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젊은 층이 들썩이는 것은
'現 정권은 독재'라는 좌파 주장에 동의해서라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에 낙담했기 때문
괜한 정치 헛물켜지 말고 청년 실업대책부터 내놔야
- 박두식 논설위원
대자보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평범한 인사말로 시작한다. 그러고선 철도 파업,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등을 거론하면서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 없으신가…(중략)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로 맺는다.
이 대자보에 담긴 주장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좌파 진영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줄곧 외쳐온 내용들이다. 대자보를 썼다는 대학생 역시 좌파 정당의 당원이다. 좌파는 올해 내내 '박근혜 독재론'을 펴 왔다. 지난 몇 달간은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쓴 시(詩)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 시 역시 대자보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중략)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십년 전 대학가에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유행했던 시까지 꺼내 들 만큼 좌파는 다급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2장짜리 대자보가 세상의 주목을 받자 야권과 좌파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치인은 페이스북에 "드디어 봉기가 시작됐다"고 했고, 다른 정치인은 '대학생이 움직인다'고 썼다. 인터넷을 가득 메운 '대자보 급속 확산' '새누리당 긴장' 같은 소식들을 읽다 보면 마치 지금이 혁명 전야(前夜)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야권이 들뜬 것만 놓고 보면 2011년 가을 무렵과 비슷하다. 인터넷 방송 '나꼼수'가 성공을 거두자 대선 후보와 당 대표, 이름 꽤 알려진 좌파 인사들이 일제히 나꼼수에 달려가 몸을 기댔다. 나꼼수가 유행시킨 '쫄지마'가 야당의 공식 구호처럼 자리 잡았다. 당시 야권은 나꼼수의 막말을 승리의 구호처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야권은 이듬해 4월 총선에서 패했다. 선거 전에 예상됐던 야권 절대 우위가 허망하게 무너진 데는 나꼼수의 공이 컸다. 지금 같아선 야권과 좌파는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대자보가 던진 '안녕들 하십니까'란 구호를 계속 밀고 나갈 듯한 기세다.
그러나 대자보의 주장이 정말 많은 국민과 젊은 층의 지지를 받으려면 '현 정권이 독재'라는 좌파의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해 있어야 한다. 어제 아침자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페이스북이 욕설과 비방 글로 뒤덮여 있다고 전했다. 어제 오후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천안함 침몰은 한미 연합작전의 결과이고 짜고 친 사기'라는 글이 맨 앞 페이지에 나와 있고, '이(런)게 대통령이냐? 우리가 따를 이유가 없다'는 글이 이어졌다. 대통령 페이스북 댓글난은 '쓰레기' 'XX년' 같은 옮기기도 힘든 욕설로 가득했다. 같은 날짜 신문에는 김정은의 숙청을 피해 몸보신에 성공한 최룡해를 비롯한 북한군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한 손을 치켜들고 "우리는 억척불변의 김정은 총대"라는 내용의 충성맹세문을 읽었다는 뉴스가 실려 있다. 이 정도는 돼야 독재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실세로 군림했던 유시민씨조차 최근 한 집회에서 "제가 (요즘) '정권 말기' 운운해도 국정원에서 전화 안 오더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북의 잔인한 장성택 처형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 '같은 성격'이라는 희한한 주장을 폈다. 병(病)적 증상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가 최근의 '대자보 현상'에서 아무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젊은 층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간단한 인사말 속 그 무엇인가에 마음이 움직인 것만은 분명하다.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외치는 사회라면 그 공동체는 이미 심각한 중증(重症) 위기를 맞았다고 봐야 한다. 이것은 독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 층의 불안과 좌절·낙담을 풀어줄 정권의 능력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야권 역시 괜히 정치적 헛물을 켤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청년 문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야권이 그토록 갈망하는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