 데 성공한 것. 대추나무의 과수원화로도 볼 수 있는데, 지붕을 씌울 수 있을 만큼 나무의 키를 낮추는 건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소득도 늘었다. 과거 노지 재배는 작황이 좋을 때 3.3㎡당 1만 원 수준이었다. 비가 많이 올 때에는 그나마 반으로 줄기 일쑤였던 게 사실. 하지만 비가림 하우스 도입 후 3.3㎡당 최고 5만 원을 기록하기도 했고 평균으로도 2만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노지에서 작황이 제일 좋았을 때보다 2배는 더 버는 셈이다. 김 대표는 비가림 하우스에서 1년에 최소 6000만 원, 노지 재배로 10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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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이 처음 개발한 비가림 하우스 시설은 대추의 크기와 당도를 획기적으로 올린 명품 대추를 탄생시켰다. 사진은 처음 비가림 시스템을 도입한 아랑농원 김종식 대표와 농원 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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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대추나무는 땅속에 있는 물은 매우 좋아하지만 비는 싫어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대추의 개화 시기가 6~7월에 집중돼 있는데, 장마와 겹쳐 그만큼 착화가 어렵다는 특징도 있다. 노지 재배 시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비가림 시설을 이용해 극복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랑농원의 비가림 하우스 안에는 햇볕을 많이 쬐었을 때 과수가 갈라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스프링클러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다.
김 대표는 1헥타르당 1억5000만 원 정도의 시설 투자비를 들였는데, 군에서 금액의 절반 정도를 지원받았다. 현재 총 1200그루를 재배 중인데, 새로 시작한다면 3년 이상 돼야 경제 수령으로 인정돼 군의 지원을 받게 된다.
아랑농원을 비롯해 보은군에서 생산된 대추는 70~80% 이상이 온라인을 통한 개인 판매로 유통된다. 매년 열리는 대추 축제 후에는 주문량이 밀리기도 한다. 김 대표는 “생대추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먹어본 사람도 별로 없다”며 “일단 맛을 보면 또 사 가기 때문에 지금보다 널리 알려지기만 하면 보은군 전체 물량만으로는 모자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나도 마흔 가까운 나이에 도시 생활을 접고 농사에 다시 도전해 성공한 사례”라며 “요즘 들어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의 문의가 많다”고 소개했다.
딸기 농사로 연 2억 매출
충북 청원군 가덕면 노동2구에서 ‘베리원 딸기농장’을 운영하는 이원섭 대표도 귀농으로 부농의 꿈을 이룬 사례다. 8923㎡(6610㎡는 딸기 재배, 2313㎡는 육묘장) 크기의 농장에서 벌어들인 지난해 매출액은 1억8000만 원이다. 2009년부터 ‘수경 재배’에 나선 것이 수익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기존의 노지 재배에 비해 수확 시기가 20~30일 정도 빨라졌고 이 기간 동안 당연히 출하 가격도 높게 받을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이 기간의 수입이 우리 농장 1년 수입의 40%를 차지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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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수경 재배를 통해 매출액 1억8000만 원을 돌파한 충북 청원군 베리원 딸기농장의 이원섭 대표와 두 아들. 내년에 규모를 늘려 매출 두 배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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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토목 사업을 경영하다 실패를 맛본 후 1994년 고향인 청원군 미원면으로 내려왔다. 귀농을 결심하고 내려왔지만 농사에 대한 정보나 노하우가 거의 없다시피 한 초보였다. 귀농 초기에 선택한 작물은 대표적 농업 작물 가운데 하나인 고추·마늘·열무 등이었다. 하지만 이후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가격이 폭락하며 실패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고부가가치 작물을 찾던 이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딸기였다. 중부지방에는 재배 농가가 적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하지만 초기 2년 정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때부터 이 대표의 본격적인 딸기 공부가 시작됐다.
“충남 논산 딸기 시험장의 김태일 박사가 딸기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 수강했어요. 거기서 딸기 종묘를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죠.”
이후에도 공부는 계속됐다.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원군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았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수시로 김태일 박사에게 물어봤다. 처음 비닐하우스 4동으로 시작했던 농장은 현재 11동까지 규모가 늘었다.
베리원 딸기의 수익 극대화 노하우는 재배 방법에 있다. 역시 수경 재배다. 사람이 작업하기 가장 편하다는 1.5m 높이에 베드를 설치한 뒤 딸기의 생장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포함된 액체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수경 재배는 기본적으로 기술이나 노하우 습득에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초기 투자비용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베리원 딸기는 출하 시기를 앞당겼다는 장점 덕분에 일반 노지 재배에 비해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농장의 연매출은 1억5000만~2억 원 정도다. 이 대표는 내년에 비닐하우스 7동을 더 지어 규모의 영농을 실현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매출액이 지금보다 2배가량 늘어날 전망. 두 아들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첫째와 둘째 모두 아버지를 도와 딸기 농사를 함께하고 있다. 베리원 농장의 브랜드가 ‘삼부자 딸기’인 이유다.
“고맙고 자랑스럽죠. 아이들이 딸기 농업에 희망을 거는 모습을 통해 저 또한 새로운 꿈을 갖게 됐고 앞으로 가족 영농 법인을 설립하겠다는 꿈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귀농과 선진 영농 기법을 도입해 부농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이들의 사례는 또 다른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세 명 모두 비슷한 답을 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요약하면 ‘교육’과 ‘노력’이다. MS명성농원 조용성 대표는 “일단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이 있다면 재배 농가를 직접 찾아가 점심 한 끼 얻어먹으며 배우겠다는 각오 정도는 있어야 해요. 장미는 그렇게 3~6개월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누구나 재배할 수 있어요.”
아랑농원 김종식 대표 역시 자신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한마디로 노력”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농사는 노력한 만큼 돌려준다”고 말했다.
“10명을 만나면 10명 모두에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견학하고 찾아보며 자꾸 물어보고 배워야죠. 요즘은 기술센터나 인터넷 등을 활용하면 좋은 정보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