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17 03:04 | 수정 : 2013.07.17 03:13
대법원이 전씨가 대통령 시절 조성한 비자금과 관련해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한 지 16년이 넘었다. 전씨는 그동안 24%인 533억원만 납부했다. 같은 날 추징금이 확정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91%를 납부했다. 전씨는 재판에서 "예금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집 별채가 경매될 때 발생한 세금 4000여만원도 안 내고 버티고 있다. 그러나 2004년 차남 재용씨에 대한 수사에서 전씨 비자금 73억원의 꼬리가 밟혔다. 전씨와 그 가족들이 비자금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전씨가 숨긴 돈은 대통령 재직 때 기업에서 받은 것이다. 그걸 반납하지 않고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과 일가는 호화생활을 해왔다. 전씨가 왕년의 부하들을 10여명씩 데리고 떠들썩하게 벌이는 단체 골프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3남 1녀인 자녀들의 재산은 확인된 것만 1000억원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남이 알 만한 사업을 해온 건 장남밖에 없다. 그 사업의 종잣돈도 어디서 난 것인지 알려진 게 없다. 나머지 다른 자녀와 친척은 사업다운 사업을 한 적도 없다. 그럼 무슨 돈을 어떻게 굴려서 그 많은 재산을 쌓았겠는가.
법은 전씨 앞에서 16년간 무력했다. 검찰이 차남 재용씨 수사에서 드러난 73억원을 환수하지도 않았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검찰은 의지만 있었다면 지난 16년 동안 언제든 전씨 일가(一家)에 대한 전면 수사를 할 수 있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16년 동안 두 개의 진보 정권과 하나의 보수 정권이 지나갔으나 모두가 전씨 일가가 법을 농락하는 걸 못 본 체했을 뿐이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전씨로부터 1672억원을 모두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가의 재산도 그것이 전씨 것이라는 증거를 잡기 전에는 환수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1672억원의 국고 손실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잃었다. 전씨가 16년간 갉아먹어온 것은 법치주의다. 전씨의 존재 자체가, 힘이 있으면 법이 비켜간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돼 있다. 법치주의 훼손의 이 명백한 증거를 두고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 법과 정의를 요구할 수 있는가.
전씨는 이제 82세를 넘겼다. 인생의 막바지다. 전씨 주변에선 그의 태연한 거짓말을 마치 무슨 대단한 호기(豪氣)나 되는 양 떠받들었다. 이것은 호기가 아니라 국법과 국민에 대한 반항이다. 전씨는 끝내 이렇게 인생을 마칠 생각인가. 그에게 실제로 호기가 있다면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과 대통령직의 명예, 나아가 나라의 격(格)에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도록 자신과 일족(一族)의 재산을 정리해야 한다. 전씨가 법치주의에 낸 상처를 자기 의지로 치유하고 떠날 길은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