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일본

전쟁땐 총알받이… 평시엔 멸시” 오키나와 분노로 들끓어

화이트보스 2013. 5. 24. 11:13

전쟁땐 총알받이… 평시엔 멸시” 오키나와 분노로 들끓어후텐마 기지 이전 갈등 속 독립 목소리 갈수록 힘받아 동아일보 | 입력 2013.05.24 03:14 | 수정 2013.05.24 09:54

[동아일보]

오키나와(沖繩) 중부 요미탄(讀谷) 촌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지바나 쇼이치(知花昌一·64) 씨. 그는 미군기지 철폐를 주장하며 각종 집회에 참석해왔다. 일장기인 히노마루(日の丸)를 불태워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다. 하지만 '오키나와 독립'을 주장한 적은 없었다. 피를 흘려 투쟁해야 독립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건 무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비가 오던 21일 지바나 씨의 집을 방문한 기자에게 그는 "올해부터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키나와 주민이 어떤 주장을 해도 중앙정부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정부에 항의하는 최후 수단이 바로 독립"이라고 말했다.

최근 오키나와에서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모임과 단체도 생겼다. 왜 지바나 씨 같은 사람이 늘고 있을까.

○ 잊을 수 없는 분노

22일 오키나와 기노완(宜野灣) 시의 사키마(佐喜眞)미술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그림 앞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멈췄다. 가로 8.5m, 세로 4m 크기의 오키나와전도(戰圖).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상 전투가 벌어졌던 오키나와 전쟁을 그린 것이다.

가장 섬뜩한 장면은 언니와 여동생이 상대방 목에 매단 줄을 당겨 서로 죽이는 것이다. 바로 옆에는 형이 동생의 가슴에 죽창을 찌르는 장면도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집단 자살을 묘사한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출판된 '고등학교 류큐·오키나와사'를 보면 1000명 가까운 주민이 "집단 자결하라"는 군부의 명령을 받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일본군은 수류탄을 나눠줬다. 가족끼리 원을 그리고 모여 수류탄을 터뜨렸다. 간혹 불발도 있었다. 그 경우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죽이고 자신도 자결했다. 당시 미군에 붙잡히면 잔혹 행위를 당한다는 유언비어가 만연했다. 가족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끊는 게 마지막 애정 표현이었다. 섬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2만 명이 오키나와 전쟁에서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본 군부가 미군의 본토 공격을 막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총력전을 벌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또 민간인에게 집단 자결을 명령한 일본군은 미군에 투항해 살아있는 모습을 봤다. 그때부터 오키나와 주민들은 본토에 대해 지울 수 없는 적개심을 가지게 됐다.

오키나와 제1의 도시인 나하(那覇) 시내의 해군사령부 지하 터널에는 오키나와 전쟁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옛 류큐 왕국의 왕이 살던 슈리 성 아래에는 군부가 피신했던 터널이 아직도 있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과거 일본군의 만행을 떠올린다.

○ 차별과 무시는 아직 현재진행형

"지금 헬기 한 대가 학교 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소음 속에 우리 아이들이 편히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21일 오후 기노완 시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출입문.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아카미네 가즈노부(赤嶺和伸·59) 씨는 "오스프리(미군 수직이착륙기) 배치 반대, 미군 철수"를 외쳤다. 그는 기자에게 "미군이 주둔하면서 오키나와 주민의 인권은 사라졌다. 범죄를 저지른 미군이 부대로 도망가면 경찰이 제대로 처벌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본 전체의 미군기지 중 74%(면적 기준)가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 보니 각종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오키나와 현에 따르면 1972년부터 2010년까지 미군의 범죄 건수는 5705건으로 월평균 약 13건이다. 성폭행도 수시로 일어난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에서는 어린이용 '방범 부저(벨)'를 판매하고 있다. 주된 구매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 여성이다.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귀머거리'다. 오키나와 주민 약 10만 명이 지난해 말 '오스프리 결사반대'를 외치며 데모를 벌였지만 결국 후텐마 기지에 오스프리가 배치됐다. 기노완 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후텐마 기지를 현 밖으로 이전해 달라는 요청도 수년째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현 북부 나고(名護) 시 헤노코(邊野古)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88) 전 오키나와 지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오키나와 주민들 중에 '독립하자'는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지금처럼 강하지는 않았다"며 "만약 일본 정부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한다면 사상 최악의 충돌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높아지는 '독립 쟁취' 목소리

최근 오키나와 주민들은 본토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배신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8일 오키나와가 미군 지배 아래 들어간 굴욕의 날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정부 행사로 '주권회복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당시 일왕에 대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상당수 오키나와 주민은 전쟁 당시의 아픔을 떠올렸다고 한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방문해 "풍속업(매춘업)을 더 활용하라"고 말했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의 발언도 자존심을 건드렸다. '오키나와 여성들은 매춘업에 종사해도 괜찮다'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하 시내에서 '쓰치(土)'라는 상호의 바를 운영하는 고모 씨(64)는 "차별당하며 살 바에야 독립하는 게 낫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오사카에서 11년 전에 이주해 온 본토인인데도 오키나와 원주민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이달 15일 '류큐 민족독립종합연구학회'라는 단체도 만들어졌다. 학계가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창립 멤버인 도모치 마사키(友知政樹) 류큐국제대 교수는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직 소수지만 본토로부터의 차별을 느끼는 주민은 늘고 있다"며 "앞으로 다른 단체와 연계해 독립 후 문제들을 논의하면 반드시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키나와=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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