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14 03:10 | 수정 : 2013.10.14 10:41
취업률 올리려 학점 세탁, F학점·재수강 여부 표기 안해… 70곳 外에도 더 있을 가능성
일부대학은 학칙으로 '이중 성적증명서' 발급 규정
51개大, F학점 표시않고 평균학점에도 반영 안해
유명 4년제 사립대를 포함한 대학 70곳이 F학점을 비롯해 재수강, 학점 포기(철회) 여부 등을 성적표에 표기하지 않은 이른바 '취업용 성적 증명서'를 따로 만들어 준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교육부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 340곳(일반대 201곳, 전문대 139곳)을 조사한 결과, 고려대·숭실대·광운대 등 70곳(4년제 49곳·전문대 21곳)에서 학생들의 성적증명서를 '열람용'(교내용)과 '제출용'(교외용)으로 구분해 '이중 성적표'를 발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열람용'에는 학생이 취득한 모든 과목과 학점 등이 제대로 표기되지만, '제출용'에는 학생에게 자칫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F학점이나 재수강 여부 등이 기록되지 않았다. 대학 70곳 중 특히 51곳은 아예 평균 학점을 계산할 때 F학점 받은 과목을 반영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학생 성적이 올라가도록 했다. 51곳 가운데 4년제 대학이 34곳, 전문대학이 17곳이었다. 김 의원은 "일부 대학에선 학칙 또는 내규에 '이중 성적표'를 발급해주도록 규정한 곳도 있었다"며 "문제는 대학을 관리·감독해야 할 교육부가 그동안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상황 파악도 못 해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교육부를 통해 시행한 이번 조사에서 동국대·서강대·성균관대·연세대·한국외대 등 104곳은 답변을 제출하지 않았다. 따라서 스스로 인정한 대학 70곳보다 실제 '이중 성적증명서' 발급 대학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 김 의원 설명이다. 또 166곳(4년제 111곳·전문대 55곳)은 '이중 성적증명서'를 발급하지 않는다고 교과부에 답변을 제출했지만, 실제로는 발급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고 김 의원은 밝혔다. 대학들이 '이중 성적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은 취업난 때문이다. 대학은 제자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이중 성적증명서'를 발급할 뿐 아니라, 교육부가 대학들에 대한 재정지원 사업을 할 때 취업률을 주요 지표로 반영하기 때문에 취업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중 성적증명서'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 교무처장 김성제 교수는 "학생들이 재수강을 했는데도 그 기록 없이 학교가 성적 증명서를 발급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학생들이 더욱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무분별하게 재수강을 하게 만드는 현실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성적이 A로 뛰어난데도 A+를 받기 위해 다시 수업을 듣는 등 평점 0.1~0.2점 상승에 목을 매는 것이 우리 대학 사회에는 만연하다.
김 교수는 "재수강을 통한 학점 올리기가 심해지면 대학들이 제공하는 졸업생 성적이 엇비슷해져 결국 기업과 대학원 등에서 대학 성적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중 성적증명서'는 우리 대학사회의 '학점 인플레이션'과 관련이 깊다. 실제 많은 대학생은 취업·진학 등을 이유로 재수강이나 학점 포기, 졸업 유예 등을 통해 성적을 높이는 이른바 '학점 세탁'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학생들의 성적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교육부가 공개한 전국 4년제 대학 182곳의 '2011학년도 학점 분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졸업생 중 평균 점수 B학점을 넘는 학생 비율이 89.4%에 달했다. 10명 중 9명이 B학점 이상을 받은 셈이다.
김희정 의원은 "재수강을 하지도 않았는데 학교 측이 '제출용' 성적 증명서에서 F학점을 아예 표기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는 재수강 등 학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 학생들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