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6.11 03:05
박 대통령은 그간 새 총리는 우리 사회의 적폐를 척결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당초 검찰 출신인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이 퇴임 후 거액의 변호사 수임료를 받았다는 전관예우 논란에 휘말려 중도에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자 이번엔 언론계 출신인 문 후보자를 발탁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문 후보자는 냉철한 비판 의식과 합리적 대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자는 총리 지명 발표 후 "국정 경험도 없는 제가 갑자기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나라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1975년 신문기자가 된 이후 35년 넘게 언론인으로 일해왔다. 언론 입장에서 역대 정권의 국정 운영을 지켜본 것은 새 총리 후보자의 중요한 자산이다. 전·현직 관료와 유관 업계·단체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이해나 유착 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문 후보자는 행정 경험이 전무(全無)하다. 역대 정권마다 학자 출신을 총리 또는 장관으로 발탁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관료 사회를 장악하지 못하고 거꾸로 관료들에게 휘둘렸기 때문이다. 언론계 출신으로는 첫 총리 후보로 발탁된 문 후보자 역시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지금 새 총리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기준은 '책임 총리'를 실천해나갈 능력과 소신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책임 총리, 책임 장관제'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지만 이 정부 들어서 청와대로 권한과 기능이 더 심하게 집중됐다. 문 후보자 역시 책임 총리에 대한 분명한 소신과 각오가 없으면 대통령에게 쓴소리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의전 총리' '대독(代讀) 총리' '받아쓰기 총리'에 그칠 수 있다.
이 국정원장 후보자는 친박(親朴) 핵심이다. 그는 외무고시를 거친 외교관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국정원 차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주일 대사로 임명되기 전까지 이 후보자는 20년 가까이 외교·대북(對北) 분야에서 사실상 손을 뗀 채 국내 정치 쪽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런 이 후보자가 국정원 댓글 및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등으로 정치 논란에 휘말렸던 국정원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맡게 됐다. 무엇보다 국정원을 세계적 수준의 정보기관으로 변모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금껏 박 대통령의 인사는 논란을 매듭짓기보다는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야당은 벌써 문 후보자가 그간 써온 글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주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편향을 보여왔다며 문제 삼고 나섰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청와대는 "공직 후보자 검증이 철학·소신·능력보다는 개인적 부분에 집중되면서 가족의 반대 등 여러 어려움이 있어서 인선이 늦어졌다"고 했다. 이번 인선이 난항을 거듭했고 박 대통령의 인적 자산(資産)이 거의 바닥이 드러났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인사가 또다시 좌초하면 정권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넘어서려면 대통령과 여당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고, 문·이 후보자는 자질과 전문성을 스스로 입증해 보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