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18 03:14
韓國史 연구자 도이힐러 교수
"長子·宗孫 관행, 17세기 자리잡아 고려시대엔 여자도 재산 상속… 父系·母系 공존하는 兩系로 회귀"
해외의 대표적 한국사 연구자 중 한 명인 스위스 출신의 도이힐러 교수는 최근 저서 '한국의 유교화 과정'(너머북스)의 국내 출간을 계기로 방한했다. 1992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돼 조선시대 사회사 연구의 새 장(場)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의 개정판이다. 사회인류학적 방법론을 동원해 1차 자료 400여종을 훑으며 20년 넘게 연구한 이 역작(力作)은 우리의 일반적 한국사 상식을 곳곳에서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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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는“현재 한국은 부계 중심 사회에서 부계와 모계를 모두 중시하는 양계(兩系) 사회로 바뀌는 전환기에 있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부계 중시, 장자(長子) 우대 상속, 제사, 종손(宗孫)의 가계 계승 같은 관행이 확고하게 형성된 것은 17세기였습니다. 그 요소들은 20세기까지 존재해 한국 사회의 특징을 이뤘습니다."
그것은 신유학(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한 정도전·조준 등 조선의 건국 세력이 한국 사회 전체를 유교적으로 바꿔 놓으려 했던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250년이라는 긴 과도기를 거쳐 조선 중기에 비로소 완성된 결과물이었다는 것이 도이힐러 교수의 설명이다.
왜 그런 변혁을?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였다. 도이힐러 교수는 조선의 건국 세력이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운 것처럼 새로운 계층인 '신흥 사대부'가 아니라 종래의 거대 가문 출신인 '세족(世族)'이었다고 본다. "특권을 세습하는 엘리트 집단을 소규모로 한정하기 위해 '부계'와 '장자'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소수 엘리트가 지속적으로 나머지 사회집단(평민·노비)을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죠."
그 변화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는 크게 격하된다. "고려시대의 여성은 결혼 후에도 친정의 구성원이었고 아들과 똑같이 상속받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독립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에는 '재산권이 없는 시댁의 일원'이 돼 버린 것이죠." 엘리트 가문 출신이 아니면 처(妻)의 신분으로 적자(嫡子)를 낳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보면 한국 여성들은 실로 400년의 '침묵기'를 통과한 21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고려시대의 지위'를 회복하고 있는 셈이다.
1960년대부터 수시로 한국에 머무르며 사회를 관찰해 왔던 도이힐러 교수는 "그때만 해도 많이 남아 있던 전통 의례(儀禮)가 한국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면서도 "이 변화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4~5세기 신라 때부터 19세기까지 한국 사회의 기본적 단위가 씨족(氏族)이었다고 보는 그는 내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그 지속성을 연구한 저서를 출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