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배추 한포기가 법정(法頂)의 정신이다

화이트보스 2014. 6. 4. 17:55

FUN | 공연·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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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한포기가 법정(法頂)의 정신이다

작품 제작과 제작 근거에 대한 단상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계승, 국내 인물 초상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김호석 작가의 기획초대전 <김호석-묻다>가 6월8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GMA에서 열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그리기도 한 김 화백은 이번 전시에는 ‘법정스님 진영’ 2점을 포함하여 총 20여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다음은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에 대하여 김 화백이 직접 작성한 작품 설명서이다.

글 | 김호석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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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정스님 진영과 2주기와 3주기 추모 법회 때 사용할 진영을 그렸습니다.
진영을 그리면서  불교 정신을 생각해 왔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법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법정의 그림을 통해
불교를 묻고 싶었습니다.

법정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법정스님은 충분히 가질 수 있었으나  갖지 않았고 높아 질 수 있었으나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망가서 은거하며 맑게 살았습니다.
법정은 가지지 않으면서 고고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법정이 위대합니다.
맑게 살면서 맑음을 차양했습니다. 더러운 것 욕하며 더럽게 사는 것을 쳐 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법정은 우리시대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스님께서 입적하신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물질과 욕망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해석, 관습, 틀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고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 시대 여전히 법정이 유효 합니다.
법정을 빌어 불교 정신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법정의 이야기를 그리는 게 아니라 불교적 사유를 그림으로 묻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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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진영
 
법정 스니은 눈빛이 강했습니다.
독거 수좌입니다. (섞여서 살지 않았습니다)
글로서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대선사였습니다.
혼탁한 것 싫어했습니다.
버리고 떠났습니다.(은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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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옷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스님의 옷은 풀을 먹인 듯 빳빳하게 형체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 일 뿐 내용은 아닙니다.
이제 불임암에서 법정 스님을 아무리 불러 보았자 스님은 안 계십니다.
스님께서 남긴 자취만 있을 뿐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사람들은 껍데기를 소중히 여기고 갈고 닦으려고 합니다.
덧씌워진 이미지를 보고 그 사람으로 보려 하거나 권력의 옷으로 평가하려 합니다.
스님께서 외출 중이신가요? 아니면 우리 겉에 가만히 와 계신 것인가요?
아니면 내가 벗어 놓은 옷이나 자취는 허물이니 어떤 의미도 두지 말라고 말 하실까요?
막 수행을 마친 스님이 겉 옷을 벗어 놓은 채 나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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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의자가 쉬자.
 
법정 스님은 이 의지를 만들고 빠삐용 의자라 명명했습니다.
“필요없는 시간은 없었는지 이 의자에 앉아서 생각한다.”
스님은 의자를 늘 애지중지했습니다.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편안함을 추구했습니다.
왜 의자라는 장치와 형식이 필요하며 의자에 앉아서 생각해야만 할까요?
맑고 반듯하고 깨끗하게 살아 온 스님이었건만 형식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 듯합니다.
사람은 사람이라는 존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집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라져도 빛은 남아 있는 법.
의자는 의자라는 존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집니다.
그러나 의자는 사라져도 그림자는 남는 법. 
우리가 추구하는 삶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유로우면서 맑고 담박하면 좋은 삶일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도 가셨으니 이제는 의자도 쉬게 합시다.
모순은 새로운 차원의 융합을 도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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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
 
법정의 포행 길에는 늘 배추가 함께 있었습니다.
법정은 자신이 먹을 만큼만 저장하고 나머지는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겉을 묶어 그대로 두었습니다. (배추를 묶어두지 않으면 겨울에 얼어 죽고 맙니다.)
법정은 포행 할 때 마다 그 배추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도 법정의 배추 밭에는 배추 한포기가 있습니다.
배추가 법정입니다.
배추는 겨우 내내 불일암을 지키는 주인입니다. 살아서 계승하고 있는 법정의 정신입니다.
배추는 엄동설한에도 힘을 모으며 웅크린 채 숨 쉬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 나가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배추는 자기 자신의 시선을 밖이 아닌 내부로 돌리고 있습니다.
마치 불교의 수행 방식과 선의 정신과 흡사합니다.
빛을 되 비춰서 자기 자신을 비추는 배추가 법정이고 불교 아닌가요?
사람들은 남의 탓과 허물을 보며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배추는 시선을 내부로 돌려 자신의 허물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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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돈

나, 돼지가 왜 웃을까요?
인간은 나를 죽이면서 웃는 상으로 만듭니다. 
사람에게 묻습니다.
돈이 좋아?
사람이 답합니다. 
돈이 좋다.
많을수록 좋다.
돈 안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사람은 돈에 의해 울고 웃는 세상이다.
돈이 있으면 안 되는게 거의 없다.
돈이 지금보다 더 많았으면 좋겠다. 
 
돼지가 웃습니다.
나도 돈이 좋다.
사람들은 내 입은 물론이고 콧구멍 귀 구멍에 돈을 물리거나 쑤셔 넣는다.
나는 죽어서 호강한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죽은 나에게 넙죽 엎드려 절한다.
나는 엎드려 빌면서 돈 돈 돈 하는 그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뻔히 속이 보인다.
 가증스런 이중의 모습, 아니 솔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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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송이
 
현 사회는 과정이 생략된 시대입니다.
내편이냐 네편이냐, 명령에 따랐느냐 따르지 않았느냐, 과정과 절차를 지켜 책임을 벗어 날 수 있느냐 없느냐와 승진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만을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일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하기에 정부와 권력 특히 공무원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무엇보다 큽니다.
원칙도 소신도 기본도 계획도 없습니다.
자정 능력도 없고 그저 복지부동입니다.
가던 길만 가는자에게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개혁과 쇄신을 기대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남의 것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이룬 공으로 돌리는 허세와 술수,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창의적인 뜻을 펼치기란 어렵습니다.
밤송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가시로 무장하며 끝을 세웁니다. 
그러나 열매가 무르익었을 때 몸을 벌려 분신을 내 보냅니다.
열매는 무려 3년간 땅 속에 머무르며 어린 나무의 뿌리에 붙어 성장을 돕다가 스스로 퇴비가 됩니다. 
내용보다 형식이, 과정보다 결과가, 내실 보다 홍보에 치중하는 사회 구조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가요?
수행자는 사물들의 세세한 변화와 그 변화를 넘어서는 영원성을 매개로 깨달음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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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한 마리의 대구는 몸을 둘로 가르고 토막을 내어 밑을 들뜨게 포장하여 진열대에서 팔립니다. 
두 마리의 대구 머리를 포장해서 판매하다니 대구뽈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눈 속임이었습니다. 과장으로 현혹하는 행위였습니다.
두 마리가 아닌 한 마리임을 알고 그들의 장사수법이  현실의 단면까지 숨김 없이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반으로 잘라 펼쳐 놓은 모습에서 전혀 다른 두 마리의 표정이 살아 있습니다.
물어 뜯고 서로를 힐난하는 사생 결단의 모습, 신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자신이 자기의 꼬리를 물어 먹고 있는 상태와 닮아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자신. 공생이 아니라 자멸 이고 공멸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알 수 없는 반대 속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팍팍하고 파천황적인 세상이지만 이상과 대의 그리고 명분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최소한 노력하지 않습니까?
공부하고 명상하고 책 읽고 그리고 예술로서 세상을 정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요?
세속과 뒤섞임은 이치를 깨닫기 위한 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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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서
 
거울을 봅니다. 
외모는 잘 관리되고 있는지, 즉 화장이 번지지 않았나, 이에 뭐가 끼지 않았나 는 등의 남을 의식해 하는 행위입니다. 스스로 외모를 점검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자기를 바로 보게 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내가 진실로 내가 아닙니다.
매일 보는 거울조차 본래의 나를 찾아 주지 않습니다.
거꾸로 전도된 사진이 자신이라고 믿고 선택한다는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거울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내 의식으로 자기를 바라 보는 방법은 없을까요?
자기를 바로 봅시다.
진정한 나는?
내가 말하는 나는 주관적인 반쪽의 나입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내가 진짜 나입니다.
부처는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는 중생의 목숨으로 자기 목숨을 삼았습니다.
내가 나의 관점에서 보는 나는 내가 아니고,
상대방의 얼굴에 되비춰져 나오는 얼굴이 진짜 내 얼굴입니다.
희노애락의 이전에 있는 이미지가 진정한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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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오리

논 물위에 떠 있는 오리떼,  짧고 덧없음 생각했습니다.
무기력하게 세파에 떠 밀리는 삶.
짧고 덧 없는 것.
세속의 오욕과 나약하기 그지 없는 감정의 틀을 벗어나 신선처럼 초탈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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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친구의 우정을 간직합니다.
친구가 10년전에 선물한 한란이었습니다. 그런 난이 말라 죽었습니다.
나는 친구와의 우정과 귀한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아,
죽은 난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습니다.
물질적 욕망은 내려 놓지만 자족, 검박, 만족 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소유 아닌가요?
그림자를 벗 삼아 무정한 사물과 교유하는 삶.
세상 어느곳이나 모두 도량입니다.
무소유, 불교적으로 보면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부처는 말하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쳐 말하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어떤 것도 인정하거나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정은 무소유라 했습니다.
비불교적인 논리 아닌가요?
삶의 방식 중 은일은
안으로 마음의 여유를 얻고 고고함을 지키게 합니다.
자신의 자존심과 정신적 자유를 만족시켜 주며 누리게 합니다.
밖으로 맑은 명성을 널리 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일은 속세 벗어나 고결한 삶을 살면서,
명성을 이루어 세상에 빛을 발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전략가인가? 결벽증인가? 욕심을 내려 놓지 못하는 출세지향가인가요?
무소유 청빈 고요함 맑음에 편벽한 것 아닌가요?
어떤 것이 혼탁한 것이고 어떤 것이 맑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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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 대선사

너는 너이고 나는 나입니다.
칭찬과 고마움도, 원망도 추켜세움도, 낮추어 보지도 않습니다.
때 되면 밥 먹고 산에 나무하러 갑니다.
편하고 바랄 것이 없습니다.
시비나 고저장단이 없습니다.
자기 본분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번뇌나 고뇌가 없습니다.
삶이 그렇듯 그저 죽음을 맞이해서도 충실할 뿐입니다.
이것이 대해탈이고 윤회이고 자유입니다.
일상성. 일상의 평범한 삶이 도(道)입니다
그저 주는 대로 먹고 되는대로 쉬는 절대 자유를 누리며 명리와 안신에서 초탈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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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돌 여자가 밤에 아이를 낳고 거북 털이 조금씩 자랍니다.
바닥 없는 바구니에 밝은 달을 가득 담고 속 없는 주발에 맑은 바람을 담습니다.
일상의 어법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언어 밖의 참 뜻을 고심하게 합니다.
이면의 본질을 간파하려면 직관이 필요합니다.
 
달마와 혜가의 이야기입니다.
불법을 구하고자 눈오는 날 기다리다 팔을 잘랐습니다.
눈이 온 땅에서 파초가 올라와 떨어진 팔을 받쳤습니다.

네 마음이 괴롭냐?
안 알아주는 것 다행인줄 알아라.
전쟁에 선봉에 서지 않고 그만두면 가족은 다 살지 않겠느냐?
마음이 편안해 졌느냐?
네, 마음이 없습니다.
이제 편안해 졌습니다.
 
달마는 삶 자체에서 꺼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버렸습니다.
그는 답이 아닌 답을 했는데 그것이 답이었던 것입니다.
글쎄요, 그런데요, 그래서 어떤데요, 
 
<달마와 혜가- 파초>
 
혜가(慧可) 대사는 중국 낙양의 무뢰(武牢) 사람으로, 어릴 때의 이름은 신광(神光)이고 성은 희(姬)가였다.
신광은 어릴 때부터 덕이 있고 책읽기를 좋아하여 뭇 서적들을 두루 읽었는데, 어느날 불서(佛書)를 읽다가 문득 얻은 바가 있어 낙양 회향사로 출가하였다. 신광은 은사 스님을 떠나 소림굴의 달마대사를 찾아갔다. 그 때 달마대사는 아홉 해를 기약하고 면벽(面壁: 벽을 향하여 좌선하는 것을 말한다. 달마대사가 소림사에 숨어 지내며 9년 동안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벽을 향하여 좌선한 것을 두고 ‘면벽구년’이라 한다. 그 뒤부터 선승들은 선원에서 좌선하려면 반드시 벽을 향하게 되었다)하며 법을 전할 때가 무르익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광은 오로지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아침저녁으로 달마대사를 섬기며 법을 물었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언제나 묵묵부답이었다.
동짓날 초아흐레 날이었다. 밤새 큰눈이 내렸는데, 신광은 달마대사가 선정에 든 굴 밖에 서서 꼼짝도 않고 밤을 지샜다. 새벽이 되자 눈이 무릎이 넘도록 쌓였고, 달마대사는 그때까지도 꼼짝 않고 눈 속에 서 있는 신광을 보았다.
"네가 눈 속에서 그토록 오래 서 있으니, 무엇을 구하고자 함이냐?"
"바라건대 스님께서는 감로(甘露)의 문을 여시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해 주소서."
"부처님의 위없는 도는 오랜 겁 동안을 부지런히 정진하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아야 얻을 수 있다. 그러하거늘 너는 아주 작은 공덕과 하잘 것 없는 지혜와 경솔하고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 참다운 법을 바라는가? 모두 헛수고일 뿐이다."
달마대사의 이 말씀을 듣더니 신광은 홀연히 칼을 뽑아 자기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러자 때아닌 파초가 피어나 잘라진 팔을 고이 받치는 것이었다. 신광의 구도심이 이처럼 열렬함을 본 달마대사는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들이 처음에 도를 구할 때에는 법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잊었다. 네가 지금 팔을 잘라 내 앞에 내놓으니 이제 구함을 얻을 것이다. 달마대사는 신광에게 혜가(慧可)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자 혜가의 왼팔이 다시 본디의 자리로 가 붙었다.

"부처님의 법인(法印: 진리의 요체)을 들려주소서."
"부처님의 법인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니라."
"제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스님께서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불안한 네 마음을 여기에 가져오너라. 그러면 편안하게 해 주겠다."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내 이미 너를 편안케 하였느니라."
이 말 끝에 혜가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은 혜가는 달마대사로부터 법을 이어받아 중국 선종의 2대 조사가 되었다. 혜가 대사는 34년 동안 업도에 머물며 설법하다가, 552년에 제자 승찬에게 법을 전하고, 그 이듬해에 그의 나이 107살이 되어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