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박근혜 선거는 이제부터다

화이트보스 2012. 11. 11. 20:14

박근혜 선거는 이제부터다

  • 강천석 주필

  • 입력 : 2012.11.09 19:48 | 수정 : 2012.11.09 22:37

    야권 단일화가 깨부순 건 '3자 대결 이대로' 하는 환상뿐
    간절하고 절실해야 큰 게 보이고, 자기 바꿀 힘 생겨

    강천석 주필

    박근혜 후보도 그 주위도 다들 벼랑에 섰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발언에 날이 서고, 가시가 돋았다. “국가 간의 약속도 뒤엎겠다는 세력, 북방한계선(NLL)을 지킬 의지조차 의심스러운 세력에게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했다, 선거 캠프의 용어는 더 원색적이다. “단일화 쇼는 통 큰 사기극이자 권력을 위해 영혼을 파는 야바위 행위”라고 했다. 근자에 드물게 화력(火力)을 집중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건 발사 포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포격의 정확성 여부다.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진영은 막판 며칠 수억달러를 풀어 TV·신문 광고를 통해 롬니 후보에 대한 사상 최대의 네거티브 공세를 벌였다. “롬니가 당선되면 미국은 최상류층 1% 국민만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네거티브 공세는 과거 이 분야 최악(最惡)의 순위 1·2위를 갈아치울 만큼 격렬했다. 오바마는 덕분에 전통 민주당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고, 부동층 마음을 민주당 쪽으로 돌려세워 투표장에 끌어내 이른바 스윙스테이트를 확보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도덕성은 금이 갔지만 상대 취약 부분을 정확하게 가격(加擊)한 포격술은 일품이었다.

     전쟁에서나 정치에서나 포격술을 향상시키려면 발사 포탄이 정확하게 과녁을 맞혔는지 확인하는 탄착(彈着) 지점 조사가 필요하다. 수천 발을 쐈어도 엉뚱한 곳만 때렸다면 속된 말로 꽝이다. 박 후보 캠프가 야권 단일화 캠프를 향해 날려보낸 포탄의 탄착 지점도 조사해 봐야 한다. NLL을 지킬 의지조차 없는 사람이란 포성(砲聲)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고, 야바위 수법이란 질타에 겸연쩍어하는 게 역연하면, 목표를 정확히 맞힌 것이다. 텃밭 지지층을 이리저리 쪼개 놓던 칸막이가 녹아내리고, 부동층이 박 후보를 바라보는 눈길에 긍정적 변화 기미가 비치기 시작하고, 선거 캠프에서 생색나는 자리는 상대에게 양보하고 험한 일을 서로 자기가 맡겠다고 다툰다면 더 말할 게 없다. 그렇다면 지금 방향으로 계속 포탄을 날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국민 눈엔 박근혜 캠프가 발사한 포탄이 떨어지는 곳마다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게 훤히 보인다. 사람의 인기척도 없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큰 북 한번 치고는 ‘가치 연합’인가 뭔가 하는 쪽으로 재빨리 텐트를 옮겨 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포대(砲隊)가 조준을 새로 하면 저쪽은 ‘문재인 대통령, 안철수 총리’ 또는 ‘안철수 대통령, 문재인 총리’ 하는 권력 배분 문제로 이동해 또 다른 화제를 생산할 것이다. 후보 단일화가 재탕 드라마라는 건 본인들이 더 잘 안다. ‘극적(劇的) 조미료’가 더해지지 않으면 국민 감동이 크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러니까 박근혜 캠프의 굼뜬 대포보다 단일화 캠프는 더 빨리 움직인다.

     박근혜 후보는 발상(發想)을 바꿔야 한다. 상대 꽁무니를 쫓아갈 게 아니라 사령부(司令部)를 포격해야 한다. 상대를 정확하게 겨냥하려면 이쪽 행장부터 가볍게 꾸려야 한다. ‘특별 비서’ 4명, ‘보통 비서’ 10명 이야기는 박 후보 인사 스타일, 측근 관리 스타일을 타박할 때마다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다. 깜짝 발표 스타일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사람도 많다. 선거가 40일도 안 남았다. 1주일에 하나씩 버리고 던지고 바꾼다 해도 7개 문제밖에 정리하지 못한다. 박 후보 쪽 문제가 어디 7개뿐이겠는가.

      솜씨 좋은 화가는 굵은 선(線) 몇 개로 얼굴을 그린다. 잡동사니 공약 수백 개로 턱 밑 사마귀까지 그린다고 미래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서는 게 아니다. 임기 1년차엔 이것, 2년차엔 저것, 3년차엔 그것만은 꼭 실천하겠다는 굵은 공약 몇 개로 미래를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 임기를 손해 보더라도 해마다 선거로 들썩이는 ‘선거 공화국’의 폐해는 반드시 정돈하겠다면 혹 모를까, 당선되면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검토라는 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단일화와 관련해 ‘캠페인 효과’와 ‘무당파(無黨派) 이탈 크기’를 놓고 덧셈 뺄셈이 한창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선거판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게 없다. 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봐서 50대50, 불리하게 쳐서 49대50의 도식(圖式) 그대로다. ‘3자 대결로 이대로 가면’ 하는 어림없는 기대가 깨부숴진 것뿐이다. 수도권·40대·화이트칼라·무당파에서 불리한 것도 변함이 없다. 그 벽은 장도리로는 깨지지 않는다. 해머를 들어도 깨질까 말까다. 해머를 든 적이 없는데 벽이 저절로 무너질 턱이 없다. 굳이 변화를 든다면 PK 지역이 승부처로 부각된 것 정도다.

      ‘지금처럼 뚜벅뚜벅’은 유리한 쪽이 여유 부릴 때 쓰는 말이다. 간절하고 절실해야 큰 게 보이고 스스로를 바꾸는 힘이 생긴다. 박근혜 후보는 아직 충분히 간절하고 절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한 나라의 경제·과학·교육·문화 수준은 장기적·최종적으론 그 나라의 정치 수준과 같아지는 법이다. 흥망(興亡)의 세계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이번 대선은 민족 문제, 통일 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시대와 맞물리게 될지 모른다. 이 역사의 고비길에 국민도 수준 높은 양자 대결 사이에서 선택다운 선택 한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