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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탕보다 황설탕이나 흑설탕이 더 낫다?…설탕의 역설

화이트보스 2014. 5. 7. 12:48

백설탕보다 황설탕이나 흑설탕이 더 낫다?…설탕의 역설

  • 이미숙
    식생활 클리닉 '건강한 식탁' 원장
    E-mail : doctor@dietnote.co.kr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하고 서울의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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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5.0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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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맛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류학자들은 자연에서 식량을 찾았던 원시인들에게 단맛이 있는 음식은 대부분 ‘먹어도 좋다’는 사인으로 해석됐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친 단맛 사랑은 건강을 해친다. 특히 감미료의 대명사인 설탕은 소금, 밀가루와 함께 피해야 할 3백(白) 식품으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으며 건강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도대체 그 맛있는 설탕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감미료의 대명사인 설탕, 소금, 밀가루는 우리가 피해야 할 3백(白) 식품으로 꼽힌다.
    감미료의 대명사인 설탕, 소금, 밀가루는 우리가 피해야 할 3백(白) 식품으로 꼽힌다.
    사실 요즘 설탕의 위상을 보면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따로 없다. 지금은 비록 성인병의 원흉, 충치 유발 물질이라는 죄목으로 기를 못 펴고 있지만 설탕도 잘 나가던 한때가 있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귀해서 선물로 인기 만점이었다.

    설탕 선물세트의 인기는 설탕이 대량 생산돼 너무 흔해지고 값이 싸지자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게 된다. 더 나아가 요즘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설탕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설탕 섭취 규제를 위한 전 세계적 노력이 폭넓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설탕을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하루 50g이던 권장 섭취량을 25g으로 낮추도록 권고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당류 섭취량은 평균 50~70g이다. 콜라 한 캔만 마셔도 25g은 훌쩍 넘는다. 커피믹스 한 개에도 약 6g의 설탕이 들어 있다.

    이번 WHO의 권고안에 대해 식음료 업계에서는 지나치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설탕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가공식품의 설탕 함량 표기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세계 최대의 설탕 소비국 중 하나이자 비만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멕시코는 작년 9월 설탕세(稅)를 도입하기도 했다.
    우리가 건강 음료로 알고 있는 두유 대부분은 제조·가공 과정에서 식품첨가물, 설탕 등을 넣어 맛을 낸 가공 음료다.
    우리가 건강 음료로 알고 있는 두유 대부분은 제조·가공 과정에서 식품첨가물, 설탕 등을 넣어 맛을 낸 가공 음료다.
    물론 설탕을 위한 변명도 있다. 사실 설탕 자체가 그렇게 나쁜 음식은 아니다. 설탕은 과당과 포도당이 한 분자씩 결합된 형태로 들어 있는 탄수화물의 일종인데, 섭취 후 빠르게 에너지원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운동 후 피로회복에 좋다. 단맛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반면 설탕의 과잉섭취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비만, 고지혈증, 당뇨, 충치 등 다양하다. 비만, 고지혈증은 모두 설탕 섭취 후 급격히 증가하는 인슐린 작용 때문에 발생한다. 인슐린은 포도당을 체지방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설탕을 많이 먹으면 살이 쪄서 비만이 되거나 혈액 중에 지질농도가 짙어지게 되는 것이다.

    당뇨의 경우 달게 먹는 것이 직접적으로 발병의 원인이 되지는 않지만, 일단 당뇨가 발생하면 설탕 섭취는 당뇨를 급격하게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설탕이 충치를 유발하는 이유는 충치 유발 세균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설탕을 세균들도 좋아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설탕의 지나친 섭취가 건강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중독성’ 때문이다. 평소 설탕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달게 먹게 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단것을 자꾸 먹으면 맛의 역치(閾値)가 증가한다. 맛의 역치란 쓴맛을 쓰다 느끼고, 짠맛을 짜다 느끼고, 단맛을 달다고 느낄 수 있는 최저농도를 말한다. 단맛에 중독된 사람은 어지간히 달지 않으면 달다고 느끼지 못하게 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황설탕이나 흑설탕은 모두 정제당으로, 맛이나 향에 차이가 있을 뿐 영양이나 건강상 이점은 하나도 없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황설탕이나 흑설탕은 모두 정제당으로, 맛이나 향에 차이가 있을 뿐 영양이나 건강상 이점은 하나도 없다.
    최근 우리 음식은 지나치게 단맛이 강해지고 있다. 불고기 양념도 달착지근하고, 생선조림도 달곰하다. 원래는 달지 않았던 전통 떡들도 이제는 달콤함이 대세다. 대표적인 감미료인 설탕이 그만큼 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정 내에서의 식사보다 외식이 더 많아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판매를 목적으로 만드는 음식들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보다 더 자극적인 맛을 추구한다. 특히 단맛은 대부분의 사람이 선호하는 맛이기 때문에 음식은 점점 더 경쟁적으로 달아진다. 수정과나 식혜 등의 전통음료 역시 지나치게 설탕을 많이 넣어 단맛이 매우 강하고, 각종 과실주 역시 다량의 설탕을 넣어 만들기 때문에 술마저도 달콤하다.

    건강을 생각해서 설탕 대신 각종 효소액을 만들어 요리한다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효소 발효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고 고농도의 설탕물에 약초나 과일의 성분이 일부 녹아서 나올 뿐이다. 효소액이 아니라 당 침출액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효소액에 들어간 설탕은 분해돼 독성이 없어진다는 말 또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실제로 설탕 분자는 그대로 남아있다. 백설탕 대신 황설탕이나 흑설탕을 쓰는 것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황설탕이나 흑설탕은 모두 정제당이다. 단지 오랜 가열로 갈변(갈색으로 변함)된 것으로 맛이나 향에 차이가 있을 뿐 영양이나 건강상 이점이 하나도 없다.

    점점 더 달아지는 우리의 입맛에 이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농축되고, 추출되고, 정제된 강렬한 단맛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기 전에 자연의 순하고 건강한 단맛을 찾아 되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