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결정적 세 장면

화이트보스 2013. 11. 15. 21:15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결정적 세 장면

  • 이동훈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E-mail : dhl@chosun.com
    연비어약(鳶飛魚躍), 하늘엔 솔개 날고 물 속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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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1.1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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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스타일…원칙인가 고집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한 여권 관계자가 몇 달 전 했던 말입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막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던 시점이었죠.

    민주당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를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나는 (국정원 댓글의) 덕을 본 것 없다”며 민주당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더군요. 이 관측은 점점 사실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3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3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근 민주당 지도부의 메시지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요구가 사라졌다는군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박 대통령이 우리 요구를 받아들일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민주당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천막 농성까지 벌였지만 끝내 박 대통령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이죠. 그동안 민주당은 대통령의 사과만이 대치정국의 유일한 출구라며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사활(死活)을 걸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의 사과를 기대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사과 표현 한 마디만 해주면 모든 것이 풀릴 것 같은데 꿈쩍도 하지 않으니 답답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을 이전에도 적잖이 볼 수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2003년 정치 전면에 등장한 이래 연례행사 마냥 반복돼 왔다고 할까요.

    한 친박 의원의 얘기입니다. “박 대통령을 지켜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웃댈 때가 적지 않았다. 조금만 굽히고 가면 쉽게 풀릴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숙고 끝에 세워진 자신의 원칙과 입장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이게 ‘박근혜 스타일’이니까요.

    정무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한달간 숙고하기도

    박 대통령의 원칙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박 대통령은 정무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이 닥치면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몇 시간이고 숙고(熟考)를 거듭한다고 합니다. 거의 한 달이 걸릴 때도 있다는군요. 대선을 앞둔 지난해 9월, 아버지 시절의 과거사를 사과하기 위해 박 대통령에겐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고민의 순간, 박 대통령의 입은 평소보다 더 굳게 닫힙니다. 자문그룹의 의견이 문서 혹은 전화 통화 형태로 전달되지만 최종 결정은 박 대통령의 몫입니다. 이맘 때면 날선 긴장감이 박 대통령의 주위를 감싸고 보좌진들은 숨소리마저 죽여야 한다는군요.

    박 대통령의 중요한 판단을 되짚어보면 주된 잣대는 원칙과 상식이었습니다. 현실적, 혹은 정무적 고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덜했습니다. 복선(伏線)도 거의 깔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결정이 내려질 당시에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완고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박 대통령의 판단이 대개 맞았다”고 여권 관계자는 입을 모읍니다.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Q씨의 얘기입니다. “박 대통령의 고집스런 모습은 타고난 천품일 수 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킴으로써 승리를 일궈낸 몇 차례의 경험이 박 대통령의 고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원칙을 지키면 이긴다는 경험이 쌓여 지금의 박 대통령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

    결국 ‘박근혜 스타일’은 ‘오랜 숙고에 이어진 원칙 고수’로 요약됩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박근혜 스타일이 빛을 발해 결국 대통령을 만든 결정적 장면은 대략 3가지 정도를 꼽아 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을 만든 결정적 세 장면

    #1. 2010년6월29일, 국회 본회의장의 박근혜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날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세종시 수정법안 찬반 표결을 앞두고 반대토론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습니다. 박 의원이 여기 선 것은 5년만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상 발제한 세종시 수정법안에 반대하는 박 의원을 겨냥한 여당 내 친이계의 공세는 거셌습니다. ‘융통성 없는 고집스런 정치인’이란 따가운 여론의 시선도 적지 않았습니다.

    현직 대통령에게 여당 비주류가 반기를 든 만큼 정치적 생명도 걸어야 했습니다. 친박계 의원들 내에서도 “이번 만큼은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박 의원은 단호했고, ‘회군(回軍)하자’는 생각을 가졌던 친박 의원들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이날 본회의 표결 결과 세종시 수정법안은 부결됐습니다. 박 의원이 승리한 거죠. 세종시 수정법안 반대 주도는 2012년 대선 충청권 승리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정운찬 총리를 앞세운 친이계의 마지막 대(對) 박근혜 공세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죠.

    #2. 2008년3월23일, 국회 기자회견장의 박근혜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그해 봄은 친박 의원들에게 ‘불사춘(不似春)’이었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전에서 패배한 친박계 의원들은 잇달아 4월 총선 낙천을 통보 받습니다. 굳은 표정의 박 의원은 친박계 수장 자격으로 이날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그리고 “저는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며 막 출범한 이명박 정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립니다. 당시 표현은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것이었다고 한 관계자가 말하더군요.

    이날 이후 박 의원은 대구로 내려가 칩거합니다. 친박연대, 친박무소속연대가 만들어지면서 4월 총선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이겼지만 진짜 승자(勝者)는 박 의원이었습니다. 낙천한 친박계 인사들이 중심이 된 친박 무소속 연대, 친박연대 소속의 당선자들이 대거 국회로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박 의원은 이후 이들을 복당시켜 줄 것을 요구하며 다시 삼성동 자택에서 칩거합니다. 완강한 박 의원을 향해 ‘복당녀’라는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박 의원은 꿈쩍하지 않았고, 끝내 복당을 관철시킵니다. 결국 4월 총선을 통해 박 의원을 고사시키려던 친이계의 계획은 실패합니다. 대선 후보 경선전 패배로 위기에 몰렸던 박 의원은 당내에 지지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합니다.

    #3. 2004년12월27일, 국회 의원식당 회담장의 박근혜
    "박근혜 대표는 벽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야당 한나라당 지도부간 4인 회동이 열렸습니다. 회담의 주제는 국가보안법, 사학법 개정 등 이른바 4대 법안 처리 문제. 여당의 파상 공세에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완강했습니다.
    당시 회담에 참석했던 여당 쪽 인사는 인사는 회담 맞상대였던 박 대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리 저리 돌려 아무리 얘기해봐도 박 대표는 자신이 가져온 입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벽에 대고 이야기 하는 느낌을 받았다.”

    ‘원칙 고수’를 넘어 완강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고집’은 참여정부가 거세게 몰아붙인 4대입법 추진을 결국 저지해 냅니다. 이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탈환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박 대통령에게 쉽게 조언하지 못하는 이유
    이런 과정을 거쳐 박 대통령은 결국 승리했습니다. 당시엔 “왜 저러냐”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옳았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정무적인 판단에 있어 누가 박 대통령을 뛰어 넘어설 수 있겠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친박 의원 A씨의 얘기입니다. “측근 참모들 가운데 그 누구도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하셔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박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처음엔 갸웃댔지만 한참 지난 뒤에는 그 결정에 대해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여러 차례 해 왔기 때문이다.” 정치권 인사가 아닌 외교관 출신(박준우)을 정무수석에 임명할 때 정치권 사람들이 비슷한 얘기를 하더군요. “정무적 판단에선 박 대통령 본인이 최고인데 정무수석에 누구를 앉힌 들 성이에 차겠나. ‘정무적 판단은 내가 할 테니 정무수석은 의전만 잘하라’는 메시지로 읽었다.”

    박근혜 스타일은 박 대통령 승리의 신화(神話)를 써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지금엔 주변 참모들이 박 대통령에게 쉽게 조언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엄존합니다. 박 대통령이 비판받는 핵심 지점인 ‘고집’ ‘불통’의 이미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집이 일군 승리가 만들어 온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초기 측근이었던 B씨 얘기입니다. “한나라당 대표가 막 됐을 때만 해도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면 들어주려는 노력은 했다. 정수장학회를 포기하라는 민감한 얘기도 참모들이 초기에는 다 했다. 물론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박 대통령은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된 지금은 더 하지 않겠나”

    ‘원칙 사수’와 ‘불통ㆍ고집의 이미지’는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결국 불통ㆍ고집 때문일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을 만든 ‘박근혜 스타일’이 종국에 그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까요,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