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해경이다
기사입력 2014-05-09 03:00:00 기사수정 2014-05-09 03:00:00


사고 후 보여주는 해경의 비상식적 행동은 일단 해경이 경찰 조직이지 재난에 대처하는 방재 조직이 아니라는 점에 뿌리가 있다. 해경은 말 그대로 ‘바다 경찰’이다. 경찰은 수사, 추적, 분석, 처벌 등에 전문적인 조직이지만 사람 목숨을 구하는 방재업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육상의 경우 치안과 방재를 담당하는 조직이 경찰청과 소방방재청으로 나뉘어 있지만 바다는 해경 혼자 전담하고 있다. 그동안 해경의 임무는 경찰 쪽에 무게 중심이 있다 보니 방재 업무는 자연히 찬밥 신세였다. 이번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에게 전문 해양방재 사령탑이 없었다는 점이다.
해경 비판하면 “당한다”
해경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직 안에 무관과 문관이 있다고들 말한다. 문관이 바로 방재를 담당하는 인력이다. 하지만 이들은 열심히 일해봐야 진급도 되지 않고 기껏 올라가봐야 오염방재국장 정도가 최고위 직이다. 연간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쓰는 차관급 기관이면서도 과도하게 인건비를 지출하면서 정작 필요한 안전 관련 지출은 미미했다. 예를 들어 해상 인력은 250명이 부족한데 육상 인력은 280명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진도 팽목항에 수많은 정보원을 풀어 가족들 동향을 살피고 수색작업보다 윗분 의전에 더 많은 해경 인력이 나가 있는 것은 평소 구난보다 수사, 정보 등에 눈길을 돌린 본질적 모순에서 비롯됐다. 해양계에서는 그동안 해경을 비판하면 “언젠가 당한다”는 이야기가 팽배했다.
육지 경찰에도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그런대로 오랜 연륜 속에서 나름대로 자정 기능을 가지고 있음에 반해 해경은 남들이 신경 쓰지 않았던 ‘바다’라는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성을 만들어놓고 빠른 진급과 C급의 내부 결속력을 통하여 경찰의 본문을 망각하고 골목대장 노릇에 열중한 것 같다. 왜 해경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육경이 옷만 갈아입은 꼴
지난 5년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해양수산부는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MB정권과 더불어 해체되어 국토해양부로 편입되었다. 해양 사령탑은 없어졌고 해양통합 정책도 사라졌다. 해양수산의 각 분야는 각개약진으로 성장을 도모했고 해경도 나름대로 힘을 키워왔다. 그러다 현 정부 들어 해양수산부가 다시 탄생했고 해경이 해수부 외청으로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해상교통관제센터(VTS)를 독점하려 했고 조직을 키워왔다.
지난해 이후 해경이 현판식을 한 조직만 헤아려도 해양사고 근절대책본부, 불법조업 대응센터, 유해수산물 근절 대책본부, 현장전문인력 교육센터 등 한둘이 아니다. 해경은 그동안 해양 오염이나 해양교통 위반 등 해양 관련 범법자들에게만 써야 할 수사권이라는 칼을 애꿎은 어민들에게 잘못 쓰고 있다는 비난도 들어왔다. 육경과도 수사권문제로 갈등을 빚는 영역이 발생했다.
해경을 향해 “육경이 옷만 갈아입었다”는 비판은 예전부터 있었다. 오죽하면 육경 진급에서 물을 먹은 사람들이 해경으로 옮겨와 고속 승진을 한다는 말도 있을까. 이번 사건에서 해경 수뇌부가 보여준 경험 미숙, 판단 미숙에 따른 우왕좌왕은 바로 이 같은 전문성 부족에서 기인한다. 해경은 더 나아가 부도덕과 부패를 양산했다.
언딘이란 민간 기업과 독점 계약을 맺고 내부 퇴직인력을 보냈고, 국회 및 해양계 인사들을 고문으로 두는 방패막이를 짰으며 해난 사고 수습에 대한 독점을 시도했다. 한국해양구조협회가 바로 좋은 예다. 이 협회는 현직 해경들의 회비 납부를 독려해 예산을 충당하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해경 산하조직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겠다.
이번 사건에서 해경이 관할하는 진도 VTS는 세월호가 관할구역에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건 이후에도 관측보고서를 즉시 제출하지 않았다. 나중에 마지못해 제출한 보고서는 누락 발췌본이었다. 소음 때문에 일부를 삭제했다고 하지만 법적으로 이 서류는 2년간 보존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해경을 수사해야
승객들을 내팽개친 범법자나 다름없는 선장을 해경의 아파트에서 재우고 선원들을 같은 모텔에 모셨던 해경이다. 해경은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싶어 범법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서로 말을 맞출 수 있게 배려했을까. 방재는 못해도 수사는 잘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 SNS에서는 해경이 시신으로 수습된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가족 동의도 없이 가져간 것에 대해 무슨 일을 또 숨기고 꾸미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비난 여론이 드세다. 지금도 해경은 구난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이후 종료까지, 더 나아가 구난 전체에 관한 종합 백서까지 해경이 주도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물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흔한 수중 사진 한 장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
해경은 청와대에도 늑장 보고와 허위 보고를 하였다. 사고 발생 40분 뒤 자기네들 구조작업은 과장하고 실종자 상황은 생략, 축소한 채 보고했다. 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해경의 부실덩어리 보고는 청와대나 정부가 상황을 오판하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에서 해경은 수사자가 아니가 피의자로 서야 한다.
지금은 국가안전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해양방재청을 만들어 해양사건에 관한 국가적인 단일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유사시에 해양방재청이 진두지휘하고 해수부 공무원, 해경, 유관기관, 해군, 수협 등 수산 조직 등이 망라하여 단시간에 초동 대처할 수 있는 신속한 조직이 필요하다. 국가안전처는 전문적 상황판단과 실력이 요구되는 바다에서 어쩌면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종합 패키지 조직으로 가뜩이나 조직 이기주의가 심한 사회에서 무슨 기동성이 확보될까.
세월호 사고 전과 후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래야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해경이었다. 해경이 본연의 바다 경찰로 거듭나도록 조직개편, 역할분담, 법적 제도적 장치 등 모든 것이 신속 정연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선택을 지켜본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 제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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