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태닉 사고와 비교]
승무원 생존율 타이태닉 23%, 세월호는 79%
지난 20일 뉴욕타임스(NYT)는 배를 버리고 달아난 선장 이준석(69)씨에 대해 '세월호의 악마(Evil of the Sewol)'라고 표현했다. NYT는 "타이태닉 침몰 사고 이후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파괴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각국 외신은 세월호와 100여년 시차를 두고 침몰한 타이태닉을 예로 들며 이씨를 '선원의 치욕'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두 배의 침몰 과정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타이태닉호의 여성, 어린이 생존자 비율은 각각 74%와 51%였다. 반면 남성의 생존율은 20%로 낮았다. 전체 승무원 생존율은 23%(남 22%·여 87%)에 불과했다. 타이태닉에선 ①여성·어린이 ②남성 ③여승무원 ④남승무원 순서로 탈출한다는 순위가 지켜졌다. 이 배의 스미스 선장은 탈출 명령을 내린 뒤 구명정 강하 작업을 끝까지 지휘했고, 마지막 구명정에 탑승하라는 부하들의 권유를 뿌리친 채 가라앉는 배에 남았다. 항해사 3명도 선장과 함께 숨졌다. 기관사와 화부(火夫)들은 배의 최하층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 보일러에 석탄을 때워 발전기를 돌렸다. 덕분에 타이태닉호엔 침몰 2분 전까지 전기가 들어왔고, 승객들은 불빛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화부들도 모두 배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 선박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는 바다에 빠진 승객이 잡을 수 있는 물건을 있는 대로 찾아 던지다가 숨졌다. 선박 악단(樂團) 음악가 8명은 "승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우리의 일을 한다"며 침몰 10분 전까지 음악을 연주하다 전원 사망했다. 이들은 생사(生死)의 기로에서 '승객이 모두 탈출할 때까지 배를 지킨다'는 선원의 명예를 필사적으로 지켰다.
타이태닉호의 여성, 어린이 생존자 비율은 각각 74%와 51%였다. 반면 남성의 생존율은 20%로 낮았다. 전체 승무원 생존율은 23%(남 22%·여 87%)에 불과했다. 타이태닉에선 ①여성·어린이 ②남성 ③여승무원 ④남승무원 순서로 탈출한다는 순위가 지켜졌다. 이 배의 스미스 선장은 탈출 명령을 내린 뒤 구명정 강하 작업을 끝까지 지휘했고, 마지막 구명정에 탑승하라는 부하들의 권유를 뿌리친 채 가라앉는 배에 남았다. 항해사 3명도 선장과 함께 숨졌다. 기관사와 화부(火夫)들은 배의 최하층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 보일러에 석탄을 때워 발전기를 돌렸다. 덕분에 타이태닉호엔 침몰 2분 전까지 전기가 들어왔고, 승객들은 불빛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화부들도 모두 배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 선박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는 바다에 빠진 승객이 잡을 수 있는 물건을 있는 대로 찾아 던지다가 숨졌다. 선박 악단(樂團) 음악가 8명은 "승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우리의 일을 한다"며 침몰 10분 전까지 음악을 연주하다 전원 사망했다. 이들은 생사(生死)의 기로에서 '승객이 모두 탈출할 때까지 배를 지킨다'는 선원의 명예를 필사적으로 지켰다.
시간·지형·수온(水溫) 등 어떤 조건을 봐도 세월호에선 훨씬 많은 사람이 생존해야 했다. 타이태닉호는 칠흑 같은 오후 11시 40분 해안에서 640km 떨어진 북대서양 망망대해에서 침몰했다. 오전 8시 45분 사고를 당한 세월호는 인근 관매도까지 거리가 고작 3km였다.
타이태닉호 사고 지점 수온은 영하 2도로 성인이 10분 내로 목숨을 잃는 온도였지만 세월호는 영상 11도의 바다였다. 성인이 몇 시간은 버틸 수 있었다. 타이태닉호 침몰 지점은 수심 3800m였고 세월호는 37m였다. 타이태닉호 땐 완전 침몰 후 1시간30분 뒤에야 구조선이 도착했고, 세월호 구조선은 배가 아직 떠 있던 사고 55분 만에 도착했다.
더구나 세월호는 100년간 인간이 개발한 헬리콥터와 고속정, 1초 만에 자동으로 펴지는 구명정 등 첨단 장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현대 기술'을 동원하고도 세월호는 속수무책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타이태닉엔 자기 목숨보다 임무와 명예를 먼저 생각한 선장과 선원이 있었고, 세월호는 그 반대였기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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