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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도전"… 여수 '동북아 오일허브' 본격 가동

화이트보스 2013. 10. 14. 13:49

싱가포르에 도전"… 여수 '동북아 오일허브' 본격 가동

  • 여수(전남)=조재희 기자
  • 입력 : 2013.10.14 03:06

    [축구장 37배 '여수 기지' 현장을 가다]

    석유 저장량 820만 배럴 국내 최대, 울산과 연결… 新성장동력으로

    -뛰어난 조건
    대규모 원유정제 시설 갖추고 있어… 韓·中·日 석유소비 증가 세계 최고
    -넘어야 할 산 많아
    외국기업 유치 위해 법인세 내리고 다양한 거래 위한 선진금융 갖춰야

    지난 8일 전남 여수시 낙포동 오일허브(hub) 코리아여수(OKYC). 여수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을 달려 도착하자 축구장 37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대규모 부지(26만2000㎡) 위에 24m 높이의 대형 석유 저장 탱크 36개가 마치 바둑판 위의 하얀 돌처럼 빼곡히 들어차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기지의 석유 저장량은 820만 배럴(1배럴은 158.984L)로 민간 석유 저장 기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우리나라가 나흘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석유를 저장할 수 있다.

    기지는 한국석유공사 여수기지와 GS칼텍스 여수공장 부두와 인접해 있었다. 박정오 운영팀장은 "모든 시설이 서로 파이프로 연결돼 있어 긴급할 때는 다른 부두에서도 정유 제품과 원유를 주고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곳은 우리나라 '동북아 오일허브(oil hub)의 꿈'이 담겨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싱가포르가 담당해온 아시아 지역 석유 거래 허브 역할을 여수가 대신한다는 것이다. 2008년 계획 수립 후 진행이 지지부진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에 포함되며 새롭게 힘을 받고 있다.

    ◇2008년부터 동북아 오일허브 추진

    오일허브가 되려면 일단 OKYC처럼 대규모 탱크 터미널을 갖춰야 한다. 원유와 석유 제품을 저장하는 대규모 탱크터미널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미국 걸프 연안과 유럽의 앤트워프·로테르담·암스테르담(ARA), 싱가포르 주룽에 있는 오일허브도 모두 이런 대규모 저장시설을 갖추고 있다. 탱크터미널을 기반으로 트레이딩 업체들을 유치해 거래가 이뤄지도록 하고, 거래소 등을 설치해 시장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오일허브가 된다.



    전남 여수시 낙포동에 있는 오일허브코리아여수(OKYC) 전경.
    전남 여수시 낙포동에 있는 오일허브코리아여수(OKYC) 전경. 축구장 37배 크기인 26만2000㎡ 부지에 24m 높이 탱크 36개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전체 저장 규모는 820만 배럴에 이른다. /김영근 기자
    OKYC 기지는 지난 2008년 급증하는 동북아 지역의 석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석유공사, SK에너지, GS칼텍스 등의 한국 기업과 중국 항공유 공급 업체인 차이나애비에이션오일 등이 합작으로 건설 계획을 잡았다. 2011년 2월에 착공, 올 3월 완공됐으며, 지난 4월부터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 건설비는 5170억원에 이른다. 건설은 해외에서 탱크터미널 시공 경험이 풍부한 현대건설이 맡았다.

    OKYC는 당장은 각국 업체들의 석유 물량을 보관해 주고 받는 수수료가 주수입원이다. 하지만 향후 국제 석유 트레이딩 업체들이 대거 우리나라로 들어오면, 동북아 지역 원유·석유 제품 물량 거래의 거점인 오일허브로 발전할 수 있다. 정부도 국제금융기관을 유치하고 석유거래소를 개설해 오일허브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남해안인 여수뿐 아니라 동해안 권역인 울산에도 오는 2020년까지 1조5000억원가량을 투자해 2840만배럴 규모의 원유·제품 탱크터미널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여수와 울산을 더한 총 저장용량은 3660만 배럴로 경쟁국인 싱가포르(5220만 배럴)의 70% 선을 넘어서게 된다.

    ◇오일허브 천혜의 조건 갖춰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에너지 빈곤국이다. 그러나 동북아 오일허브가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우선 한·중·일 등 동북아 지역은 석유 소비량과 물동량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다. 동북아의 석유 소비량은 지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8년 동안 연평균 3.9% 증가했다. 다른 지역 평균 1.9%의 2배가 넘는 속도이다. 2011년 기준 전 세계 석유 소비량 중 19%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 전체 오일허브 역할을 했던 싱가포르 석유 거래 시장이 동남아 위주로 바뀌면서 동북아 거점에 대한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2006년 싱가포르 석유제품 수출 시장에서 18.45%를 차지했던 동북아 지역은 2011년 9.15%로 줄었다.

    전 세계 오일허브 비교.
    한·중·일 3국 중 우리나라의 입지 조건도 가장 유리하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머큐리아(Mercuria) 손석호 이사는 “중국은 항만이 얕은 데다 정제 능력이 부족하고, 일본은 태풍 등 자연조건이 나쁘다”며 “한국은 항만 인프라와 석유산업 경쟁력 등의 측면에서 싱가포르보다 더 유리한 환경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제·금융 분야 등 넘어야 할 산 많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궁극적으로 트레이딩(거래)이 중심이 되는 오일허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오일허브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도 적잖다. 국제 석유 거래 업체들을 유치하려면 법인세 인하, 관세 체계 개선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고, 국제 석유 거래 중심지에 걸맞은 선진 금융 기반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정보 제공 업체인 플래츠(Platts) 싱가포르 지사의 미셸킴 석유화학 애널리스트는 “싱가포르는 석유와 석유화학 제품뿐 아니라 석탄, 곡물, 외환, 주식 등 다양한 종류의 트레이딩 여건이 잘 갖춰져 있다”면서 “이 같은 시장이 생기려면 선진 금융과 연계가 잘 이뤄져야 하는데 한국 현실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국내 정유업체 싱가포르 지사장도 “외국계 기업을 유치하려면 싱가포르처럼 법인세 인하 등 세제를 정비해야 하며 영어 사용 환경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오일허브

    석유 공급지나 수요지 인근에서 대규모 상업용 석유 저장시설(탱크 터미널)을 중심으로 조성된 석유 물류와 거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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