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03 03:03
-
김태훈 문화부 차장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주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젊은 층이 져야 할 짐이다. 그 부담을 덜게 됐는데도 우리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것은 어르신을 공경하는 갸륵한 세대라서 그런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대선·총선 때만 되면 젊은이가 노인을 폄훼하는 발언을 날리고, 중노년층과 청장년층으로 갈라져 몰표 대결을 벌이는 나라다.
프랑스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지난 2010년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퇴직연금 부담을 덜기 위해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미루고 연금 수급 개시일을 늦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젊은이 수십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우리는 어떻게 취직하란 말이냐?"며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퇴직을 앞둔 이들도 정년 연장에 반대했지만 이유가 달랐다. "빨리 은퇴해 연금 쓰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도 둘 사이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자기 이익에 솔직했다.
우리 청년들이 프랑스 젊은이들에 비해 더 이타적이고 정의로운 걸까. 마찬가지로 우리 노인들은 정부에 대해 프랑스 중·노년층보다 더 너그러운 걸까. 모두 아니다.
노인이나 젊은이나 애당초 기초연금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지금도 노인 복지는 본질적으로 관심 밖이다. 그게 자기들 문제라면 양쪽 모두 지금처럼 반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나는 누구 편"이라는 정치적 편 가르기에 빠져 있고, 공약을 핑계 삼아 찬반 놀음을 벌일 뿐이다.
포르투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조제 사라마구는 장편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맹목적으로 빠져든 사회가 빚는 병적인 혼란을 그렸다. 실명(失明)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눈을 멀쩡히 뜨고도 앞을 보지 못한다는 설정을 통해 작가는 맹목적 몰입이 한 사회를 눈먼 자들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복지 정책은 유권자들의 솔직한 이기심 때문에 오히려 우리보다 효율적으로 수립되고 효과적으로 집행된다. 반면 우리는 공약을 포함한 모든 정책이 '네 편, 내 편' 문제로 수렴되니 정책 입안자들은 국민이 뭘 원하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어차피 편 가르기에나 쓰일 것, 뭣 하러 정성 들여 정책을 만들까 싶기도 할 것이다. '네 편, 내 편 따지기'는 우리 사회를 눈멀게 하는 '실명 바이러스'다. 이대로라면 다음 선거에서도 이 바이러스의 창궐을 막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