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이라도 하라"는 압박에 "'도로 민주당' 될 일 있나"
1990년 10월8일 김대중(DJ) 평민당 총재는 당사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노태우 정권과, 3당 합당으로 거대여당이 된 민주자유당을 겨냥한 단식이었다. 거대여당은 여야 합의로 통과된 지방자치법을 어기고 지방자치제 선거를 연기하려 했다. 김 총재는 지방자치제 전면실시와 내각제 개헌 포기 등을 요구했다. 당시 그의 나이 64세였다.
단식 8일째가 되자 탈수현상이 나타났다.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DJ는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된 김영삼(YS)이 병실을 찾아와 ‘단식 중단’을 요청했지만 DJ는 듣지 않았다. 단식은 13일간 이어졌다.
단식 8일째가 되자 탈수현상이 나타났다.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DJ는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된 김영삼(YS)이 병실을 찾아와 ‘단식 중단’을 요청했지만 DJ는 듣지 않았다. 단식은 13일간 이어졌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기초선거 공천 폐지 입법 관철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결국 노태우 정권과 여당은 명분에 밀려 김 총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1991년 기초·광역의원 선거가 실시됐고, 1995년에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돼 기초·광역단체장도 직선으로 뽑았다.
강경파, 안철수에게 ‘단식’ 압력까지
24년이 흘러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최근 ‘DJ의 단식’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당내 강경파 의원들 일부로부터 “DJ처럼 목숨을 걸고 단식이라도 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기초선거 불(不)공천을 관철시키기 위해 단식 카드를 써서라도 대여(對與) 강경 투쟁에 나서라는 얘기다. 이런 압박은 곧 안철수 대표가 기초선거 불공천 문제로 ‘정치적 벼랑끝’에 몰린 상황을 웅변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새정치연합 강경파 일부 의원들 사이에선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불공천 공약을 지키도록 압박하기 위해 안 대표가 단식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신경민 최고위원은 “불공천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존재 이유이고, 합당의 전제조건이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두 대표(안철수·김한길 대표)가 나가야 한다. 시위하든, 농성하든, 단식하든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불공천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최재성 의원은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에 대해 “DJ가 지방자치제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면 대선 때 약속한 기초공천 폐지를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절체절명의 요구”라고 했다.
- 1991년 4월1일 김영삼(왼쪽) 민자당 대표와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대구 금호호텔에서 회담을 갖고 정국현황을 논의하고 있다.
안철수 측 “‘도로 민주당’ 될 일 있나”
하지만 안 대표 측은 강경파의 단식 요구를 일축하는 분위기다. 안 대표와 가까운 조경태 최고위원은 7일 “단식은 도움이 안되는 방식이다. 과거식 투쟁 방식으로는 ‘도로 민주당’ 성격을 짓게 하는 결과밖에 안된다. 일부 의원들이 하고 있는 농성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또 “단식 투쟁을 압박하는 것은 오히려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을 흔드는 행위”라고 했다.
안 대표의 한 측근도 “단식 투쟁을 검토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된다”고 했다.
정치적 외통수 상황에 몰린 안철수
단식 투쟁 방식은 일축하고 있지만 안 대표로선 사실 진퇴양난 상황에 처해 있다. 정치권에선 “안철수가 외통수에 몰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기초선거 불공천 문제에 대해 안 대표가 계속 밀고 갈수도, 그렇다고 불공천을 철회할 수도 없는 처지라는 뜻이다. 안 대표가 전당원투표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50%씩 반영해 불공천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상황을 빠져나오기 위한 돌파구 마련 차원이다.
기초선거 불공천은 안철수 측과 민주당이 통합할 때 핵심 명분으로 내걸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탄생의 중요 배경이 된 ‘안철수 상표’인 셈이다.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당내 강경파 반발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불공천을 철회하기가 어렵다. 불공천을 철회해 공천을 하는 순간 야권 통합의 명분은 사라지고, 안철수 대표는 정치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7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기초선거 공천폐지 입법 관철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정치적 상상력 아무리 발휘해봐도 해법 찾기 어려워”
정치평론가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안철수는 외통수에 빠졌는데 나올 길이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여권을 다그쳐 불공천을 위한 법개정을 하자고 하지만 여권은 무시전략으로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불공천 방침을 바꿔 공천하는 순간 안철수는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는다. ‘또 철수했나’라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불공천을 밀어붙이면 새정치연합이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대패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그 떨어진 사람들이 가만 있겠나. 당내 강경파들은 또 가만 있겠나.”
황 연구위원은 또 “문제는 정치적 상상력을 아무리 발휘해봐도 안철수 입장에서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데 있다”며 “지금으로선 새누리당이 안철수의 요구에 응해 불공천에 동참하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새누리당이 그럴 가능성이 있겠나”라고 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여야가 일정 선에서 타협을 한다면 안 대표에게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이를 테면 새정치연합 김영환 의원이 7일 언급한 것처럼 ‘영호남 지역은 불공천하고 수도권은 공천을 하는’ 등의 방식이 절충안으로 거론될 수 있다.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야당을 너무 궁지로 몰면 안된다”는 의견은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새누리당이 절충안으로 타협할 가능성은 낮다.
안철수 측 한 인사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안 대표가 딜레마에 처한 것은 맞다. 출구전략도 찾기 어려워 보인다. 큰 위기다. 이 위기를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안 대표는 조기에 정치적으로 추락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번 위기 국면을 안 대표가 어떤 형태로든 돌파해 나간다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구체적인 방법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번 지켜보자.”
비교적 솔직한 얘기다. 안철수는 위기를 돌파할 정치력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