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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人, 걸어야 산다] [3] 괴로워서 걸었고, 걷다보니 살았다

화이트보스 2014. 11. 1. 10:03

도시人, 걸어야 산다] [3] 괴로워서 걸었고, 걷다보니 살았다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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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창렬 사회부 기자
  • 송원형 사회부 기자
  • 김효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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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0.30 05:55 | 수정 : 2014.10.31 16:25

    [살기 위해 걷는 사람들]

    우울증에 대인기피증… 무작정 2~3시간씩 걷고 또 걸어… 어느덧 완치, 걷기 카페 만들어
    매일 술, 술… 170㎝에 100㎏… 4년간 걷기만으로 20㎏ 줄여

    걷기는 건강을 되찾아 준다.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거나 잦은 술자리로 체중이 불어나 각종 성인병에 걸릴 위험에 처했던 사람도 꾸준한 걷기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증언하는 경우가 많다. 잦은 야근과 집안일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걷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 산하 연구소에서 일하던 신필상(49)씨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가 2006년 퇴사했다. 이직을 앞둔 그에게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가족들과도 벽을 쌓고 몇 달간 서재에서만 지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던 그는 어느 날 밤 한강으로 갔다. 어떻게든 이겨내든지, 아니면 끝을 볼 생각이었다고 한다. 신씨는 한강물에 바로 맞닿은 폭 50㎝ 정도의 경계 구간을 걷기 시작했다. 3시간가량 걸은 뒤 집에 가고 싶어 귀가했다. 이후 그렇게 매일 2~3시간씩 무작정 걸었다. 두 달 정도 걷다 보니, '이대로 끝낼 수 없다. 다시 기운을 차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땀을 흘리다 보니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어요. 당시 걷기는 저를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어요. 걷기는 혼자서 물병 하나만 들고 할 수 있어서 좋았죠."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근린공원에서 신필상(49)씨가 본격적으로 걷기 전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왼쪽). 2006년 대기업 퇴사 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으며 집에 틀어박혀 있던 신씨는 한강을 따라 걸으면서 힘든 시기를 극복했다. 같은 날 홍순언(63)씨가 서울 은평구 불광천을 따라 힘차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오른쪽). 체중이 100㎏에 달했던 홍씨는 2006년부터 걷기 운동을 시작해 20㎏을 감량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근린공원에서 신필상(49)씨가 본격적으로 걷기 전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왼쪽). 2006년 대기업 퇴사 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으며 집에 틀어박혀 있던 신씨는 한강을 따라 걸으면서 힘든 시기를 극복했다. 같은 날 홍순언(63)씨가 서울 은평구 불광천을 따라 힘차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오른쪽). 체중이 100㎏에 달했던 홍씨는 2006년부터 걷기 운동을 시작해 20㎏을 감량했다. /윤동진 기자
    신씨는 건강을 되찾고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한강을 걸으면서 과거 자신처럼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신씨는 "혼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군가 말을 걸어 같이 걷자고 하면 친구도 되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직접 다가가서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신씨는 인터넷에 걷기 카페를 만들었다. 2007년부터는 카페 회원들과 함께 걸었다. 걷기 단체에서 걷기 지도자 교육도 받았다. 신씨는 "도시 생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자연 속에서 걷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 한다. 가끔 밤에 빛이 없는 곳을 찾아가 걷기도 한다"며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를 듣고 평소 보지 않았던 하늘도 쳐다보면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면서 몸도 개운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신씨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5~6㎞ 거리는 가능하면 걷는다고 했다. 구두는 안 신은 지 오래됐고, 와이셔츠도 잘 안 입는다. "사업상 사람을 만나면 처음엔 제 차림에 낯설어하지만, 걷기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이해를 해요."

    건설회사 중역이었던 홍순언(63)씨는 거의 매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로 체중이 불었다. 키가 170㎝ 정도인데, 몸무게가 100kg이나 됐다. 홍씨는 2005년 말 의사로부터 "체중을 줄이지 않으면 고혈압, 당뇨 등이 발병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충격을 받은 홍씨는 2006년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서울 은평구 집에서 불광천을 따라 한강까지 걷다가 점차 거리를 늘려 갔다. 걷기에 재미를 붙이게 됐고, 각종 걷기 대회에도 참석했다. 꾸준히 4년간 걷다 보니 몸무게가 20㎏ 정도 빠졌다. 혈압, 당뇨, 심폐 기능도 좋아졌다. '걷기 마니아'가 된 홍씨는 걷기 단체 사람들과 함께 5일간 제주도 해안도로 걷기 등 장거리 걷기도 한다. 그는 "10~20m 앞을 바라보면서 턱은 가볍게 잡아당기고 미소를 지으며 걸으면 좋다"며 "손을 가볍게 말아쥐고 걷는 중간에 손을 폈다 쥐었다 하면 혈액 순환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 걸음 걷는 순간 몸 안 200여개 뼈와 600개 이상의 근육이 움직이고 모든 장기가 활동을 한다고 해요. 걷기는 단순하지만 신비로워요."

    서울시 공무원 이정섭(39)씨는 출근할 때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걸어 부족한 운동 시간을 채운다. 이씨는 2년 전부터 매일 아침 서울 강동구 고덕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을지로4가역까지 간 다음, 시청으로 가는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지 않고 지하도를 이용해 사무실까지 2㎞를 걷는다. 을지로4가역에서 지하철을 환승하면 시청까지 10분 정도 걸리는데, 10분 정도 더 투자해 20분간 빠르게 걷는 것이다. 야근이 잦고 퇴근 후에는 집안일도 도와야 해 따로 시간을 내 운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상에선 신호등 때문에 중간에 멈춰야 해서 계속 걸을 수 있는 지하도를 택했다. 출근할 땐 운동화를 신고, 사무실엔 구두를 갖다놨다. 이씨는 "평소 운동을 안 하는 상태에서 업무가 많아지다 보니 몸이 굉장히 안 좋아져 걷기를 시작했다"며 "걸은 지 3개월 만에 체중이 3㎏ 줄었고, 심폐 기능도 좋아진 것 같다. 컴퓨터로 일하다 보니 어깨가 뭉칠 때가 잦은데, 팔을 흔들며 걸으니 자연스럽게 풀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