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원정화도 모르는 원정화 사건의 이면(하)

화이트보스 2014. 6. 9. 14:36

원정화도 모르는 원정화 사건의 이면(하)

김교학과 접촉, 군사기밀 빼내··· 원정화는 간첩이 맞다

원정화 사건을 두고 최근까지도 말이 많았습니다. 첫번째는 원정화 사건도 유우성 사건처럼 간첩 조작사건 아니냐는 게 첫번째 논란입니다. 하지만 수사 초기의 과정을 보면 이는 맞지 않습니다. 원정화가 중국 단둥에 있던 북한 무역대표부 김교학과 접촉하고, 군 장교로부터 정보를 빼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 따라서 원정화는 간첩이 맞습니다.
2008년 수사 결과 발표 당시 공개된 원정화 사진.
2008년 수사 결과 발표 당시 공개된 원정화 사진.
두번째는 원정화가 검찰에서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처럼 대단한 간첩이 아니라는 논란입니다. 공소장과 판결문에 나온 원정화의 행적을 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1974년 북한 청진 출생
1989년 공작원양소조인 특수부대 입대
1992년 7월 의병제대(2년 넘게 훈련 받음)
1993년 백화점에서 물건 빼낸 혐의로 6년형
1995년 특사 면제 받아 출소
1996년 12월 중국으로 출국
1998년 1월 북한에 재입국해 보위부 공작원으로 선발됨
1999년~2000년 7월 한국인 사업가와 탈북자 100여명 색출해 북송
2001년 10월 김혜영이라는 이름으로 입국
2001년 11월까지 군부대 촬영
2001년 11월 27일 탈북자 자수
2002년 10월~ 김교학과 첫 접촉 후 활발한 간첩 활동

원정화의 북한 이력과 중국에서의 행적은 전적으로 원정화의 진술에 의존했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할 겁니다. 그걸 증명할만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겠죠. 그런데 문제는 원정화가 중국에서 우리 사업가와 탈북자를 유인해 강제 북송시켰다고 진술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사업가들이 중국으로 출국한 뒤에 연락이 두절됐다는 신고라도 있어야 할 텐데, 수사 당국은 이 부분은 체크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지어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기도 했습니다. 공안수사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원정화, 왜 남이 만들어 준 이메일을 사용했나?

원정화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008년 3월부터 중국으로 출장 가서 김선생이 북한 지도원인 김교학이라는 점을 파악했고, 그리고 원정화와 장교들로부터 기밀을 입수했다는 점까지 파악했습니다. 체포할 때까지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체포 이후 진술과정에서 원정화는 자신이 훈련 받은 간첩이고, 다양한 지령을 받고 남파된 직파간첩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수사 당국은 아무런 검증 작업 없이 원정화의 진술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TV조선 대찬인생 원정화 편.
TV조선 대찬인생 원정화 편.
이 이야기에서 보면 알겠지만 협조원이었던 경찰관 A는 원정화의 이메일을 만들어주고, 그 이메일을 엿봤습니다. 원정화가 훈련을 받았다면 이메일 만드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을 텐데, 왜 A가 이메일을 만들어줬는지, 그리고 원정화는 자신의 꼬리가 잡힐만한 내용들을 왜 이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하지만 또 원정화가 자신의 행적을 부풀렸다고 단정하기도 힘듭니다. 왜냐면 원정화는 스스로 직파간첩이라고 실토했습니다. 직파 간첩은 포섭 간첩에 비해 형량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도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직파간첩이라고 주장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대검에서는 몇해 전 공안 수사에서도 과학수사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제 공안 수사도 진술에만 의존해서는 안될 듯 합니다.

결국 문서조작으로 결론 난 유우성 사건도 유우성의 여동생인 유가려의 진술을 믿고 재판에 넘겼다 진술을 바꾸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찾는 노력을 했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연쇄살인 사건의 경우, 연쇄살인범들은 잡히면 자신이 하지 않은 살인 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주장합니다. 일종의 과시욕이 발동하는 것이죠. 거짓을 진실로 믿는 리플리 증후군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검증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면 재판에 넘기지 않습니다.

정권 초기마다 터지는 간첩 사건…실적주의의 유혹, 그리고 함정

원정화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유우성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대적으로 발표되고 보도됐습니다. 간첩 사건은 오랫동안 은밀하고 세밀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급증과 실적주의의 함정에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다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물론 원정화는 재판에서도 진술을 유지했고,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일부 언론에 기존 진술과는 다른 말들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원정화 사건이 어떻게 불거졌는지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묻혀 있던 첩보 발굴, 그리고 협조원 활용. 정말 흥미진진한 내용입니다. 아마도 원정화도 S의 존재를 모를 겁니다. 그래서 제목을 원정화도 모르는 원정화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공을 치하 받아야 할 당사자는 지금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고, 그 여파로 황혼 이혼까지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으로 승진을 하고, 승승장구한 이들도 많습니다. S는 여전히 고통 받으면서도 ‘국가는 나를 버렸지만, 나는 국가를 저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협조원이었던 경찰관 A는 파면됐지만 이후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감봉으로 징계가 낮아져 다시 경찰로 복귀했습니다. 그 경찰관은 기자와의 전화에서 “더 이상 거론되고 싶지 않다”며 말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끝 말미에는 쐐기를 박는 말을 했다. “저에겐 이제 국가는 없어요. 이제 처자식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국가?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