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숙청사진 공개는 김정은의 치명적 실수 (10)
by 주성하기자 2013-12-10 9:00 am
얼마나 심장이 떨렸을까. 아니 살이 떨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저 자리에 앉아 장성택의 체포 모습을 본 간부들은 아마 회의장을 나서면서 다리가 후둘거렸을 것이다. 상상해 보는 내가 다 섬뜩하다.
저들의 표정을 보라. 다음번은 내가 될지 모른다는 서늘함이 간담에 가득한 모습이다. 오른쪽 세 번째 줄에 앉아있는 간부는 장성택 라인인지 장성택이 끌려 나가는 동안 머리조차 들지 못한다.
저렇게 공개 장소에서 장성택을 체포하면서 김정은은 자기 권력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놈도 도전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보위원도, 군인도 아닌 한갓 경찰 따위에게 끌려가는 북한 2인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의 권위에 도전한 자의 권위를 깡그리 짓밟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김정은은 큰 실수를 했다. 사진 공개는 치명적 실수다. 저 자리에 앉은 간부들 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치명적 실수를 했다.
그냥 숙청과 저렇게 시각적 효과까지 고려해 숙청 장면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김정은을 파멸시킬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김정은 자신이라는 점을 증명해주었다.
저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을 보니 대략 200~300명 정도다. 노동당 위원 뿐 아니라, 지방에서 비서국 대상이 되는, 이를테면 도당책임비서, 조직비서, 보위부장, 보안부장 등 여러명의 핵심 수뇌들, 군단장과 군 정치위원급 이상 정도 된다. 이들은 북한을 움직이는 권력들이다. 물론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겠지만.
고모부도 잔인하게 짓밟아버리는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의 눈에는 이제 김정은이 어떻게 보였을까. 저승사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인민들의 눈에는 또 어떻게 보였을까.
면전에서 고모부가 끌려나가는 장면을 연출하고 이를 태연히 지켜보는 김정은의 얼굴을 보라.
저 장면 공개로 김정은은 자신을 포장해 온 ‘자애로운’ ‘어버이’ ‘인자한’과 같은 단어와 영영 작별했다. 이제 북한 인민들은 김정은을 볼 때마다 ‘잔인한’ ‘냉정한’ ‘무자비한’, 더 심하면 ‘교형리’와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바로 장성택이 끌려가는 저 사진과 함께 떠올리며.
권력에 대한 오만 때문인가, 아니면 김정은은 초보적인 정치적 판단도 못할 정도로 휘두를 줄밖에 모른단 말인가.
나의 입장에선 오히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인민들이 끔찍하게 잔인한 인질범에게 협박을 당하는 신세가 됐다는 것을 직접 깨닫게 해줘서. 저들의 마음속에 일어날 심경의 변화가 모여 어떤 것을 초래할지는 나도 알 순 없다.
그러나 어제 김정은은 하나를 얻으려다 더 큰 것을 잃는 실수를 했다고 단언한다. 오, 하늘은 이렇게 역사를 만드는 거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제 블로그에 올린 글은 장성택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글이었다. 내가 올린 예상을 북한이 고맙게도 하루 만에 너무 훌륭하게 입증해주었다.
장성택 실각설이 보도될 때 나는 서울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와 본격적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 아래는 어제 내가 쓴 기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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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빛 숙청 예고된 살벌한 북한의 연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숙청 발표는 북한에 다가올 핏빛 연말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장 부위원장이 중앙당에 입성해 40년간 다져온 인맥을 고려할 때 숙청 규모는 사상 최대인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내부에서는 장 부위원장의 숙청을 김경희가 주도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극악한 역적으로 규정
장 부위원장의 죄명인 ‘반당반혁명종파분자’는 북한 체제에서 ‘역적’ ‘역모’에 해당하는 것으로 친족은 8촌까지 멸족하는 최고의 중범죄다. 장 부위원장에 대해 ‘반국가적 반인민적 범죄행위’ ‘부화타락’ ‘부정부패’ 등 각종 엄중한 사유들도 추가로 나열됐다.
북한이 특정 인물을 처형하면서 이 정도로 매도하고, 체포 장면까지 공개한 전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장 부위원장은 정치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역적 중의 극악한 역적’으로 매도돼 사라진 것이다.
북한 발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장성택 일당’이란 단어가 7차례, ‘장성택과 그 추종자’들이란 단어가 각각 2차례 등장한 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성택 라인을 모두 숙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장 부위원장이 최고의 ‘역적’으로 규정된 이상 그의 라인은 역적을 추종한 무리로 매도돼 대부분 숙청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장 부위원장은 김일성 일가 외에 북한에서 자기 라인을 유지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됐던 유일한 인물이다. 김정일도 이를 어느 정도 용인했다. 측근 그룹은 2004년 장 부위원장이 2년간 실각했을 때 함께 좌천됐지만 이후 복귀한 장 부위원장은 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명실상부한 2인자로 등극한 장 부위원장의 자기 사람 챙기기는 더욱 노골화됐다. 최근 급부상한 북한의 50, 60대 신진 간부그룹의 상당수가 장 부위원장 라인으로 분류된다.
대표적 인물은 이영수 노동당 근로단체부위원장,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최부일 인민보안부위원장, 노두철 내각 부총리, 이종무 체육상, 오금철 인민군 부총참모장 등이다.
● 숙청 범위 최소 수만 명 될 듯
북한에서 특정 인물을 숙청할 때는 일가친척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연관된 인물들이 모두 숙청 리스트에 오른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을 때 황 전 비서와 연루돼 숙청된 인물은 20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로 살아온 황 전 비서와 권력의 중심부에서 의도적으로 측근을 챙겼던 장 부위원장의 위상을 비교해 본다면 이번 숙청 대상자는 2만 명이 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의 숙청 방식은 피라미드식으로 이뤄진다. 이번 경우 장 부위원장과 가까웠거나 그의 라인으로 승진한 인물을 숙청한 뒤 다시 그 사람과 가까웠던 사람을 조사해 또 숙청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숙청작업을 벌이면 대상자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더구나 북한은 반당반혁명종파 사건의 경우 일가족까지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거나 깊은 산골로 추방하기 때문에 숙청 대상자는 셀 수 없이 늘어날 수 있다.
●장성택의 아내 김경희 어떻게 되나?
장 부위원장에게 씌워진 죄명으로 볼 때 아내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도 원칙적으론 숙청 대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김경희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이자 김 씨 혈통의 어른이어서 함부로 숙청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장 부위원장과 이혼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김경희가 장 부위원장 숙청 과정에서 조카의 손을 들어줬을 가능성이 높아 이번 기회를 통해 오히려 김경희의 위상이 높아질 수도 있다.
김경희는 1972년 장 부위원장과 결혼했지만 정상적인 결혼생활은 6년 정도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1978년 장 부위원장이 젊은 여성들과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김경희는 오빠인 김정일에게 부탁해 남편을 제철소 노동자로 혁명화 교육을 보낸 뒤 2년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의 부부 관계는 사실상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은 과거 숙청을 벌일 때에도 여성에게는 비교적 관대했다. 남편이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에 끌려가도 아내를 이혼시켜 친정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기도 했다.
자녀의 경우 수용소에는 아들만 함께 끌고 갔고, 결혼한 형제 중 여자 형제는 출가외인으로 간주해 연대 처벌을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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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그룹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숙청은 그를 추종하던 세력에겐 악몽으로 작용하겠지만, 신진 그룹에겐 절호의 신분상승 기회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 김일성과 김정일 체제 아래에서 북한의 지배계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혈통과 충성심이 입증된 인물들을 수십 년 동안 계속 활용하다보니 북한의 실질적 권력자들이 모인 노동당 정치국 위원회는 70~80대 고령자들이 모인 양로원과 비슷해졌다.
최고령자는 89세의 김국태 노동당 검열위원장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의장(85)과 양형섭 상임위 부의장(88), 이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87), 주규창 기계공업부장(85), 김기남 선전담당비서(84), 최태복 교육담당비서(83), 최영림 총리(83) 등이 대표적인 80대 원로 그룹이다.
이번 장성택 라인의 숙청을 계기로 북한의 핵심 권력에 젊은 피가 수혈되고 그동안 자리를 차지했던 상당수의 인물들이 함께 사라지면 원로그룹이 물러나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인사에서 밀려 났던 신진 그룹에겐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김정은에게 어떻게 평가받는가에 따라 엄청난 신분상승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최근 김정은의 호평을 받았던 연평도 포격부대 부대장은 대대장급에서 일약 중장계급이 맡는 인민군 총정치국 부국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올 5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장정남도 2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소장(한국의 준장급)에 불과했다. 이런 파격적인 발탁은 김정은의 눈에 들기 위한 신진그룹의 충성경쟁을 과도하게 부추길 수밖에 없는 조치다.
이런 충성 경쟁이 과도하게 지속되는 가운데 대남도발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역설적으로 지금과 같은 남북 간의 긴장이 팽팽한 상황에선 김정은의 의지나 승인 없이 도발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따라서 충성경쟁이 불붙더라도 이런 움직임이 반드시 강경 무력도발로 이어진다고 보기엔 부적절하는 관측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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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 방식도 할아버지 방식의 판박이
북한이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죄상을 나열하면서 사용한 ‘양봉음위(陽奉陰違)’라는 말은 남한에서는 생소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귀에 익은 말이다.
동상이몽(同床異夢)과 함께 주로 학교에서 ‘김일성에게 도전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反黨反革命宗派分子)들의 말로(末路)’를 학습하면서 배우는 말이다.
“한 이불 속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동상이몽과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론 딴마음을 품는다”는 양봉음위 모두 중학교 6년 과정은 물론 대학 4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의무적으로 배우는 ‘혁명 역사’ 교과서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과거 반당반혁명종파 사건의 대표적 사례는 1968년 당시 북한의 2인자였던 박금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담당부위원장과 김도만 선전담당부위원장 등 갑산파(甲山派) 숙청이다. 1969년 김창봉 민족보위상 등 빨치산파 군부 인물들을 숙청할 때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는 죄명 외에도 ‘군벌주의자’라는 낙인도 함께 찍었다.
1956년 이른바 ‘8월 종파사건’으로 숙청된 소련파와 연안파의 죄상도 반당반혁명종파분자였다. 반면 1955년 처형된 박헌영 부수상 등 남로당 세력과 1997년 서관히 노동당 농업담당비서의 공개총살 때에는 ‘종파분자’가 아닌 ‘미제의 고용간첩’이라는 죄명이 씌워졌다.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과정은 방식과 죄명 나열에 있어서 김일성에게서 전수돼 60년간 이어져 내려온 북한의 전통적 반대파 숙청 방식의 판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는 죄명이 김정일 통치 시대엔 거의 사용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외형만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숙청방식까지도 김일성 시대를 따라 배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당반혁명종파분자: 북한에서 노동당에서 허용하지 않는 개인적 파벌을 형성해 당과 혁명을 반대했다는 사람에게 붙이는 죄명. 반당분자, 반혁명분자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함께 묶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고 쓴다. 북한에서 당은 곧 수령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낙인이 찍히면 ‘역적’으로 간주돼 본인 숙청 뿐 아니라 일가가 멸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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