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8.08 03:05
경제는 민간의 상호작용 중요, 일하는 모습 보이려는 정부… 재정·통화 통한 간섭주의 선호
'창조경제' 그물망 지원 안될 말… 촘촘한 '체'가 창의성 말살하고 그물망 규제로 변질될 우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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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체는 미세한 입자를 골라내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직위에 따라 담당자가 할 일을 고르는 데도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이른바 '체론'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의 크기가 작고 업무가 간단할수록 장(長)의 체는 촘촘하며, 크고 복잡할수록 엉성해진다. 또 그래야 한다. 직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 체를 치면 아주 굵은 것 1~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빠져나가고, 다음 직위의 사람이 이를 받아 치면 다음으로 굵은 것 1~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빠져나가는 식으로 일이 직급 간에 배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담당자들이 직위에 맞지 않은 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발생한다. 특히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의 체에서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않고 모두 걸리는 경우에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는 흔히 최상급자가 모든 사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생기는데, 조직원들은 그의 입만 쳐다보고 반응을 살핌으로써 창조성은 말살되고 조직은 비효율의 덩어리가 된다. 불완전한 인간 이성과 지식의 한계성을 간과한 채 자신의 통제하에서만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처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의 결과인 것이다. 그런 사례는 모든 조직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상호 작용하며 복잡다단하게 돌아가는 거대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대두한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의존하여 중앙집권적 계획으로 지상 천국을 건설하려고 했던 사회주의의 실패 경험은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 충분하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경제를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기기보다는 계획과 통제의 대상으로 둔다.
그런 현상은 경제 당국자의 성향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경제관의 차이에서 연유한다. 거시 경제 측면을 보면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은 시장 참여자들인 근로자, 토지 소유자, 자본가, 기업가들이 조화롭게 상호 작용하면서 경제가 그 자체적으로 안정적으로 돌아간다고 인식한다. 경제 문제의 대부분을 시장에 맡기라며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반면에 1929년 대공황 이후 위세를 떨쳐온 간섭주의적 케인스주의자들은 시장경제가 마치 외발자전거처럼 불안정하다고 인식한다. 이 불안정한 외발자전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손잡이의 양쪽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단단히 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정부 역할을 강조하게 되고, 그런 인식은 미시적인 경제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수많은 규제와 간섭을 낳는다.
대공황 이후 지금까지 간섭주의가 득세한 것은 자유 시장경제를 옹호한 루트비히 미제스(Mises)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Hayek) 등이 영어권 학자들이 아니었다는 우연한 사실과, 가시적 성과를 위해 무엇인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정부의 입맛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지식은 끊임없이 경제를 뒤흔들었고 그 책임은 항상 시장으로 돌려졌다. 이를 두고 미제스는 경제사(經濟史)는 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구상된 까닭으로 실패한 정부 정책들의 기나긴 기록이라고 규정한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도 그런 점에서 그 실천 방안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수사가 일부 곁들여지긴 했지만 창조경제로 한국 경제의 활력을 찾자는 취지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창조경제의 개념도를 보면 각 부처가 그물망 지원 정책으로 달성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이는 곧 정부가 촘촘한 체로 경제를 계획하겠다는 것인데 거대 사회를 계획경제로 부흥시킨 인류 역사는 없다. 경제주체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돌아가는 경제의 자생적 질서를 파괴하고 이들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여지를 말살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지식의 한계를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계획 당국자들이 거대 사회에서 경제주체들이 때와 장소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물망 지원 정책은 결국 그물망 규제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1970년대 1인당 소득 1000달러 시대와 2010년대 2만달러 시대의 한국 경제 운용 방식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정부가 잘 알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도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다. 정부의 체가 더 엉성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국방·치안·외교·통일 문제와 자유 시장을 위협하는 사기·협잡·폭력·절도 등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제도 문제들만 걸러내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으로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촘촘한 체는 아예 버리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