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抗癌 치료 받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으니까

화이트보스 2014. 3. 27. 11:53

抗癌 치료 받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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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3.2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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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癌 투병 사실 밝힌 소설가 복거일… 평소 과음·담배 안 하고 살았던 그
    2년 반 숨긴 채 '역사 속…' 속편 탈고 "그 동안 쓴 글 모으면 50권은 될 것"

    "2년 반 전 간암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전이(轉移)돼 치료받기엔 좀 늦은 상태였다. 그날 이후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암에 걸린 선배 소설가들이 항암 치료를 받느라 글을 쓰지 못하다가 끝내 세상을 뜨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소설가 복거일(68)씨가 암 투병 중이라고 26일 처음 밝혔다. 그는 "1991년 세 권까지 낸 과학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 속편을 쓰겠다는 독자와의 약속을 스무 해 넘게 지키지 못한 게 암 진단을 받자마자 가장 크게 마음에 걸렸다"며 "암에 걸린 걸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역사 속의 나그네' 탈고에 매달린 끝에 작년 봄에 속편 세 권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고 올가을에 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음이나 줄담배를 하지 않았고 평소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다.

    “무슨 일을 하든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힌 소설가 복거일씨 사진
    “무슨 일을 하든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힌 소설가 복거일씨. /문학동네 제공
    복씨는 이번 주에 낸 자전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를 통해 암 투병 사실을 에둘러 밝히기도 했다.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 현이립이 "내 마지막 봄철이 흐른다"며 한강 주변을 산책하는 하루를 담담하게 수상록(隨想錄)처럼 그린 소설이다. 복씨는 "암에 걸린 사실을 숨기는 것에도 지쳐서 소설을 통해 밝힌 것"이라며 "약도 먹지 않는데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고 했다.

    복씨는 자전 소설에서 "죽음도, 내세(來世)도 없다"며 "그저 목숨이 삭아들어 문득 꺼지는 순간이, 그 아득해지는 순간이 있을 따름"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사(個人史)를 되돌아보면서도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성찰했다. 중국의 부상(浮上)과 한일 관계 악화를 가장 크게 걱정했다. "막 취임한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하는 일은 예사가 아니다. 중국은 엄연히 북한의 후견인이다. 일시적으로 관계가 냉랭해졌다 하더라도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논객인 복씨는 공무원 부패의 제도화와 전관예우를 비판하면서 '법대(法大) 망국론'도 펼쳤다. "사회가 비교적 깨끗하고 공정하면, 무엇을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는 공대나 농대에 인재가 몰린다. 사회가 썩으면, 관리가 되는 길을 찾아서 법대에 인재가 몰린다."

    복씨는 영어 공용어론(論)을 굽히지 않았다. 실제로 부모 소득이 높은 아이들일수록 영어를 더 잘해 좋은 일자리를 얻는, '영어 격리(English Divide)'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택하면 가난한 아이들도 돈 들이지 않고 어릴 때부터 영어를 익혀 계층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복씨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그 모든 것이 한가로운 걱정"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그는 "지식인은 남들이 하지 않는 한가로운 걱정들을 하는 사람"이라며 "우리의 척박한 지적 풍토를 좀 더 낫게 만들려면 세상을 문명적 수준에서 살피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과학소설 전문가답게 인류의 미래에 대한 상상도 크게 펼쳤다. 꿀벌 개체 수가 지금처럼 줄어들다가 멸종하면 생태계에 기근이 닥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먼 미래에 지구가 황폐해지면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인간 유전자를 우주선에 싣고 가 다른 행성에서 인류를 존속시킬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복씨는 "기력이 다할 때까지 쓰긴 쓸 것"이라며 "그동안 쓴 글들을 모두 펴내면, 50권은 될 것 같지만, 후세에 읽히리라고 확신하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 부끄럽고 아쉽다"고 했다.
    박해현 |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