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폭행 구속영장 기각… 국민 법 감정에 반한 처사
불구속·집행유예 남발하면 범죄자·피해자 모두 法 경시
피의자의 인권은 보장하되 엄격한 형사재판 이뤄져야
- 박준서 前 대법관·변호사
보도된 사건에서 법관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위의 모든 염려를 배척한 것이다. 법규상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현저한지 여부가 문제 된다면 모르되, 법규상 위 염려의 유무(有無)만이 문제가 되는데도 이를 배척한 것은 상식에 위배된다. 고액의 벌금이나 단기라도 자유형의 실형이 예상되면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방치할 사람은 드물다. 또 현대는 교통이 발달하고 은닉성이 보장되는 지구촌 도시화 시대이므로 도주를 시도할 염려도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일본 등 사법 선진국들의 구속영장 발부 요건이 우리와 유사한데도, 그들은 이러한 경우 당연히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다만 보석 절차로 고액의 보증금을 걸고 석방하고 있어 우리의 사법 운용과 크게 대비된다.
무죄 추정의 원칙상 피의자의 구속은 물론 처벌 개념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 불구속, 집행유예가 주류인 법원 형사재판 실무 관행은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가 매우 심하다. 불구속으로 재판하면 증거 조작의 우려가 크고, 재판 도중 도주 우려가 있다. 불구속인 채로 집행유예가 되면 범죄자는 법을 경시하게 되고 피해자도 법을 외면하게 되어 법질서가 무너진다.
법률 비전문가인 국민의 법 감정이 재판에서 존중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은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 합의한 최소한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인 국민의 법 감정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구속 기준은 국민적 합의에 근거한 것이다. 운동경기에서 규칙을 어긴 경우 선수들이 공감하는 정도의 제재가 가해져야 하듯, 공동체 생활의 규칙인 법 위반에 대해서도 당연히 공동체의 법 감정에 의한 제재가 따라야 한다.
일본의 최고재판소 통계를 보면 2011년 제1심에서 자유형을 선고받은 숫자가 5만5799명인데 구속영장 발부 수는 11만9190건, 이 중 청구에 의한 발부가 11만6102건, 법원이 직권으로 발부한 것은 3088건, 영장이 기각된 건수는 1727건이다. 일본은 자유형뿐 아니라 형사소송법의 규정대로 일정 금액 이상의 벌금형 예상자에 대해서도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고 수사 단계에서 구속영장이 폭넓게 발부됐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사법연감 통계에 의하면 2011년 제1심에서 자유형을 선고받은 숫자가 10만4575건이고 청구에 의한 구속영장 발부 수는 2만8960건, 영장이 기각된 건수는 9042건, 직권 발부가 2만4901건이다. 우리나라는 강제수사의 구속영장이 너무 활용되지 않고 있고 자유형 대상자에게조차도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보고 거의 영장이 발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공무 집행을 하는 경찰관에 대한 폭행범까지 불구속하는 바람에 국민이 크게 분개하는 것이다.
국민이 자기 일도 아닌데 분개한다면 그 형사재판은 보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운동경기에서 선수들이 심한 반칙을 하는데도 심판의 제재가 미약하여 관중이 분개하는 것과 동일한 형국이다.
한·일 간의 구속영장 통계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법관들은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되,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선진국 수준의 엄격한 형사재판으로 법 지배의 국법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