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스타일…원칙인가 고집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한 여권 관계자가 몇 달 전 했던 말입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막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던 시점이었죠.
민주당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를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나는 (국정원 댓글의) 덕을 본 것 없다”며 민주당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더군요. 이 관측은 점점 사실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한 여권 관계자가 몇 달 전 했던 말입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막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던 시점이었죠.
민주당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를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나는 (국정원 댓글의) 덕을 본 것 없다”며 민주당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더군요. 이 관측은 점점 사실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3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근 민주당 지도부의 메시지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요구가 사라졌다는군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박 대통령이 우리 요구를 받아들일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민주당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천막 농성까지 벌였지만 끝내 박 대통령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이죠. 그동안 민주당은 대통령의 사과만이 대치정국의 유일한 출구라며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사활(死活)을 걸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의 사과를 기대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사과 표현 한 마디만 해주면 모든 것이 풀릴 것 같은데 꿈쩍도 하지 않으니 답답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을 이전에도 적잖이 볼 수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2003년 정치 전면에 등장한 이래 연례행사 마냥 반복돼 왔다고 할까요.
한 친박 의원의 얘기입니다. “박 대통령을 지켜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웃댈 때가 적지 않았다. 조금만 굽히고 가면 쉽게 풀릴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숙고 끝에 세워진 자신의 원칙과 입장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이게 ‘박근혜 스타일’이니까요.
정무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한달간 숙고하기도
박 대통령의 원칙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박 대통령은 정무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이 닥치면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몇 시간이고 숙고(熟考)를 거듭한다고 합니다. 거의 한 달이 걸릴 때도 있다는군요. 대선을 앞둔 지난해 9월, 아버지 시절의 과거사를 사과하기 위해 박 대통령에겐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고민의 순간, 박 대통령의 입은 평소보다 더 굳게 닫힙니다. 자문그룹의 의견이 문서 혹은 전화 통화 형태로 전달되지만 최종 결정은 박 대통령의 몫입니다. 이맘 때면 날선 긴장감이 박 대통령의 주위를 감싸고 보좌진들은 숨소리마저 죽여야 한다는군요.
박 대통령의 중요한 판단을 되짚어보면 주된 잣대는 원칙과 상식이었습니다. 현실적, 혹은 정무적 고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덜했습니다. 복선(伏線)도 거의 깔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결정이 내려질 당시에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완고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박 대통령의 판단이 대개 맞았다”고 여권 관계자는 입을 모읍니다.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Q씨의 얘기입니다. “박 대통령의 고집스런 모습은 타고난 천품일 수 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킴으로써 승리를 일궈낸 몇 차례의 경험이 박 대통령의 고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원칙을 지키면 이긴다는 경험이 쌓여 지금의 박 대통령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
결국 ‘박근혜 스타일’은 ‘오랜 숙고에 이어진 원칙 고수’로 요약됩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박근혜 스타일이 빛을 발해 결국 대통령을 만든 결정적 장면은 대략 3가지 정도를 꼽아 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을 만든 결정적 세 장면
#1. 2010년6월29일, 국회 본회의장의 박근혜
-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날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세종시 수정법안 찬반 표결을 앞두고 반대토론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습니다. 박 의원이 여기 선 것은 5년만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상 발제한 세종시 수정법안에 반대하는 박 의원을 겨냥한 여당 내 친이계의 공세는 거셌습니다. ‘융통성 없는 고집스런 정치인’이란 따가운 여론의 시선도 적지 않았습니다.
현직 대통령에게 여당 비주류가 반기를 든 만큼 정치적 생명도 걸어야 했습니다. 친박계 의원들 내에서도 “이번 만큼은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박 의원은 단호했고, ‘회군(回軍)하자’는 생각을 가졌던 친박 의원들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이날 본회의 표결 결과 세종시 수정법안은 부결됐습니다. 박 의원이 승리한 거죠. 세종시 수정법안 반대 주도는 2012년 대선 충청권 승리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정운찬 총리를 앞세운 친이계의 마지막 대(對) 박근혜 공세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죠.
#2. 2008년3월23일, 국회 기자회견장의 박근혜
-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그해 봄은 친박 의원들에게 ‘불사춘(不似春)’이었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전에서 패배한 친박계 의원들은 잇달아 4월 총선 낙천을 통보 받습니다. 굳은 표정의 박 의원은 친박계 수장 자격으로 이날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그리고 “저는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며 막 출범한 이명박 정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립니다. 당시 표현은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것이었다고 한 관계자가 말하더군요.
이날 이후 박 의원은 대구로 내려가 칩거합니다. 친박연대, 친박무소속연대가 만들어지면서 4월 총선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이겼지만 진짜 승자(勝者)는 박 의원이었습니다. 낙천한 친박계 인사들이 중심이 된 친박 무소속 연대, 친박연대 소속의 당선자들이 대거 국회로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박 의원은 이후 이들을 복당시켜 줄 것을 요구하며 다시 삼성동 자택에서 칩거합니다. 완강한 박 의원을 향해 ‘복당녀’라는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박 의원은 꿈쩍하지 않았고, 끝내 복당을 관철시킵니다. 결국 4월 총선을 통해 박 의원을 고사시키려던 친이계의 계획은 실패합니다. 대선 후보 경선전 패배로 위기에 몰렸던 박 의원은 당내에 지지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합니다.
#3. 2004년12월27일, 국회 의원식당 회담장의 박근혜
- "박근혜 대표는 벽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야당 한나라당 지도부간 4인 회동이 열렸습니다. 회담의 주제는 국가보안법, 사학법 개정 등 이른바 4대 법안 처리 문제. 여당의 파상 공세에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완강했습니다.
당시 회담에 참석했던 여당 쪽 인사는 인사는 회담 맞상대였던 박 대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리 저리 돌려 아무리 얘기해봐도 박 대표는 자신이 가져온 입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벽에 대고 이야기 하는 느낌을 받았다.”
‘원칙 고수’를 넘어 완강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고집’은 참여정부가 거세게 몰아붙인 4대입법 추진을 결국 저지해 냅니다. 이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탈환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박 대통령에게 쉽게 조언하지 못하는 이유
이런 과정을 거쳐 박 대통령은 결국 승리했습니다. 당시엔 “왜 저러냐”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옳았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정무적인 판단에 있어 누가 박 대통령을 뛰어 넘어설 수 있겠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친박 의원 A씨의 얘기입니다. “측근 참모들 가운데 그 누구도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하셔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박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처음엔 갸웃댔지만 한참 지난 뒤에는 그 결정에 대해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여러 차례 해 왔기 때문이다.” 정치권 인사가 아닌 외교관 출신(박준우)을 정무수석에 임명할 때 정치권 사람들이 비슷한 얘기를 하더군요. “정무적 판단에선 박 대통령 본인이 최고인데 정무수석에 누구를 앉힌 들 성이에 차겠나. ‘정무적 판단은 내가 할 테니 정무수석은 의전만 잘하라’는 메시지로 읽었다.”
박근혜 스타일은 박 대통령 승리의 신화(神話)를 써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지금엔 주변 참모들이 박 대통령에게 쉽게 조언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엄존합니다. 박 대통령이 비판받는 핵심 지점인 ‘고집’ ‘불통’의 이미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집이 일군 승리가 만들어 온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초기 측근이었던 B씨 얘기입니다. “한나라당 대표가 막 됐을 때만 해도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면 들어주려는 노력은 했다. 정수장학회를 포기하라는 민감한 얘기도 참모들이 초기에는 다 했다. 물론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박 대통령은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된 지금은 더 하지 않겠나”
‘원칙 사수’와 ‘불통ㆍ고집의 이미지’는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결국 불통ㆍ고집 때문일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을 만든 ‘박근혜 스타일’이 종국에 그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까요,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