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하나 잘 매듭지어졌다고 '북한이 달라졌다' 기대는 금물
北 체제 개혁·사회 개방 없이 경제 회복과 공존공영 불가능
남북관계 우리 전략대로 이끌고 북한 동포와의 일체감 높여야
-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예비역 육군 중장
오늘 북한의 '변화'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니다. 어떤 나라도 홀로 폐칩(閉蟄)된 삶을 살 수 없는 지구촌 시대이니 북한 사회도 어차피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고 있으며 곧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도 한다. 그 와중에 북한 주민의 체제에 대한 충성심은 물론 두려움도 급격히 사라지고 있고 관료들은 부패한 데다 군대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체제 유지의 기본 요소들이 두루 흔들리고 있으니 전문가들의 '북한 급변사태'론(論)이 빈말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다르다. 오늘 북한의 최고 목표는 1997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왕조적 군사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북한의 변화, 즉 '핵 폐기'는 물론 '군사 도발의 포기'나 '북한의 개혁·개방'은 사실상 원천적으로 어렵다. 오늘 북한으로서는 한국을 압도할 길은 핵뿐이요, 적화통일 외에는 항구적 체제 위기를 벗어날 길도 없고, 개혁개방은 체제 붕괴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비교적 합리적이었다는 장성택의 처형도 결코 좋은 조짐은 아니다.
아쉽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회담 하나 잘 매듭지어졌다고 또다시 "김정은은 다를 것"이라며 "남북한이 획기적 발상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공존·공영의 협력체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서두는 일부의 조바심이 조심스럽다. 물론 우리가 협력해서 북한 체제가 바뀌고 공존·공영의 협력체제를 만들 수 있다면 왜 안 돕겠는가? 성심성의껏 도울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 개혁과 사회적 개방 없이 북한 경제의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적어도 다 허물어져 가던 김정일 체제를 살려내 우리는 우리대로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고, 북한 동포 역시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참혹한 삶을 살게 한 '햇볕정책'의 악몽(惡夢)을 재현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 그랬다가는 이제는 우리가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 냉철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정부가 한결 의연해 보인다. 지난번 개성공단 사태도 나름대로의 단호함과 유연함으로 그런대로 잘 정리하더니 이번에도 그랬다. 아마 북한으로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빌미로 궁지에 빠진 김정은 체제의 입지를 되살리고 남남(南南) 갈등, 한·미(韓美) 갈등까지 내다본 제법 큰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하필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되어 있는 기간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을 때부터 예측됐던 일이다. 일부 우려도 없지는 않지만 그 정도면 일단은 잘 마무리한 셈이다.
그래서 좀 더 큰 기대를 해 본다. 이제는 자유통일을 직접 겨냥하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국방 태세와 한·미연합사 체제를 더욱 튼튼하게 재정비해서 북한의 도발과 핵위협에 대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해 북한을 '한반도 평화·자유통일·번영'의 길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오늘의 내외 여건을 보면 마치 우리의 용단을 재촉하는 듯하다.
그런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를 우리의 전략에 따라 우리가 주도적(主導的)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끌어 가야 자유통일로 가지 북한에 끌려다니면 적화통일밖에 갈 곳이 없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 북한 동포의 동포적 일체감을 높이고 그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김정은 체제와의 대화만으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과제다. 아마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한없는 동포애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경우는 북한이 그리 해 왔듯이 정교하고도 집요한 전략적 심리전과 간접 접근적 정책, 그리고 공작 차원의 적극적 책략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회담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우물쭈물할 여유도 없다. 더 늦기 전에, 적어도 북한 핵이 기정사실이 되기 전에 매듭을 지어야 한다. 회담 따위에 너무 매달려 큰 그림을 놓치지 말고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면서 시대적 사명감과 용기, 창조적 지혜로 한반도의 새 역사를 서둘러 써 나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