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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갖는 휴가

화이트보스 2013. 3. 12. 11:30

아기 갖는 휴가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 입력 : 2013.03.12 03:04

    증권사 다니던 친구가 결혼 10년 넘도록 자식을 보지 못했다. 부부는 병원을 드나들며 갖은 애를 썼다. 외아들이어서 시골 부모 성화도 대단했다. 보다 못한 의사가 "회사를 쉬고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했다. 여섯 달 휴직하고 부부가 전국을 돌아다니다 설악산에서 덜컥 아기를 가졌다. 어느 기자는 아내가 의사인데도 10년 가까이 아이가 없었다. 그러다 한적한 미국 대학 도시에 연수를 가자마자 아기가 생겼다. 몸과 마음이 편해야 아이 얻고 싶은 소망도 이룬다.

    ▶산부인과 불임(不妊)클리닉 화장실엔 간절한 낙서가 가득하다고 한다. 아이 못 갖는 아픔을 하소연하고, 아이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고, 힘내자고 응원하고, 엄마가 되고 싶다는 평범한 바람이 이렇게나 힘든 것이냐고 한숨 짓는다. 경기도청 사이트에 사연이 오른 마흔네 살 주부도 11년 동안 산부인과 낙서에 울고 웃었다고 했다. "남들은 아이를 잘도 낳는데 왜 나만 이럴까. 내가 뭘 잘못했나.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십 번씩 들었습니다."

     ▶아기를 가지려는 노력은 눈물겹다는 말로도 모자란다. 인공수정을 하려면 배란 유도제 주사를 하루 세 번까지 꽂는다. 유도제 탓에 먹을 것이 마구 당긴다. 몸이 붓고 소화는 안 되고 감정은 널뛰듯 한다. 부부가 병원 앞에 여관방을 잡아놓고 의사로부터 잠자리 날짜를 받기도 한다. 가장 힘든 건 주변 시선과 무심한 한마디다. "아이 없으면 어때. 입양하면 되잖아"라는 말에 눈물을 쏟는다. 정부가 평균 소득의 150%를 버는 가구까지 인공수정 비용을 대줘 돈 부담은 많이 덜었다.

    ▶작년에 바뀐 모자보건법은 불임 대신 난임(難妊)이라는 말을 쓴다. 임신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자연 임신이 어려울 뿐이라는 뜻이다. 부부 일곱 쌍에 한 쌍이 난임이다. 셋에 하나는 원인을 모른다. 천신만고 아기가 들어앉아도 열에 넷은 유산한다. 난임 치료를 받는 사람이 한 해 20만명에 이른다. 직장 여성은 한 달에 몇 번씩 병원 오가기부터 쉽지 않다. 수정난이 잘 자리 잡도록 얼마간 쉬어야 하지만 휴가는 엄두도 못 낸다.

    ▶공무원 '난임 휴가'와 몇몇 은행·대기업 '난임 휴직'도 말뿐이라고 한다.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난임 여직원이 길게는 1년까지 쉬며 아기를 갖게 돕는 휴가제를 도입한다. 일과 스트레스에 임신·출산의 행복을 빼앗겨선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아기 가진 여인의 부른 배만큼 아름다운 모습도 없다. 누구나 그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어야 진짜 살맛 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