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06 18:33 | 수정 : 2013.12.07 13:52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의 縱橫無盡 강연
동북아시아의 큰 흐름은 뭐냐 하면 중국의 부상(浮上)과 일본의 쇠퇴입니다. 쇠퇴하는 일본의 자존심, 그리고 흥기(興起)하는 중국의 오만, 이것이 충돌할 때는 위험합니다. 지금 한일 간에 티격태격 싸우는 거는 우방국들 간에 서로 좀 맘이 상해서 그런 거구요, 이것은 안보이해관계가 충돌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지난 11월6일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조갑제 기자의 현대사 강좌’에서 천영우(千英宇) 전(前)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이 ‘동북아(東北亞)의 새 지정학(地政學)’이란 주제로 비화(秘話)와 고급정보가 많은 흥미진진한 강연을 했다.

중국‧일본 간에는 안보적 이해(利害)관계가 충돌합니다. 쇠퇴하는 세력은 상당한 불안감, 심지어 불필요한 과도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중국은 여태까지는 조용히 지내면서 힘을 안보이고 '화평굴기(和平崛起)'한다고 했다가도 급할 때는 본색이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우린 아무리 강대국이 된다고 해도 주변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안 되고 우리는 평화로운 대국(大國)이 된다’고 했다가 센가쿠(尖閣)든 난사(南沙)군도든 충돌이 벌어지면 이땐 ‘내 말 안 들으면 힘으로 어떻게 하겠다’ 하는 이런 의지를 은연중에 내비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동아시아,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도, 심지어 미국하고 전쟁했던 베트남까지도 ‘앞으로 중국이 하는 것 보니까 불길하다, 앞으로도 걱정이 된다, 미국하고 안보협력을 해야겠다’ 해서 미국 군함이 베트남에 들어가고 하는 것을 보면 베트남도 굉장히 약은 사람들입니다. 미국하고 싸우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는데 미국하고 군사협력하고 싶겠습니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옛날이야기 가지고 해봤자 소용없고 앞으로 제일 위협은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미국과는 더 가깝게 지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베트남입니다.
센가쿠 열도에서 일본과 중국이 충돌이 벌어지면 동북아의 전략적 지형(地形)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 올 겁니다. 일본이 지금 상황에서 아무리 개헌(改憲)해서 정상적인 국가가 되겠다고 해도 제가 볼 땐 불가능합니다. 중의원(衆議院)‧참의원(參議院)에서 3분의 2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일본에서 인기 있는 지도자가 나와서 선거를 하더라도 개헌까지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하루아침에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센가쿠에서 중일(中日)간에 충돌이 일어날 때입니다. 물론 제정신으로는 충돌을 안 일으킬 것입니다. 서로 기싸움 하고 위협만 하고 이럽니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중국에 갈 때도 보면, 이명박(李明博) 대통령 때도 그랬는데 중국이 우리한테 잘해 줍니다. ‘대한민국을 뭐 대단하게 보겠느냐’고 하겠지만 왜 중요하냐 하면 중국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미국 주도의 중국 포위 전략을 어떻게 깨느냐’인데 일본은 어떻게 해도 미국으로부터 떼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가만히 보면 이게 좀 공을 많이 들이고 간을 빼줄 것 같이 보이면 감동도 잘 하고, ‘중국이 우리 친구구나’ 하면서 잘 속기도 하고 하니, 한국만 한미일(韓美日) 삼각(三角)협력 체제에서 중국 측으로 조금만 끌어들이면 중국의 제일 중요한 외교안보 정책 중 하나는 해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한중 FTA를 하자고 나옵니다. 일본하고 FTA 협상을 하면 순(純) 경제적인 것만 가지고 하기 때문에 숨이 콱콱 막힙니다. 그런데 중국은 ‘한국하고 FTA를 손해 보더라도 하겠다, 그래서 한국을 확실히 우리쪽(중국)으로 끌어들여야겠다’ 하는 정책적 의지가 있기 때문에 밑에서 아무리 까다롭게 굴더라도 위로 올라가면 ‘무조건 한번 해보라’ 합니다. ‘FTA를 하든 뭘 하든 한국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 한국만 확실히 잡아가지고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서 한국만 빼내면 우리(중국)는 산다’고 중국은 생각합니다.
우리가 뭐 저기 태평양 한 복판에 있는 나라 같으면 중국이 그렇게 공들일 이유가 없죠. 그런데 우리가 제일 요충지(要衝地)에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중국의 외교정책에서 동북아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에 그들의 안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중국에 조공(朝貢)바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옛날에 조공을 바쳐야 했던 그런 대국이 요즘은 우리한테 잘해주니까 ‘중국은 우리 우방이고, 일본은 완전히 이거 적이다’ 하는 이런 인식이 지금 확산되고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안보전략적 차원에서는 그 사람들이 잘해준다고 해서 홀딱 넘어가선 안 되고 우리 이해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냐를 잘 봐야 합니다. 일본은 아무리 미워도 안보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일본만큼 완전히 일치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중국하고는 경제적 이해관계는 상당히 깊지만 안보 이해관계는 우리와 상반되는 것 아닙니까? 중국한테 좋은 거는 우리한테 나쁜 거구요 중국한테 나쁜 거는 우리한테 좋은 겁니다. 이 지역에서 우리의 생존과 이해관계가 걸린 안보문제에 대하여 중국이 싫어하면 어떡하나 하는 사람을 보면 제일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중국이 싫어하는 것은 우리한테 좋은 것인데 안보가 어디 자선 사업하는 겁니까? 우리를 지키려는 일인데. 중국한테 조공 바치던 멘탈리티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안보문제를 놓고 중국한테 신세지려고 했다가는 큰 화(禍)를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보정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강대국 사이에서 이런 전략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로서 제일 좋은 보험(保險)을 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까이에 있는 나라는 한반도에 깊은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심(私心)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확실한 보험을 들 수 있는 데가 미국 아닙니까?
한미동맹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존보험으로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중국이 겁이 나서 우리가 미국하고 관계를 약화(弱化)시키고 지금 중국이 하도 잘해 주니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그저 하나 고르면 된다, 꽃놀이 패다’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중국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거든요. 우리가 지금 촌수(寸數)를 헷갈려 가지고 ‘중국이 촌수가 제일 가깝고, 일본이 좀 멀고, 미국은 촌수가 몇 촌인지 모르겠다’ 하는 이런 사람들이 최근에 좀 많이 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