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중국 사업 자료

푸쿠 신화, 한국만의 기술 통했다

화이트보스 2014. 1. 15. 16:50

푸쿠 신화, 한국만의 기술 통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4.01.15 00:24 / 수정 2014.01.15 09:26

중국은 지금 소비혁명 중 <중>
중국서 제조업 살아남는 법
"기술 있으면 아직도 신천지" … 한국 노하우 + 현지 자본 결합
'메이드 위드 차이나'도 방법

상하이 신스제(新世界)백화점의 쿠쿠전자 매장. 이곳에서 판매되는 밥솥(한국 수입)은 4000위안(약 70만원)으로 중국 경쟁사 제품보다 3배 이상 비싸다. [김형수 기자]

지난해 말,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가는 길. 단체 관광객인 듯한 중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비행기에 오른다. 그들 손에 라면박스 절반만 한 크기의 박스가 들려 있다. ‘그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푸쿠’라고 답한다. 박스 구석에 붙은 중국어 ‘福庫’를 보고서야 생활가전업체인 쿠쿠전자의 압력밥솥임을 알았다. 쿠쿠전자의 중국어 이름인 ‘푸쿠(福庫)’는 ‘복을 쌓아두는 창고’란 뜻을 담고 있다. 관광객들은 왜 한국 밥솥에 열광할까? 쿠쿠전자 칭다오 공장에서 해답을 찾았다.

 “7:7:10 전략이다. 쿠쿠는 1년에 밥솥 약 24만 개를 중국인에게 판다. 7만 개는 칭다오에서 만들어 팔고, 나머지 7만 개는 한국에서 수입해 판다. 한국에서 수입해 파는 게 훨씬 고급이다. 나머지 10만 개는 한국에 온 중국 관광객들이 사간다. 비행기에서 봤다는 그 사람들 말이다.”

 조학래 쿠쿠전자 중국법인장의 설명이다. 쿠쿠전자에 한·중 간 경제 국경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칭다오)에 공장을 두고, 최대한 비싸게 팔 수 있는 곳(공항 면세점)에 판매점을 둔다. 그는 “중국 고급 백화점에 들어선 쿠쿠 매장은 그 자체가 ‘광고판’ 기능을 한다”고도 했다. 광고판을 본 중국인들은 한국 관광 때 ‘푸쿠’를 꼭 산다.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조 법인장은 “동이나 스테인리스의 도금·코팅 기술은 중국 기업이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앞서 있다”며 “여기에 맵시 있는 디자인이 소비자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만 있다면 제조업체에도 중국은 아직도 신천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2003년 칭다오에 진출한 이 회사는 제품을 조립해 한국으로 수출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대기업이 꽉 잡고 있는 국내 가전시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가 제대로 팔릴 리가 없었다. 2009년에는 쌓인 적자를 이기지 못해 철수도 고려했다.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린 게 바로 이때다. 조 법인장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최고급 소비층을 공략한다’는 원칙으로 내수 영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수지·철판 등 기초원자재와 핵심 부품은 모두 한국에서 수입해 왔다. 100% 한국 디자인에 ‘중국형 세련미’를 더했단다. 중국에서 시판되는 밥솥의 80%가 300위안 선이지만, 쿠쿠밥솥은 모두 1500위안이 넘는다. 이 회사는 5년 만에 2200만 위안(약 38억5000만원)을 모두 갚고 지난해에는 1000만 위안(약 17억5000만원)의 누적 흑자를 기록했다. 쿠쿠 사례는 중국 소비시장이 확대되면서 기술력 있는 기업은 오히려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 진출 제조업체가 어렵다는 얘기가 많다. 그러나 기술력으로 성공을 일궈가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서부 시안(西安)에 진출한 KMW는 이동통신기지국에 들어가는 안테나와 무선주파수필터 등을 생산하는 기업. 2002년 진출한 후 무려 10년 동안 적자행진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나 2012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100% 넘게 증가한 2억 위안, 순익은 2500만 위안에 달했다. 2013년에도 매출과 순익이 각각 30%씩 늘어 누적 적자를 털어낼 수 있게 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중국에서도 언젠가는 LTE시장이 터질 것으로 확신했다. 본사와 협력해 중국에 적합한 이동통신 핵심 장비 기술을 개발해 놓고 기다렸다. 가격은 로컬(현지) 경쟁업체들보다 높다. 그러나 화웨이·ZTE·루슨트 등 통신업체들은 KMW를 찾는다.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의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정갑용 부총경리는 “중국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분”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체들이 중국 비즈니스에 나서면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술 유출이다. 합작파트너에 기술을 빼앗기고 결국은 쫓겨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부품·소재 기업인 네패스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네패스는 지난해 10월 장쑤(江蘇)성 리양(<6EA7>陽)시와 스마트폰용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 맺었다. 네패스는 장비와 기술을, 리양시는 땅과 세제 혜택을, 현지 벤처투자기업이 자본을 각각 제공하는 조건이다. 중국 측이 51% 지분을 가지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네패스가 맡는다. 압도적인 기술이 있다면 을(乙)의 입장에서도 갑(甲)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회사 이병구 대표는 “지역사회의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위험도 줄이자는 차원에서 초기부터 중국 회사로 출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중국 내 반도체 수요는 한 해 9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10%만 중국 기업이 담당하고 나머지 90%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자체 생산 비율을 30%로 끌어올리려는 중국 정부의 시책에 맞췄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 기업들과 함께 시장을 공략하는 ‘메이드 위드 차이나(Made with China)’ 전략이다.

◆특별취재팀=김광기·한우덕·신경진·조현숙 기자, 이봉걸 무역협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