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에서 이처럼 높은 인기를 누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현지 지식인들은 6월 한·중 정상회담의 성공 덕이 크지만, 이 못지않게 박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우선 북핵 문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6자회담도 탄력을 받을 것이고, 그에 따라 북·미관계는 물론 북핵 문제 해결도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더불어 이들은 박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이 이 지역에 남아 있는 냉전구조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 공헌할 것이라는 희망도 내비쳤다. 한국이 미국을 등지고 중국에 편승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일본 문제에서 한·중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보았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역사와 영토 문제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아베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몰지각한 태도, 위안부 문제 등을 들어 한국과 중국이 공동전선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도와 조어도 문제 역시 일본 식민지 침탈의 결과물이므로 한·중 양국은 국제무대에서 긴밀하게 공조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근거는 지역협력이다. 미국의 비호하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본의 행보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워싱턴의 ‘아시아 회귀’ 전략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역내 다자안보 협력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경제 부문에서도 일본은 한·중·일 3국 FTA 구상에 소극적이고, 아베노믹스는 궁극적으로 역내 경제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한·중 두 나라는 이에 긴밀히 협력하며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마지막 이유는 일본의 고압적 태도다. “한국·중국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아쉬울 게 없다”거나 “한반도에 급변 사태가 나면 한국은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태도, “미국과의 관계만 확실하면 우리의 안보는 담보된다”는 고압적인 자세로 미루어 아베 총리 재임 기간에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이니 대신 한·중 관계나 돈독히 하자는 것이다.
언뜻 중국 지식인들의 이러한 주장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동북아의 지정학적 판도를 재편하려는 베이징의 고단수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음도 엿볼 수 있다. 지금의 베이징은 한·미·일 3국이 공조를 통해 자신을 견제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한다. 한·일군사비밀보호협정이 체결되고 3국 공동의 미사일 방어체제가 공고해지기라도 한다면 중국으로서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한·일 관계 악화는 이러한 3국 공조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weak link)’다. 이를 공략해 동북아에 새 안보구도를 구축하려는 것이 중국의 진짜 속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한국을 끌어당기고, 일본은 한국을 중국 쪽으로 밀어붙이는 형국. 이 와중에 미국은 우리에게 일본과의 관계복원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난마처럼 얽힌 이 고밀도 갈등상황 속에서, 박근혜정부는 어정쩡한 외교행보만을 거듭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생각하자니 중국 편을 들 수 없고, 중국과 전적으로 공조해 일본을 압박하기도 어렵다. 자칫 한·일관계 악화와 일본 우경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 지도부와 인민의 기대를 감안하면 한·미·일 3국 공조에만 매달릴 수도 없다. 말 그대로 딜레마다.
현재 상황이 한국에 가장 곤혹스럽다는 사실은, 거꾸로 한국이야말로 이를 주도적으로 돌파해나갈 명분과 당위를 가졌음을 방증한다. 중국과 미국의 신뢰를 모두 받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상종가’야말로 그 밑천이 되어줄 중요한 자산이다. 과거의 관성이나 대통령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임기응변 외교가 아니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 ‘신뢰, 균형, 선린’의 안정된 동북아 외교를 주도해 나갈 때 현재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