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영종대교 못 미쳐 수도권매립지가 보인다. 매일 2500만 수도권 주민의 생활쓰레기가 들어와 묻히는 곳이다. 이 황량한 곳에 오아시스처럼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드림파크골프장이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매립지로 만들기 위한 시민 체육시설이다. 지난해 여름 완공됐지만 문이 잠겨 있다. 밥그릇 싸움의 결과다. 여전히 진행형인 이 암투의 전말을 들여다본다.

환경부, 특혜 논란에도 민간 위탁 고집
1일 찾아가 본 인천시 서구 백석동의 드림파크골프장은 봄의 절정이었다. 잔디 새싹이 파릇하게 돋아나고 길섶에는 야생화들이 지천이었다. 몇 년 전까지 땅속 수십m 깊이까지 쓰레기를 파묻었던 곳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붕과 외벽이 청동 녹색을 띤 클럽하우스는 여느 명문 골프장 못지않은 자태를 뽐냈다.
그러나 클럽하우스 내부와 필드의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었다. 꽃샘바람만 휘몰아칠 뿐 인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런데도 사업을 시행한 수도권매립지공사는 9개월째 매월 10억원의 유지관리비를 부담하고 있다. 골프장 입장료 수입(그린피 10만원 가정)까지 감안하면 월 25억원 이상을 날리고 있는 셈이다. 진입도로도 나기 전에 하루라도 앞당겨 개장하는 것이 골프장 사업이다. 민간 사업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골프 시즌을 맞아 부킹 전쟁이 벌어져야 할 곳이 왜 이런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감독기관과 공기업, 주민, 지자체가 한데 엉켜 운영권 싸움을 벌인 결과다. ‘주인이 따로 없는 공공 골프장’을 놓고 저마다 ‘공익의 사유화’에 몰두했다. 완공한 지 9개월이 넘었지만 단 한 차례도 문을 열지 못했다. 인천경실련 김송원 사무처장은 “주인 없는 공공재의 이권을 놓고 우리 사회 관료 집단이 서로 다투는 적나라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매립지공사, 자회사 세운 뒤 실권 쥐려

드림파크골프장은 쓰레기 매립이 끝난 제1매립장의 153만㎡ 부지에 36홀 규모로 조성됐다. 이 땅에 잔디를 심은 건 2006년이었다. 2010년 9월에 착공했지만 핵심 인프라인 잔디가 이미 심어져 있어 진척이 빨랐다. 건설비로는 수도권 지자체들이 낸 매립지 기반시설부담금 733억원이 투입됐다. 인근 지역 땅값까지 고려하면 수천억원대의 골프장인 셈이다. 조춘구 전 수도권매립지공사 사장은 “세계 최대의 쓰레기매립지를 환경 명소로 가꾸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라고 밝혔다.
운영권 다툼은 코스 공사가 채 끝나기도 전인 2011년 초부터 조짐을 보였다. 그해 3월 매립지공사 회의실에서 회의가 열렸다. 환경부 실무팀장과 환경부 출신의 공사 실무자들이 골프장 민간 위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전문가 자문회의였다. 하지만 매립지공사 사장은 이런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회의는 참가자들의 의견 충돌로 결론 없이 끝났다.
환경부는 경영 효율화를 이유로 민간 위탁을 내세웠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몸집 줄이기’ 정책도 명분이 됐다. 그러나 수백억원을 들인 골프장을 민간업자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특혜 논란이 문제였다. 매립지 주변에서는 전·현직 환경부 출신의 ‘환경 마피아’들이 민간 위탁 방식으로 사실상 골프장을 접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반면에 매립지공사 측은 자회사를 설립해 골프장을 운영하려 했다. 주민 복지와 아시안게임 활용 등 공공성 확보가 명분이었다. 또 쓰레기 매립으로 아직 완전하게 다져지지 않은 골프장 토양 관리를 위해서도 공기업의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이 역시 공기업의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구실이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때부터 매립지공사 측과 감독관청인 환경부 사이의 암투가 본격화됐다. 2012년 8월에 개장한다는 일정을 잡은 매립지공사는 연초부터 환경부에 운영방식을 빨리 정해 줄 것을 거듭 재촉했다. 환경부가 6월 들어 자회사 설립을 승인하면서 운영방식 결정은 가닥을 잡는 듯했다. 이 무렵 이해하기 힘든 해프닝이 일어났다. 7월 초 골프사업에 종사한다는 이모씨가 환경부 기자실 등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는 “민간 위탁 업체를 선정하는 경쟁입찰에 대비해 1년 전부터 15명의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준비해 왔다”며 “환경부가 민간 위탁 운영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공사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전·현직 환경부 관계자들이 연루된 여론몰이성 기자회견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그 직후 환경부는 다시 자회사 설립을 중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주민 이어 인천시도 "운영 참여하겠다"
환경부와 매립지공사가 다투는 사이 인천시와 주민들도 제 몫 찾기에 나섰다. 관련 법률에 따라 매립지 주변 2㎞ 내 주민들로 구성된 주민지원협의체는 민간 위탁 철회를 요구하며 9월 초부터 50여 일간 쓰레기 준법감시 활동에 들어갔다. 매립지에 들어오는 쓰레기에 섞인 음식물·재활용품 등을 엄격하게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반입 차량의 90%가 이들에 의해 되돌려 보내지면서 쓰레기 대란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인천시도 운영 참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인천시는 “특혜성 민간 위탁은 안 된다”며 “인천시의 운영 참여가 보장되지 않으면 모든 인허가를 불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천시는 준공검사와 골프장 사업, 식당 영업 등에 관한 인허가권을 쥐고 있다. 인천시의회 등은 “인천시민 무료 입장 등도 관철돼야 한다”며 가세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운영권 다툼의 배경에 카트 사업권이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카트 사업은 골프장 운영 이권의 노른자위로 불린다. 대당 1000만원이 넘는 카트 사용료는 보통 1라운드당 8만원이다. 내구 연한이 5∼7년이지만 대개 6개월만 운영해도 투자금이 회수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드림파크골프장에는 카트 150대가 필요하다. 따라서 하루 예상 수입이 1200만원, 연간 수입은 36억원에 이른다. 매립지공사의 전직 간부는 “공사 단계에서부터 매립지공사에는 운영권 관련 민원이 쇄도했다”며 “정치권은 물론 전직 관료, 매립지 주변 주민, 골프 사업자 등 수십 곳에서 운영권을 넘겨달라는 청탁이 왔다”고 말했다. 한 업체에서는 “카트를 포함해 골프장을 무료로 운영해 주겠다”고 제의했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가 열리자 환경부는 골프장 개장 지연에 따른 책임 소재로 코너에 몰렸다. 환경부는 주민들과 협의해 골프장 운영방식을 결정하되 운영 수익은 전액 주민 지원 사업에 사용한다는 내용의 상생협약을 맺었다. 이때부터 주민협의체는 환경부의 우군이 됐다.
난지도 골프장처럼 공사비만 날릴 가능성
상생협약 이후에도 골프장 개장은 계속 표류했다. 자회사 운영을 고수하던 조춘구 매립지공사 사장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경질됐다. 그 이후 4개월째 공석 상태다. 민간 위탁을 추진했던 환경부 간부들도 정부 교체와 함께 퇴진했다. 그러는 사이 골프장 개장 문제는 아무런 진척 없이 하루 1억원 가까운 유지비용만 까먹고 있는 상태다. 환경부 홍정섭 폐자원에너지과장은 “골프장 개장 문제는 주민들과 공사 간의 상생협의회에 맡긴 상태”라며 “개장 시기에 대해 환경부로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 상태로 가다간 공사비만 고스란히 날린 서울 난지도 골프장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2001년 서울시와의 협약에 따라 난지도에 퍼블릭 골프장을 만들었지만 주민 반대에 막혀 개장도 못한 채 골프장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다시 공원으로 만든 바 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 연구소장은 “막대한 예산 낭비와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는데도 책임을 질 사람이 없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환경부와 매립지공사, 인천시와 주민 등 4색의 이해관계가 뒤엉켜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라며 “정부가 나서 교통정리를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