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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1] 세계 1위 한국 造船, 주요 SW는 96% 수입… 조립만 1등인 셈

화이트보스 2013. 8. 1. 13:38

SW혁명의 외딴 섬, 한국] [1] 세계 1위 한국 造船, 주요 SW는 96% 수입… 조립만 1등인 셈

  • 호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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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8.01 03:06 | 수정 : 2013.08.01 04:07

    [제조업 위기의 진원은 SW]

    자동차 SW 국산화율 5%… 현대차 핵심 제어장치는 獨·美·日 업체에 대부분 의존
    "시장 창조할 SW 역량 부족, 갤럭시 이후 생각하면 캄캄"
    삼성, SW 인력 5년새 3배로

    지난 26일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 400만㎡(130만평)에 이르는 조선소 내에 드릴십(해저시추선), FPSO(부유식 원유저장처리설비) 등 해양플랜트 제조작업이 10군데서 벌어지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과 함께 지난해 거둔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220억달러. 속을 뜯어보면 허울뿐인 수치다. 전기·기계·안전시스템 등 해양플랜트 기자재의 3분의 2를 유럽·미국 업체에서 사온다. 이 기자재를 움직이는 핵심 소프트웨어(SW) 수입률은 100%에 근접한다.

    드릴십의 설계는 영국의 아베바(AVEVA)와 독일의 보캐드(bocad) 소프트웨어로 한다. 항해·정박 SW장치는 네덜란드의 CT시스템스(항해 정박용 시스템)와 미국 맥클라렌(Mclaren·운영체제) 것이다. 안전시스템은 영국의 허니웰 제품으로 구축한다. 주요 시스템의 국산 SW는 전무(全無)하다. 이것이 '조선(造船) 1위' 한국의 현주소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한상철 프로그램 디렉터는 "한국이 조선 1위라는 말은 냉정하게 말하면 쇳덩어리를 용접하고 조합하는 일에서 1등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은 껍데기 전락 위기

    한국은 2차대전 이후 후발 산업국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조선·메모리반도체·LCD TV·휴대폰·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거나 글로벌 강자로 부상한 국가다. 서구와 일본을 뒤쫓아 대규모 자본 투자, 뛰어난 공정 기술을 무기로 이룬 성과다. 하지만 더 이상의 도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전성기는 이미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구체제)'이 돼가고 있다. 전자·자동차·조선 등 전통 제조업에 소프트웨어를 집어넣는 시대로 급변했다. 한국은 이에 대한 변화도, 대비도 부족하다.

    
	인도 북부의 공업도시 노이다에 있는 삼성전자 ‘노이다 연구소’에서 현지 여성 인력들이 스마트폰 오류 점검을 위한 테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인도 북부의 공업도시 노이다에 있는 삼성전자 ‘노이다 연구소’에서 현지 여성 인력들이 스마트폰 오류 점검을 위한 테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노이다(인도)=박순찬 기자

    현대차그룹이 작년 4월 차량용 반도체·전자제어 소프트웨어 전문회사 오트론(Autron)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정몽구 회장은 임원들을 모아놓고 "기계 쪽은 다 따라갔는데 전장(電裝, 전자·전기장치)이 문제다. 한국의 덴소(도요타의 전장 계열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현대차는 엔진 등 핵심부품을 제어하는 CPU(중앙처리장치)와 내장 소프트웨어를 외국산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전장용 반도체는 독일 인피니온, 미국 프리스케일, 일본 르네사스에 거의 100% 의존한다. 반도체에 내장돼 있는 핵심 소프트웨어는 독일의 보쉬·콘티넨털이 강자다. 이 소프트웨어들의 소스 코드(프로그래밍 언어로 나타낸 설계도)는 해독이 불가능한 블랙박스 형태로 돼 있어서 베끼기도 불가능하다. 현대차 A협력사 기술상무는 "현대차가 소프트웨어 능력과 인력을 키우지 않으면 독일·일본차를 영원히 앞지르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SW 인력, 양과 질 모두 문제

    "갤럭시 이후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합니다."

    삼성그룹 핵심 경영자의 말이다. 그는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몰고 온 스마트폰 충격은 삼성에 큰 시련을 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축복이었다"고 했다. 세계 휴대폰 시장이 기존의 피처폰으로 계속 갔다면 삼성전자는 이미 중국 휴대폰업체들에게 다 따라잡혔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나마 애플이 창조한 스마트폰 세상으로 한발 빠르게 따라 들어간 것이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하지만 '스마트폰 이후'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낼 소프트웨어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피처폰 시대인 2008년 삼성의 SW 인력은 1만3000명(2008년)이었다. 이후 SW 인력을 급속히 충원하기 시작해 올해 갤럭시S4를 내놓을 땐 3만6000명으로 늘었다. 5년 만에 3배가 됐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SW 인력을 싹쓸이하듯 끌어모아도 갤럭시 하나를 진화시키는 것에도 힘이 부친다"며 "우리나라는 SW 인력의 양과 질이 모두 문제"라고 말했다.

    LG전자는 3년 전 스마트폰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회사 존폐 위기론까지 거론됐었다. 이후 사내에 대대적으로 'SW 역량강화센터'를 만들고, 비수도권 공대까지 싹싹 돌면서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현준 인도연구소장은 "휴대폰 하나를 만드는 데 수천만 라인(line)의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프로그램 라인 수는 매년 수십%씩 증가한다"면서 "국내에서 배출되는 SW 인력으로는 도저히 충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이 SW 혁명에서 얼마나 외딴 섬에 있느냐는 것은 정부(산업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하드웨어에 내장돼 있는 고부가가치 SW 국산화율에서 자동차 5%, 로봇 5%, 조선 4%, 국방 1%에 불과하다. 중공업 등 제조공정에 필요한 설계·3D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거의 100%를 수입하고 있다.

    ☞소프트웨어(software·SW)

    컴퓨터 기계장치 같은 하드웨어를 작동하는 OS(운영체제) 등 고도의 알고리즘으로 이뤄진 제어프로그램.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AP(칩) 프로그램, 차량 탑재 ECU(전자제어장치) 등이 모두 소프트웨어다. 반도체에 내장돼 있어 전자·통신·항공·자동차 등 기계를 제어하는 임베디드(em bedded)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