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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에 실태

화이트보스 2013. 9. 4. 10:29

노인 울리는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

  •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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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9.04 03:00

    [노인복지주택 도입 20년… 분양·관리 부실로 피해 속출]

    분양 땐 공짜라던 골프연습장… 1년 후 유료화했다가 문닫아
    60세 이상 분양받는 실버타운… 60세 미만 입주민이 34%
    2011년까지 지어진 실버타운, 분양·거주연령 제한 풀어줘… 분양업체 책임도 사라져

    60세 이상 노인들의 전용 주거·복지 공간으로 20년 전 도입된 노인복지주택(일명 실버타운) 주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분양업체의 허위·과장 광고와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이 빚은 결과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서모(74)씨는 퇴직금 등 4억5000만원을 투자해 2010년 경기 하남시의 노인복지주택 '블루밍 더 클래식'(163가구) 34평형을 분양받았다. 관절염으로 수년간 고생한 그에게 '관리비만 내면 의사가 있는 건강 클리닉과 물리치료실, 각종 레저시설 이용 가능'이라는 광고 문구는 매력적이었다.

    입주 첫 몇 개월간 서씨는 건물 1층 로비에 있는 건강 클리닉에서 관절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클리닉에 상주(常住)하던 의사가 갑자기 떠났다. 관리사무실에선 "의사가 그만둬서 후임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그 상태로 2년 이상이 흘렀고, 서씨는 요즘 차량으로 15분쯤 걸리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주민들은 주택 분양업체가 노래방과 골프연습장 이용료가 '무료'라고 광고했지만 1년쯤 후 노래방은 매달 1만5000원, 골프연습장은 매달 4만5000원씩을 내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 노래방 등은 최근 폐쇄됐다.

    
	2일 경기 하남시의 노인복지주택‘블루밍 더 클래식’에 사는 노인들이 1층 휴게실에서 바둑을 두고 있다. 주민들과 갈등을 빚은 시설 운영 회사는 이날 노래방, 골프연습장 등 레저 시설을 폐쇄했다. /이진한 기자
    운영하던 사업체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이곳에 온 주민 김모(72)씨는 요즘 입주민 전용 사우나에 발길을 끊었다. 온몸에 문신을 한 30~40대 건장한 남성들과 사우나에서 몇 차례 마주친 뒤였다. 김씨는 "공용휴게실에서 문신을 한 남자들이 마음대로 담배를 피워대도, 봉변을 당할까 봐 항의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주택 분양업자인 김모씨는 "허위 광고를 한 사실이 없고, 법에 위반되게 운영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노인복지주택 '명지엘펜하임'(204가구)은 처음 분양할 때 '9홀 규모 실외골프장을 짓고 입주민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골프장은 없었다. 김모(77)씨 등 입주민 26명은 사기 분양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서울고법은 지난 4월 2심에서 "업체는 분양대금을 돌려주고 위자료도 지급하라"며 100억원대 배상판결을 내렸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카이저팰리스' 역시 2010년 분양 당시엔 물리치료실과 의사 상주 건강 클리닉이 있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기자가 확인해본 결과 현재 이런 서비스는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주민이었던 이모(72)씨는 "입주민 대표 모임도 젊은 사람 위주로 구성되다 보니 나 같은 노인은 점점 소외되는 것 같더라"며 "사기당한 기분에 분양 가격에 집을 팔고 나왔다"고 말했다.

    노인복지주택인 줄 모르고 입주했다가 피해를 호소하는 청장년 입주자도 많다. 전북 전주시 노인복지주택 '옥성골든카운티'는 계약자 20여명이 "전원주택이라는 광고에 속아 맺은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며 작년 초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 측은 "노인복지주택임을 충분히 알렸다"고 맞서고 있다.

    이처럼 피해가 속출하는 데도 정부는 손 놓고 있었다.

    지역별 노인복지주택 60세 미만 거주 현황. 아파트와 노인복지주택 관리제도 비교.
    정부는 1993년 노인복지주택 제도를 도입하면서 60세 이상만 분양받을 수 있고, 이를 어길 경우 분양업체를 처벌하고 분양받은 사람도 제재하도록 했다. 노인복지법에는 60세 미만이 분양받고 살면 이행강제금을 물리고, 분양업체는 최대 '위법 분양 가구 수×1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위법 분양이 적발돼 벌금을 낸 업체는 없다고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전국의 23곳 노인복지주택에 거주하는 주민 5483명 가운데, 34.1%인 1875명이 60세 미만으로 밝혀졌다. 서울 중구 소재 '정동상림원'은 주민 231명의 88.8%인 205명이 60세 미만이었다.

    "우리도 피해자"라는 60대 미만 입주민 민원이 빗발치자 국회는 2011년 그때까지 지어진 노인복지주택의 분양·거주 연령 제한을 소급해 풀어줬다. 그에 따른 분양업체들의 책임도 함께 사라졌다.

    전국 노인복지주택은 2008년 20곳에서 올해 23곳으로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희대 주거환경학과 권오정 교수는 "정부와 정치권은 20년간 문제를 방치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했다"며 "관련 제도를 빨리 정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