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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시한부 8개월, 생계 때문에… 항암제 맞으며 택시 운전대 잡았다

화이트보스 2013. 1. 3. 13:39

췌장암 시한부 8개월, 생계 때문에… 항암제 맞으며 택시 운전대 잡았다

  • 이민석 기자
  • 입력 : 2013.01.02 03:08 | 수정 : 2013.01.02 09:24

    40대, 말기암 판정 받고도 운전
    아프다는 기사 아들 전화 받고 부산 사는 엄마, 서울 왔지만 이미 바짝 마른 채 고독死

    31일 오후 2시쯤 부산 사는 이모(여·72)씨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사는 큰아들의 반지하방을 찾았다. 나이 마흔여섯에 결혼도 하지 못한 아들 임모씨, 지난해 5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8개월째 투병 중이었다. 그런 아들에게서 이틀 전 전화가 왔다. "많이 아프니까 엄마가 좀 와줘요."

    이씨가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10㎡(약 3평) 남짓한 방 한구석 침대에 누워 있던 아들 임씨는 숨을 쉬지 않았다. 몸은 갈비뼈 하나하나가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 어머니 이씨는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고 했다. 이씨는 "(아들이) 오라고 할 때 바로 왔어야 하는데…. 아픈 녀석 김장 김치라도 갖다주려고 늦게 올라왔다"고 오열했다.

    아들 임씨는 고교 졸업 후 군대를 다녀와 1991년 인테리어 가게를 해보겠다며 상경했다. 이후 부산의 부모, 남동생 등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 차린 가게 수입으로는 월세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는 대신 술과 담배에 의지했다. 가족들과 자주 왕래하지 않았고, 가까운 친구도 이웃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가족들이 걱정해도 매번 '알아서 잘 할게요' 하던 아들이었다"며 "그게 가여워 가끔 내 주머니 푼돈을 탈탈 털어서 몇십만원씩 보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2010년 4월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 그간 모아둔 600만원을 모두 날린 뒤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주간 근무 대신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야간 근무만 했다. 동료 택시 기사는 "(임씨가) 남들 쉴 때도 기를 쓰고 악착같이 일하던 친구였다"고 했다. 임씨는 그렇게 번 월급 200만원 남짓으로 매달 5만원씩 주택 부금을 넣었고, 1000만원짜리 생명보험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작년 5월, 이번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생계 때문에 한동안 택시 운전을 계속했다. 매달 병원비와 생활비로 나가는 돈만 100만원이 넘었다.

    임씨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질 때쯤 택시 운전을 그만뒀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자신을 돌보던 어머니 이씨를 제외하곤 간호해줄 사람 하나 없었지만, 진통제를 먹어가며 홀로 버텼다. 그렇게 8개월째 투병 생활을 하다 지난 31일 월세 20만원짜리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에서 끝내 숨졌다.

    임씨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31일에도, 새해 첫날인 1월 1일에도 가족들을 제외하곤 빈소를 찾는 조문객이 거의 없었다. 70대 노모는 아들의 영정 앞에서 다시 한 번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