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정수기 물을 마셨다고 해서 당장 치명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가정·직장·식당 등에서 정수기 물을 마셔왔다. 지금도 그 물로 밥을 짓고 커피를 탄다.그만큼 정수기 물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위의 사례처럼 최근 들어 정수기 물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이 늘어나고 있다.
정수기가 물을 걸러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국내에서는 역삼투압 방식이 대부분이다. 정수기 10대 중 8대가 이 방식의 제품이다. 수돗물을 거름막(필터)에 통과시키면 세균과 바이러스 등 유해 성분이 걸러진다. 문제는 물에 녹아 있는 미네랄 성분까지 여과된다는 점이다. 칼슘·칼륨·마그네슘·나트륨 등 미네랄은 인체 구성의 3%를 차지하며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성분이다. 결과적으로 정수기 물은 말 그대로 무색무취의 물(H2O)이다.
국제물학회 "정수기 물 마시지 말아야"
상명대 화학과에서 더 직접적인 실험이 진행되었다.
중략.. 그러나 미네랄이 세포 건강과 밀접한 관계인 것은 사실이고, 세포의 건강 상태는 암과 같은 질병과 연관이 있다. 몸의 수많은 세포 중에 건강하지 않은 세포는 변형을 일으켜 암세포가 된다. 암은 유전성이 있지만, 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하면 암 발병을 낮출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에 미네랄은 필수이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장은 "미네랄이 부족하면 세포의 신호 전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각종 암이나 성인병에 이를 수 있다는 보고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미네랄이 없는 정수기 물은 장기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 정수기 물을 마시면 삼투압 작용으로 그나마 세포에 있던 미네랄이 세포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네랄과 건강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고농도의 미네랄 물이 혈액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 실험을 진행한 김광용 연세대 원주의대 기능수연구단 박사는 "술을 많이 마시면 적혈구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피가 엉긴다. 적혈구가 서로 달라붙은 현상(용전)인데, 이처럼 피가 걸쭉해지면 혈관을 막아 여러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마시면 이런 현상을 줄일 수 있다. 일반인 두 명에게는 정수기 물을, 다른 두 명에게는 미네랄 물을 마시게 했다. 물을 마시기 전후의 혈액을 채취해 관찰했더니, 미네랄 물을 마신 사람의 적혈구 엉김이 풀어졌다. 그러나 정수기 물을 마신 사람의 적혈구에서는 변화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정수기업계는 반박한다. 미네랄은 물뿐만 아니라 음식으로도 섭취하므로 모든 실험 결과가 물, 특히 정수기 물 때문이라는 점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정수기업체 관계자는.. 미네랄이 없으므로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미네랄은 일반 식품으로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정수기 물에 대한 다양한 실험 결과가 있는데...
음식으로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다. 식물이 토양으로부터 미네랄을 얻는데, 토양의 미네랄이 20~30년 전보다 30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내용이다. 물 박사로 통하는 김현원 연세대 원주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는 "식품에도 미네랄이 있지만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 토마토의 예를 들면, 칼슘 농도가 과거보다 10분의 1로 줄었다. 또 채소와 과일이 영양분을 흡수하는 토양의 미네랄이 적어졌고, 토양도 오염이 많이 되어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볼 때, 물에 있는 미네랄이 식품보다 10배 이상 가치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선진국은 미네랄이 없는 물의 부작용을 알고 오래전부터 역삼투압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그냥 수돗물을 마신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미네랄과 건강에 대한 문제 제기나 연구조차 없다. 이런 정수기는 아프리카와 같이 물이 극심하게 오염된 지역에서 정수하기 위해 사용할 뿐이다. 유독 한국은 정수기 물의 환상에 젖어 있다. 나는 독일 본 대학에 정수기를 들고 가서 물 분석을 의뢰했다. 정수기 물은 먹는 물로 부적합하다는 결과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임신부는 특히 정수기 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권고도 나왔다. 잉글리드 로스버그 국제물학회 미네랄연구팀 박사는 "임신부에게 역삼투압 정수기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이다. 미네랄이 부족한 물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네랄이 없는 물은 증류수와 같다. 이런 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몇 세대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정수기 물의 또 다른 문제는 산성을 띠는 물(산성수)이라는 점이다. 산성과 알칼리성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pH)가 6.8~7.6 정도의 수돗물이, 필터를 통해 나오면서 pH 5.5 안팎의 산성수로 변한다. pH 수치가 7보다 낮으면 산성이고, 높으면 알칼리성이다.
인체는 산성과 알칼리성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능력(항상성)을 갖추고 있다. 산성이나 알칼리성 음식을 먹으면 몸이 알아서 중화해서 pH 7.4 정도로 유지한다. 이 때문에 pH 7 정도의 물이 사람 몸에 적합하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먹는 물 기준을 pH 6.5~8.5로 정했고, 한국도 그 기준을 pH 5.8~8.5로 정해두었다.
빗물은 pH 5.7 정도의 산성이다.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여러 광물 성분을 머금은 후에는 pH 7.4~7.6의 물이 된다. 산성의 물을 중화하는 역할을 미네랄이 하는 것이다. 잉글리드 로스버그 국제물학회 미네랄 연구팀 박사는 "우리 몸에는 산성과 알칼리성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 중탄산염이라는 미네랄이다. 이 미네랄이 공급되지 않으면 암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 암 환자의 대다수가 산성화 체질이다"라며 미네랄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수기업체들도 이 사실을 알고 개선하기 시작했다. 박영재 호서대 산학협력학부 교수는 "정수기 물은 산성수여서 사실상 먹는 물 기준에 맞지 않는다. 최근 업체들도 이 사실을 알고 pH 수치를 올려 먹는 물 기준에 맞추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필터의 구멍을 넓혀 미네랄이 약간은 통과하게 만든 것이다. 가정에 정수기가 없더라도 직장이나 식당에서 정수기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어떤 물을 마셔야 안심할 수 있을까
국제 사회가 마련한 좋은 물의 기준이란 유해 물질이 없고, 산소량이 많으며, 미네랄이 적절히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에 맞는 물은 깨끗한 샘물이다. 특히 오색약수·고란약수 등의 샘물은 미네랄이 풍부해서 물맛부터 다르다. 그러나 도심에서 샘물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또, 토양이 오염되어 있는 지역의 샘물은 안심하고 마실 수도 없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물은 수돗물이다. 수돗물을 하루 정도 받아놓으면 냄새 등이 사라져 마시기에 어려움이 없다. 물론 가정까지 연결된 배관이 낡았다면 물이 오염될 수 있다. 꺼림칙하면 끓여서 마시면 된다. 어떤 이유로든 수돗물을 신뢰할 수 없다면 생수가 대안이다.
그렇다고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기능성 물을 비싼 값에 사서 마실 필요는 없다. 먹는 물의 미네랄 기준은 3백ppm 이하이며 최대 5백ppm을 넘지 않아야 인체에 무리가 없다. 미네랄을 필요 이상으로 섭취하면 결석, 생리 작용 불균형, 혈압 이상 등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알칼리 환원수니 미네랄워터(광천수)니 하는 기능성 물이 요새 부쩍 많아졌다. 그런 물을 마시는 것이 마시지 않는 것보다 뭐가 좋아도 좋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런 물을 마신다고 해서 절대로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이다. 미네랄워터에 미네랄은 별로 없고 당분이 많아서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백 보 양보해서 기능성 물이 건강에 1 정도 도움이 된다면, 제때 식사하고 금연하고 금주하고 운동하는 것이 100만배 이상 좋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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