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애국 남아들이 숨죽여 부르는 저항의 노래
최근 북한의 애국적인 남아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다.
1. 구천에 사무쳤네 백성들 원한소리
피눈물 고이였네 억울한 이 세상
산촌아 말해다오 부모처자 빼앗기고
백성의 등뼈 갉는 이 세상 어이 살리
2. 칼집에 꽂힌 장검 보습을 벼리여서
사래긴 논과 밭을 갈았으면 좋으련만
나서라 형제들아 김정은이 몰아내고
가슴에 쌓인 원한 장부답게 풀어보자
눈에 힘을 주고 숨 죽여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10년 전 룡천을 잊지 않는다.
2004년 4월 22일, 북한 평안북도 룡천군역 화차 대피선에서 낮 12시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개천-태성호 물길 공사용으로 중국에서 수입해온 질안비료 한 방통(100t)이 폭발하고, 그 폭발로 인해 옆에 연결돼 있던 유리를 실은 화차가 같이 폭발하면서 수많은 유리조각들이 파편으로 비산(飛散)했다.
새벽에 신의주역에서 내려와 룡천역 대피선에 세워둔 2개의 화차에서 그날 오전 11시 30분쯤 전기기관차의 고압선이 원인 모르게 끊어져 화차 지붕에 닿으면서 전기 불꽃방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화차 주위에 몰려들었고, 특히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가던 룡천소학교(초등학교)의 어린 학생들이 화차 주위에 많이 몰려들었다. 이 때문에 12시 쯤 발생한 폭발로 어른들보다 초등학생들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하였다.
1. 구천에 사무쳤네 백성들 원한소리
피눈물 고이였네 억울한 이 세상
산촌아 말해다오 부모처자 빼앗기고
백성의 등뼈 갉는 이 세상 어이 살리
2. 칼집에 꽂힌 장검 보습을 벼리여서
사래긴 논과 밭을 갈았으면 좋으련만
나서라 형제들아 김정은이 몰아내고
가슴에 쌓인 원한 장부답게 풀어보자
눈에 힘을 주고 숨 죽여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10년 전 룡천을 잊지 않는다.
2004년 4월 22일, 북한 평안북도 룡천군역 화차 대피선에서 낮 12시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개천-태성호 물길 공사용으로 중국에서 수입해온 질안비료 한 방통(100t)이 폭발하고, 그 폭발로 인해 옆에 연결돼 있던 유리를 실은 화차가 같이 폭발하면서 수많은 유리조각들이 파편으로 비산(飛散)했다.
새벽에 신의주역에서 내려와 룡천역 대피선에 세워둔 2개의 화차에서 그날 오전 11시 30분쯤 전기기관차의 고압선이 원인 모르게 끊어져 화차 지붕에 닿으면서 전기 불꽃방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화차 주위에 몰려들었고, 특히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가던 룡천소학교(초등학교)의 어린 학생들이 화차 주위에 많이 몰려들었다. 이 때문에 12시 쯤 발생한 폭발로 어른들보다 초등학생들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하였다.
- 룡천 폭발사건 당시 건물이 대파된 룡천 초등학교 모습.
룡천군은 신의주시에서 평양 방향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룡천역 화차 대피선은 기본 역에서 1000m 정도 떨어져 있었고, 폭발 현장에는 직경 약 15m, 깊이 10m 정도의 큰 웅덩이가 생겨났다. 철길은 뭉텅 끊어졌으며 룡천군 읍소재지의 거의 모든 공공건물들과 사택들은 폭풍으로 무너지고 벽체에 금이 갔다. 이에 전국적으로 돌격대를 꾸려 룡천으로 가서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지원해준 자재를 가지고 기존 건물을 다 허물고 새로 공사를 했다. 룡천 폭발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났는가?
북한 당국은 폭발 당시에는 우연히 일어난 사고로 북한 내외부에 홍보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김정일 암살을 위한 의도적인 폭발이라고 하면서 4년동안 꾸준히 사건을 수사했다.
- 서울 언주초등학교 학생들이 2004년 4월 30일 열차 폭발 사건이 발생한 북한 룡천 어린이들을 위해 쓴 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북한에서는 탄광과 광산을 비롯한 공사장들이 대부분 뇌관을 장약한 질안비료를 발파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질안비료는 전기불꽂방전으로는 폭발이 불가능하고 오직 뇌관을 터뜨려 폭발하게 되어 있는데, 사건 당시 폭발원인은 애매하였다. 폭발한 화차는 원래 김정일이 탄 열차가 낮 12시 쯤 통과할 신의주역에 있었다.
그런데 당일 새벽 0시 쯤, ‘낮 12시 쯤에 김정일이 탄 열차가 신의주역을 통과하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받은 신의주역 역장은 새벽 1시 쯤에 역에 나와 순찰을 하다가 역에 서있는 문제의 화차들을 보고 룡천역 화물차 대피선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신의주역 역장은 수령결사보위에서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돼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날 김정일이 탄 열차는 사전 통보와 달리 신의주역을 낮 12시가 아닌 11시에 지나갔고 룡천역을 통과하지 않고 천마산 방향으로 들어갔다. 천마산 방향으로는 일반 열차는 통과하지 못하며, 김정일이 탄 1호 열차만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천마산에 김정일의 초대소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통행도 금지되어 있다. 결국 김정일이 천마산 초대소로 들어간 후에 폭발이, 그것도 룡천역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 2004년 4월 27일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북한 룡천 폭발사건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2003년에 처음으로 휴대폰을 1270달러에 팔아주면서 사용을 허가했는데, 결국 이 사건으로 휴대폰을 사서 이용하던 사람들은 돈만 떼였다고 불만이 많았다. 그때 사용되던 휴대폰은 중국 카드를 넣으면 중국과 통화되고 북한 카드를 넣으면 북한과 통화하게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오직 북한 카드만 사용하게 개조하고 다시 도입이 된 것이다.
신의주역에 철도노동자로 가장시켜 보위원을 침투시키고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던 보위부는 ‘2008년 초에 철도성 8,9호 담당 부상(차관 격)이었던 서남식은 남조선에서 6·25 시기 파견한 간첩이었다’고 하면서 그를 체포하고, 그의 돈에 매수돼 간첩이 된 철도성 간부 7명과 문화상(장관 격)이었던 김진성을 체포·총살하고 비로소 룡천사건이 마무리됐다고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북한에서는 룡천사건을 한국정보기관이 조작한 것이라고 간부들에게 통보하였지만 실제로는 김정일의 독재정권에 항거한 정의로운 애국자들의 소행이었다는 것을 많은 간부들이 알고 있었다.
룡천 사건에서 보듯 북한에도 저항의 움직임이 불시에 터져나오고 있다. 가장 참혹한 김정일 시기에도 그랬다. 지금 김정은 독재에 항거하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애국투사들에 의해 김정은과 그를 추종하는 독재의 아성은 반드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