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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허세… 지식경제 외치면서 中 짝퉁 스마트폰으로 쇼

화이트보스 2013. 8. 18. 08:58

김정은의 허세… 지식경제 외치면서 中 짝퉁 스마트폰으로 쇼

  • 이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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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8.17 03:05

    北 스마트폰 공개에 숨겨진 진실

    전문가들 이구동성 "중국産""北, PC 만들 기술도 없어…中 부품으로 조립했거나 中 업체에 아예 맡긴 것 OS는 안드로이드 베낀 듯"

    북한의 열악한 IT 현실… '고려링크' 홈피 외엔 스마트폰으로 접속 안돼 …계산기·영어 학습기…쓸만한 콘텐츠도 적어 …

    김정은의 '첨단 지도자' 시늉 …IT 트렌드 따라갈 줄 아는 '열린 리더' 이미지 부각 …아버지와 다른 업적 통해 권력 다지려는 의도도

    삼성 갤럭시, 애플 아이폰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맥을 못 추는 나라가 북한이다. 인터넷이 차단된 환경에서 어떤 첨단 스마트폰도 멍청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이 지난 11일 '우리식대로 만들었다'며 스마트폰 '아리랑'을 공개했다. 지구상 최악의 폐쇄·독재국가가 스마트폰을 내놨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당장 '북한이 무슨 기술이 있어서?'라는 의문이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 홍콩의 대공보와 영국 BBC가 14일 "북한이 만들었다는 아리랑 스마트폰은 값싼 중국산을 들여와 최종 포장만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아리랑은 사실상 산자이(山寨·중국산 짝퉁)나 다름없지만, 김정은이 이를 마치 북한이 개발·생산한 것처럼 자랑했다는 분석이다. 주체사상으로 사상강국을 만든 할아버지(김일성), 핵 보유로 군사강국을 만든 아버지(김정일)에 이어 지식경제강국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한 세습 3대(代) 통치자의 허세라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아리랑폰 모습.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아리랑폰 모습. / 로이터뉴시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접촉식 손전화기' 아리랑의 사진을 보면 백두산 천지를 배경 화면으로 앱(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들이 깔려 있다. 기기명은 'AS 1201'로 케이스는 노랑·흰색·검정·분홍의 네 가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화면 구성을 보면 안드로이드 4.0 ICS를 탑재한 것 같다"거나 "음악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은 구글 순정이 아니라 삼성의 음악 앱을 닮았다"는 등의 분석을 내놓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아리랑을 생산 중인 '5월11일 공장'을 '가전제품 생산 공장'이라고 소개했다. 김정은은 그곳에서 "손전화기를 우리의 기술로 척척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라고 치하했다. 대만 HTC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알려진 김정은은 "손 접촉 부분이 예민해야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데 편리하다"고 훈수를 하기도 했다. 이날 공개된 장면은 스마트폰으로 보이는 물건을 검사하거나 종이 박스에 담는 포장 작업일 뿐 생산이라고 볼 만한 공정은 없었다.

    북한은 2008년 이집트 오라스콤과 합작해 고려링크라는 이름으로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다. 배급제 중단 이후 장마당과 상거래가 확산되면서 크게 늘어난 장사꾼들과 부유층 등 200만명이 고객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휴대폰은 오라스콤 측이 중국에 위탁해 생산한 화웨이, 모토로라, 노키아 제품이다. 원래 브랜드는 떼고 북한산인 것처럼 포장해 판다고 한다.

    북한은 스마트폰을 만들 기술력이 있을까. 함흥공산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 출신인 NK 지식인 연대 김흥광 대표는 "만들 수 없다"고 단언했다. 김 대표는 "CPU·통신칩 같은 핵심 부품은커녕 구식 폴더폰 버튼조차 못 만드는 게 북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만드는 '아침 팬더'라는 펜티엄4 컴퓨터도 중국에서 볼트·너트까지 포함해 부품 100%를 들여와 최종 조립만 하는 것"이라며 "그런 나라가 무슨 수로 스마트폰을 만드느냐"고 반문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이 아리랑 폰을 손에 쥔 채 살펴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이 지난 11일 북한의‘5월 11일 공장’에서 아리랑 폰을 손에 쥔 채 살펴보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그렇다면 아리랑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남서울대학교 최성 교수(컴퓨터공학)는 "하드웨어는 중국에서 들여와 조립하고 운영체제(OS)와 일부 앱은 자체 개발한 것을 탑재한 듯하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정민영 교수(IT융합학과)도 "중국 심양에서는 출시된 지 불과 2~3일밖에 안된 최신 스마트폰을 포함해 어떤 스마트폰이라도 만들 수 있는 부품이 모듈 형태로 판매된다"며 "그걸 들여오면 조립은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국내 휴대폰업계 관계자는 "중국에는 원하는 스펙만 던져주면 적당한 디자인에 각각의 부품까지 새 모델을 만들어주는 스마트폰 개발 대행업체들이 수백개가 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와 달리 아리랑의 운영체제와 앱들은 북한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성 교수는 "아리랑은 프로그램이 공개된 구글 안드로이드를 북한 실정에 맞게 바꿔 장착하고 자체 개발한 게임 앱 등을 설치한 듯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김흥광 대표에 따르면 북한의 스마트폰 사용자가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는 통신사인 고려링크 홈페이지뿐이다. 김 대표는 "고려링크가 제공하는 게임, 영어 단어 학습 프로그램, 계산기 같은 콘텐츠만 내려받을 수 있을 뿐이고 돈을 내고 앱을 더 다운받거나 인터넷에 접속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생산할 능력도 없는 스마트폰, 그걸 사용할 네트워크도 없는데 김정은이 아리랑을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김종선 박사는 "북한 사람들과 대외 매체들에 자신은 국제적인 흐름에 뒤지지 않는 첨단 지도자라는 모습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의 상징인 스마트폰이야말로 그런 쇼를 위한 최적의 도구"라고 말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변상정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은 아버지 사후에 '최첨단돌파사상' '지식경제형강국건설론'을 새로운 통치 이념, 통치 구호로 적극 내세우고 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차별화된 경제적 치적을 쌓아 권력을 다지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올해 들어 김정은은 현지지도에서 '지식경제시대'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