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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부터 마셨네. 세상이 시끄럽네..."

화이트보스 2014. 7. 5. 20:04

점심부터 마셨네. 세상이 시끄럽네..."

최명 전 서울대 교수, 술마시는 이야기 '술의 노래' 출간

전 서울대 교수가 술마시는 이야기를 담은 '술의 노래' 출간했다.
애주가로 소문난 그가 주위의 권유로 출판한 것.
최 교수가 직접 쓴 책의 서문을 싣는다.

글 | 최명 전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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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지난 날의 이야기를 남기라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제자들이다. 어디까지가 지난 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이야기 가운데 주로 술 먹는 이야기를 쓰라는 주문이다. 술을 마시면 속이 쓰린데, 그 속 쓰린 이야기를 쓰라는 것이다. 써도 되고 안 써도 그만인 그런 이야기들이나, 나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또 속이 쓰리다. 술을 아니 마시든가, 아니 적게 마시고 공부를 더 했으면 하는 회한悔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묻는다.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었나?”

술 마시는 이야기로 말하자면, 도연명陶淵明(365-427)이나 이태백李太白(701-762)은 그만두고, 가까이는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1898-1961)의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과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1903-1977)의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가 생각난다. 그 분들이야 당대의 석학이고, 사시던 시대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지낼 수 없던 그런 시대였다. 그 분들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비교적 평탄하고 좋은 세상에서 살았는데, 술 마시는 이야기를 하라니 딱한 일이다. 수주와 무애가 세상을 떠나신 지도 여러 십년이 되었다. 선배들이 다 못 마시고 가신 술을 내가 마시고 하는 이야기인가?
 
나의 속쓰린 이야기

수주나 무애는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던 분들이었다. 그래서 그 분들의 글은 널리 읽혔다. 나도 그 분들의 글을 비교적 많이 읽었다. 그러나 나의 속 쓰린 이야기를 읽을 사람은 있을 것인가?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1896-1989)의 이른바 『소경의 잠꼬대』인지도 모르나, 나 나름대로 정직한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날을 반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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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 교수
여기의 글들은 내가 학교를 그만둔 후 쓴 글들이다. 정년은 어느 직장에나 다 있으나, 특히 대학의 정년은 의미가 좀 다르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주어진 몇 해 동안 그만둔 대학에서도 강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훌륭한 후배와 제자들이 많다. 정년이 되고 어슬렁어슬렁 교정을 거닐면서 강의실이나 기웃기웃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정년은 먼저의 직장에 그만 나오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나, 나는 정년 후 강의와는 아예 발을 끊었다.
 
고백건대, 나는 게으르다. 나는 오래전에 시작한 ‘중국공산당사中國共産黨史’의 집필을 정년 전에 마치려고 했었다. 그 ‘당사’는 소위 문화혁명이 시작되던 1965년까지는 왔다. 1921년에 창당된 중국공산당이 우여곡절 끝에 1965년까지 왔다면, 사십 년이 넘는다. 그런데 그로부터 금년이면 비슷한 햇수다. 나의 원고는 반에 그친 것이다. 그 사이에 새로운 자료도 많이 나왔고, 좋은 저술들도 출간되었다. 내가 좇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정년 후 어영부영한 시간을 얼마 보냈다. 새로 중국공산당에 관하여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집필하기가 두려워졌다. 그 게으름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내가 책을 낸들 이미 출간된 그 분야의 책들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부하기 싫은 것에 대한 변명이다.
 
나는 중국공산당사에 관한 집착을 버렸다. 연민만 남은 것이다. 지금도 그 미완성의 원고를 보면 아까운 생각에 눈물이 난다. 퇴고(推敲)라는 말로 유명한 당(唐)의 가도(賈島 779-843)란 시인이 “홀로 가는 못 밑의 그림자, 자주 쉬는 나무 옆의 몸[獨行潭底影 數息樹邊身]”이란 두 구의 시를 짓고, 이어서 “삼 년 걸려 지은 두 구(句), 읊을 적마다 흐르는 두 눈의 눈물, 친구라도 혹시 알아주지 않으면, 고산으로 낙향[歸臥]할 때 가을[秋]이로다[二句三年得 一吟雙淚流 知音如不賞 歸臥故山秋]”라고 한 적이 있다. 시인은 시작(詩作)의 고심(苦心)을 토로(吐露)한 것이나, 눈물이 나는 것은 내 심정과 비슷하다. 그러나 가도는 삼 년 걸려 얻은 시를 남겼고, 나는 내 원고를 폐기할 판이다.

그러든 차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난날의 이야기를 쓰라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반드시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만은 아니나, 더러 쓴 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내용에 따라 음주·여행·등산·인물 등으로 나누었으나, 그 구분이 분명한 것도 아니고, 실은 이래저래 다 술 마신 이야기다. 여기에는 나의 스승과 가형을 비롯하여, 여러 선후배, 친구, 동료, 제자, 혹은 아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몇몇 술벗에게 원고를 더러 보냈다. 심심파적으로 읽으라고 했고, 잘못된 곳이 있으면 고쳐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교제로 그런지도 모르나 이런 글들은 여러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한국인의 술은 언제나 우정의 윤활유

그런 이야기를 강하게 하는 사람 가운데 명지대학교의 이지수(李志樹) 교수가 있다. 그가 내 글의 일부를 선출판사의 김윤태 사장에게 보였다고 한다. 자초지종은 모르나 좋다고 한 모양이다. 그래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김 사장은 술은 잘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아나, 술에는 남다른 관심은 많다. 그래 연전에 『술: 한국의 술문화』(이상희 지음, 2009)란 책을 내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술 문화를 집대성한 책으로 I권과 II권을 합치면 1,900 페이지에 가까운 대작이다. 그 책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한국인의 술은 언제나 우정의 윤활유와 같은 것이었다. 술은 흥취의 세계로 통하게 함으로써 격의 없는 우정과 회합의 매개물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술을 보면 언제나 벗을 생각하게 되며 술이 있는 곳에는 벗이 모였다. 따라서 술을 마시는 방법에 있어서도 혼자 마시는 독작의 경우보다 벗과 함께 마시기를 더 좋아한다. 그것도 서로 마주 앉아 각자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잔을 주고받는 수작(酬酌)이었다.”(II권, 28쪽.)
 
나보고 이 대목을 요약하라면 ‘술벗 미학(美學)’이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이 책은 술의 문화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 그런 저런 인연이란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위에서도 잠시 말했지만, 여기의 글들은 거의가 술 먹는 이야기다. ‘음주행각(飮酒行脚)’이라면 좀 무엇하나, ‘음주편력(飮酒遍歷)’일 수도 있고, ‘주유편력(酒遊遍歷)’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은 다소 진부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아무개의 ‘술 먹는 혹은 술 마신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어서, 제목을 어찌할까 오래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나, 오래전에 ‘음주송(飮酒頌)’이란 제목의 시를 하나 쓴 적이 있다. 우연히 그 시를 다시 읽다가 이것이 바로 ‘술의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유치한 글이지만, 아래에 적는다.
 
점심부터 마셨네. 세상이 시끄럽네
 
“점심부터 마셨네. 세상이 시끄럽네. 마시는 핑계네. 집에 왔네. 아무도 없네. 잘 됐다. 또 마셨네. 전화가 왔네. 누군지? 받으려는데, 우물우물 하다가 끊겼네. 조용한 것이 좋네. 끊긴 전화가 위복이네. 그건 그렇고, 다 부질없다. 자려는데, 술이 좀 깨서인지 잠이 안 오네. 다시 마실까? 염치도 없지. 내일 점심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니 아침이 먼저 온다. 아침에 마실까? 생각이 간절하네. 못 참겠다. 에이, 한 잔 더 먹자! 매일 그런가? 어디 물어보자! 누구에게 물어보나? 이래저래 마셨는데 무얼 물어봐? 아이고, 취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술의 노래』가 된 것이다. 혹은 일면식은 없으나 내가 평소 좋아하는 작가 김훈(金薰 1948- )의 『칼의 노래』 등에서 알게 모르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그저 나의 노래를 불렀을 따름이다.
 
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