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03 13:47
미사일 쏟아져도 투자 봇물, 위기 누른 혁신의 가능성 2006년 레바논戰爭 때도…
논쟁 권하는 사회, 학교나 기업에서 자신의 의견·아이디어 자유롭게 얘기하는 문화
2000명당 1명 벤처기업가, 아이디어만 있다면 정부가 벤처기업 지원 돈 없어 창업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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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마 그룹 한국 지사장
이상한 것은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도 전 세계 벤처캐피털이 이스라엘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6년 레바논 전쟁 당시 워런 버핏의 투자였다. 헤즈볼라의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지고, 전 세계 뉴스가 미사일 폭격이 만들어낸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이스라엘의 어두운 현실을 보도하는데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이스라엘에 집중 투자했다.이스라엘 기업이 대주주였던 한국의 대구텍도 그 투자 작품의 하나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기보다 혁신적인 기술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그가 진정한 '투자의 귀재'임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무엇일까. 나는 그 배경에 '후츠파(Hutzpa) 정신'이 있다고 본다. 히브리어 '후츠파'는 본래 '당돌한' 혹은 '버릇없는'이란 뜻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남다른 근성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요즘 한국에도 이스라엘 배우기 바람이 일면서 이 단어가 유행하는 것 같다.
◇학교도 기업도 '계급장 떼고' 자유롭게 토론
어릴 적부터 내가 다니던 이스라엘 학교 교실은 굉장히 시끄러운 토론장이었다. 선생님과 어린 친구들은 항상 말다툼하듯 열띤 토론을 했다. 난 항상 선생님께 그런 '버릇없는 짓'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말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기 의견과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지며 선생님으로부터 끝내 해답을 얻어낸 다음에야 잠잠해졌다. 선생님도 답을 바로 주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하니"라며 논쟁을 부추겼다. 아이들 대답이 틀렸다 해도 선생님은 절대 아이를 꾸중하지 않았다. 실패는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듯…. 아이들이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도록, 몇 번이고 다시 노력하도록 도왔다.
어릴 적부터 배워 왔던 후츠파 정신은 이스라엘 사회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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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학생들이 이스라엘 북부 도시 나블루스에 있는 한 신학교에서 유대교 경전의 내용을 두고 토론하고 있다. 유대인의 오랜 율법과 지혜를 다룬 책 탈무드는 기본적으로“랍비(스승)의 가르침에 100% 동의하지 말고 항상 반대편에 서서 논쟁하라”고 가르친다./Corbis 토픽이미지
오래전 요즈마그룹이 초기 단계 때 투자했고 현재 고성장하고 있는 이스라엘 인터넷 기업 콘딧(CONDUIT)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장·임원이 모두 참석한 회의에 동참했는데, 그 회사 말단 사원이 모든 사람 앞에서 사장 의견에 거듭 반대하며 자기 생각을 내세우는 장면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 새내기 사원의 앞날이 정말 걱정됐다. 놀라운 것은 그 사장의 대응이었다. 말단 사원의 의견을 경청하며 다른 직원들에게도 의견을 묻곤 했다.
미팅이 끝난 후 사장에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사장은 "회사 직원들은 내 가족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견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직원들 역시 아이디어와 의견이 있으면 직급을 떠나서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성공하는 기업은 항상 아이디어가 가득해야 한다. 임직원들과의 수평적인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780만명 인구에서 노벨상 수상자 10명을 배출한 저력은 바로 이런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밀어주는 정부
정부와 기업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벤처계에서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창업 자금이 없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이디어가 있는 벤처에는 항상 기회를 열어준다. 현재 이스라엘의 국가 대표 기업이라 할 수 있는 100개 이상 나스닥 상장 벤처기업이 이러한 정부 지원을 통해 실패를 딛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구 780만명의 이스라엘에는 벤처기업이 약 4000개가 있다. 인구 2000명당 1명은 벤처기업 대표인 셈이다.
이스라엘 언론에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벤처 사장의 성공 스토리가 가득하다. 내 주변의 엘리트 친구들은 의대·법대보다 장학금 지원을 받고 이공계를 더 많이 선택했다.
※ 이원재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년 전 신학을 전공한 부모님을 따라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예루살렘에서 현지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히브리대학에서 경제학과 통계학을 전공했다. 2011년부터 2년간 한국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이스라엘사무소에서 과장으로 근무했다. 올해 초 이스라엘 정부 주도 벤처캐피털인 요즈마펀드의 관리 회사인 요즈마그룹 한국 지사장에 임명됐다.
☞후츠파
후츠파는 ‘시건방진’ ‘예의 없는’ ‘주제넘는’ 등의 뜻을 가진 단어. 이스라엘의 국민성이나 문화를 설명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일부에선 유대교 율법서인 ‘탈무드’에 이미 이런 이스라엘 민족의 특성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탈무드는 랍비와 제자가 논쟁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여기서 제자는 랍비의 가르침에 꼭 찬성해서는 안 되며, 랍비가 비록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제자는 랍비에 반하여 논쟁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후츠파 정신이 없으면 뒤처져 낙오하거나 자신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뿌리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