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20 03:14
조영남 경남 화개파출소장
노래 나온 지 열달 만에 왔지예
노점 20개가 전부였던 화개, 노래 화개장터 뜨며 불야성
"조영남 소장님, 사진 한번…"진짜 조영남 못지않은 인기
조영남 이름에 화개로 再배치
읍내파술소장이었던 조씨, 하동 강도사건 범인 검거
당시 하동서장, 표창 주다가 "뭐? 이름이 조영남이라고? "화개파출소로 인사 발령
이제 떠날 때가 다 돼가네예…
경찰 27년, 화개에서만 6년, 돌고돌아 이번이 3번째 근무
"가기 전에 진짜 조영남씨랑 손잡고 화개 행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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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화개장터’를 부른 가수 조영남과 이름이 같아 화개의 명물이 된 조영남 화개파출소장이 벚꽃이 한창이던 지난 7일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에 세워진 노래비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는“가수 조영남 에 누가 될까 봐 남들 앞에서 한 번도 화개장터를 부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노래비는 2000년 화개청년회가 세웠다. /하동=김영근 기자
"그러이소, 그러이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손님을 맞는 파출소장의 이름표를 보고 아주머니들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 정말이야! 진짜 조영남이야!" "소장님, '화개장터' 한 번만 불러주세요. 동영상 찍게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를 지키는 화개파출소장은 이름이 조영남(55)이다. 벚꽃길, 화개장터와 함께 화개의 '3대 명물'로 꼽힌다. 조 소장은 "어떻게들 알았는지 벚꽃놀이 철이 절정일 때는 하루에 수백 명이 찾아와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아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서울에 있는 조영남은 못 만날망정 화개장터에 있는 조영남은 만날 수 있다'고 불쑥불쑥 저를 찾아오는 거죠. 다 받아주죠. 파출소라고 위협적이고 허름하고…고거는 시대에 안 맞죠. 친절한 갱남(경남) 경찰 아닙니까, 하하."
◇20년 전… 있을 건 없고, 없을 게 있었다
조 소장은 노래를 청하는 관광객에게 껄껄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노래는 됐고, 제 사인이나 받아가이소." 그는 A4지에 또박또박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 '화개 방문을 축하합니다. 저는 화개파출소장 조영남입니다. 2013년 4월 7일.'
조영남 소장은 화개파출소에 세 번째 부임해 일하고 있다. 27년 경찰 경력에 화개파출소에서 지낸 기간이 6년이 넘는다. 하동경찰서 산하 파출소는 10개다. 조 소장은 "한 파출소에 두 번 근무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세 번을 왔다. 이게 다 '그 조영남' 때문이다"라고 했다.
조 소장과 화개파출소의 인연은 21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남해 출신으로 하동경찰서 소속 경장이던 그는 1992년 3월 화개파출소에 처음 부임해 2년을 일했다. 이름과 무관한 인사(人事)였다. 노래 '화개장터'가 발표된 지 10개월 만이었다. 장터의 장사꾼들은 노래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불러올 줄 상상하지 못했다. '말단 경찰 조영남'에 신경 쓰는 이도 거의 없었다. 장터는 초라했다. 화개천(川) 주변의 노점 20여개가 전부였다.
"산청 사람은 장작을 짊어지고 오고, 광양 사람은 소금을 짊어지고 오고, 저 아랫목(남해) 사람들은 배에 바닷고기(생선)를 싣고 와서 물물교환 수준의 거래를 했지요. 그런데 노래가 뜨면서 장터가 엄청 커졌죠. 화개 주민들은 그러죠. '조영남이 때문에 우리가 먹고산다'고."
당시 화개는 가사처럼 '없을 건 없는' 동네는 아니었다. 화개 사람들은 장날 와서 물건을 팔고 가는 섬진강 건너 전남 광양 사람이 아니꼬워 텃세를 부렸다. 조 소장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광양 사람들이 이 동네 식당에서 밥 먹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지역감정이 거칠었다"고 말했다.
1996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 총재 신분으로 '영남 스킨십'을 내세우며 화개장터를 찾았다. 가수 조영남이 함께 와서 '화개장터'를 열창했다. 경찰 조영남은 하동 읍내에서 근무할 때여서 보러 가지 못했다. 유세장을 찾은 사람들은 태반이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하동 사람들은 호남 행사라며 시큰둥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손뼉 치며 '화개장터'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면서 당시 행사는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화개장터는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굳었다.
조영남 소장은 말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둘째치고, 전국이 하나 되자는 노래잖아요. 그 중심이 화개장터라는 거잖아요. 그 노래로 장터의 지역감정이 많이 없어졌죠, 당연히. 관광객들이 계속 물었거든요. 지역감정 정말 없느냐고. 스무 해 그런 얘기 듣는다 생각해 보이소. 티격태격할 수 있겠습니까."
1993년 시작된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자리를 잡아 관광객은 계속 몰려왔다. 하동군은 2000년대 초 지금의 장터 부지를 매입해 화장실·주차장 같은 편의 시설을 늘렸고 점포는 80여개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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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화개파출소장은 화개장터를 찾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기꺼이 응한다. /하동=김영근 기자
◇화개장터의 조영남, 하동의 명물이 되다
조 소장은 12년 만인 2006년 3월, 화개파출소장 신분으로 화개장터에 돌아왔다. '화개의 조영남'으로서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됐다. 파출소 뒤에 있는 공터를 주민과 관광객이 찾아와 쉴 수 있는 정원으로 손수 꾸몄다. 동백나무, 녹차나무 등 나무 100여 그루를 심고 지리산의 나무를 주워다 벤치와 식탁을 만들었다. 파출소 앞 주차장도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게 개방했다.
관광객들은 파출소장 이름표만 보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단체여행 손님을 데려오는 여행 인솔자 사이에 소문이 퍼져 '파출소장 조영남'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조영남 사인을 안 받아 오면 버스에 안 태워준다'고 장난을 치는 인솔자들도 있었다. 2년이 금세 흘렀다. 2008년 2월, 화개에서 한 시간 거리인 남해대교 북쪽 금남파출소로 발령이 났다. 그는 "내가 사랑을 너무나 많이 줬던 화개장터였고, 떠나려니 울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금남파출소장을 거쳐 하동 읍내파출소장으로 일했다. "화개파출소 뒤에 심은 나무가 걱정돼 틈틈이 손질을 하러 왔죠. 그런데 내 관할도 아니고…. 늦은 밤 눈치껏 했습니다."
2011년 1월 말, 설 연휴 직전. 하동 읍내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에 농촌이 술렁였다. 보석상 주인을 때려 다치게 한 범인이 일주일 만에 붙잡혔다. CCTV 화면을 분석해 범인을 잡은 주역이 조영남 당시 읍내파출소장이었다. 하동경찰서장이 표창장을 수여했다. "표, 창, 장. 읍내치안센터 조영남 경위. 귀하는 평소 투철한 사명감과 국가관을 가지고 직무에 정려(精勵)하여…잠깐. 뭡니까? '조영남'이라고요?" 서울에서 일하다 갓 부임했던 김성섭 당시 하동경찰서장(현재 경기지방경찰청 정보과장)은 "조영남이 화개가 아닌 다른 파출소에 근무한다는 것이 희한하게 느껴졌다. 조영남 경위를 화개에 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과학적 인사'라는 믿음이 즉각 들었다"라고 말했다. "화개파출소장, 그 이름은 조영남. 바로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습니까."
◇"조영남한테 누가 될까"…'화개장터' 절대 안 불러
한 달 후인 2011년 3월. '과학적 인사' 덕에 조영남 소장은 화개로 돌아온다. 그는 "오랜만에 친정 가는 기분이 이렇지 않나 싶더라. 예전보다 더 신나게 일했다"고 말했다. 파출소장 임기는 2년 정도다. 올해 3월로 2년을 채웠다. 그는 "다음 인사가 곧 있을 것이다. 화개에 세 번은 와도 네 번은 오기 어렵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경찰 조영남과 가수 조영남은 만난 적도, 이야기해본 적도 없다. 경찰 조영남이 가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를 남들 앞에서 불러본 적조차 없다. "제가 김영남, 이영남이었으면 불렀죠. 조영남이다 보니까 가수 조영남한테 누가 될까 싶어서 절대로 안 부릅니다. 혼자 몇 번 불러봤는데, 그 노래가 은근 어렵습디다."
조 소장은 말했다. "가끔은 '화개장터'라는 노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삶이 참 밋밋했을 것 같아요. 경찰 공무원이니 다른 데로 가라면 가야 하겠지만 가수 조영남씨를 여태 못 본 게 아쉬워요. 떠나기 전에, 두 조영남이가 손잡고 화개를 한번 행진해보고 싶은 게 소망입니다."
“영남님, 화개장터에 CCTV 한 대 놔주이소”
소장 조영남이 가수 조영남에게
조영남 화개파출소장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조영남의 '화개장터'다. 그러나 '18번'은 따로 있다. 나훈아의 '어매'다. 애절한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조영남이 들으면 섭섭하겠다"고 하자 그는 "나도 섭섭한 말 하나 하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 한 인터뷰를 보니까 조영남씨가 '화개장터' 노래로 돈 벌어서 집을 샀다고 하대요. 조영남씨가 화개장터를 위해서도 뭔가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는 벚꽃 무늬 바탕의 종이에 쓴 편지를 꺼냈다.
'존경하옵는 조영남님께. 저는 하동경찰서 화개파출소장 조영남입니다. 찾아뵙고 인사 드려야 하나 그렇지 못한 점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화개장터에 CCTV 한 대를 설치하려 하는데 가수 조영남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실 돈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화개장터에 상징적으로 '조영남 CCTV'가 설치됐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어서 편지를 써봤어요. 주소를 몰라 못 보내고 있는데, 그 양반이 편지를 받으면 거절은 안 할 것 같아요. CCTV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화개에 꼭 한번 놀러 오이소. 제가 섬진강 재첩국 한 사발 대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