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01 03:00
[숨진 세 母女… 그들이 남긴 가난의 흔적]
한달 식비 20만원, 널브러진 약병들
당뇨병 앓는 언니 곁에서 돌보느라 둘째 딸은 일도 못하고 집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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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했던 한때 28일 박씨의 세간살이를 정리하면서 발견된 앨범에는 큰딸 김씨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세 모녀의 사진이 꽂혀 있었다.
28일 오전 세 모녀의 세간살이와 함께 절망의 흔적까지 폐기물 운반 차량에 실려 사라졌다. 만화가를 꿈꾸던 두 딸의 손때가 묻은 만화책과 습작들, 아버지가 살아있던 시절 네 가족이 함께 찍은 행복한 사진첩 속 해맑게 웃던 어린 두 딸과 다정했던 부부의 환한 미소도 쓰레기봉투에 담겼다.
2002년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암(癌) 투병 끝에 숨진 뒤 가족의 행복은 산산이 부서졌다. 살던 집을 팔고 이곳 반지하 방으로 옮긴 뒤인 2006년부터 어머니 박씨가 쓴 가계부엔 고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족의 주식(主食)은 라면·빵이었다. 박씨는 하나에 600원 하는 라면 개수까지 꼼꼼히 적어넣었다. 한 달 수입은 박씨가 식당일로 벌어오는 120만원이 전부였다. 38만원인 집세와 공과금 15만원을 내고, 세 모녀가 쓴 식비는 한 달에 채 20만원을 넘지 못했다. 세 모녀는 지난 26일 오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완전히 타버린 번개탄과 현금 70만원이 든 흰 봉투, '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은 글이 유서처럼 남아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했지만, 가난은 모녀를 서서히 집어삼켰다. 서른 살이 넘은 두 딸은 경제력이 없었다. 큰딸 김씨는 오랜 세월 당뇨를 앓아 거동조차 힘들었고, 언니를 간병하느라 함께 집안에 남아 있던 작은딸(32)도 직업이 없었다. 아버지가 남긴 빚까지 짊어졌던 박씨 가족은 딸들이 만든 신용카드 3~4개로 '돌려막기'를 하면서 생계를 이었다. 지난달엔 38만원이던 월세가 50만원으로 올랐다. 어머니 박씨마저 지난 1월 말 길에서 넘어져 오른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식당일을 나가지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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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의 어린 시절이 담긴 세 모녀(母女)의 앨범.
박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정 등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 서울 송파구청 복지정책과 직원은 "30대 딸이 둘이나 있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생계가 이 정도로 어려울 것이란 짐작을 하기 어려웠다"면서 "통장(統長) 등 이웃들을 탐문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권유하기도 하지만 박씨 가족은 주변 누구에게도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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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짜리 콩나물·부추까지… 빼곡한 지출… 박씨의 가계부에 적힌 2006년 2월의 지출 내역. 120만원의 수입으로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세 식구의 식비와 생활용품, 약값 이외에는 지출할 돈이 거의 없었다. /이슬비 기자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은 쓸쓸했다. 세 모녀의 시신은 빈소도 없이, 상주(喪主)도 없이 차가운 영안실에 사흘 동안 안치돼 있었다. 박씨의 남동생과 장례비를 지원하기로 한 교회 관계자들만 지켜보는 가운데 모녀의 시신은 28일 오후 2시쯤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을 떠나 서울 추모공원 장지(葬地)로 향했다.
- 열악한 복지현장… 복지사 2명이 3만명 맡기도 이기문 기자
- 세 모녀가 지원 요청했었다면 받을 수 있었던 혜택들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