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흥남철수 피란민 아들 문재인, 영화 '국제시장' 대신 '님아…'를 관람했는데

화이트보스 2014. 12. 29. 10:49

흥남철수 피란민 아들 문재인, 영화 '국제시장' 대신 '님아…'를 관람했는데

  • 김봉기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E-mail : knight@chosun.com
    정치부에서 주로 여권(與圈)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더보기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입력 : 2014.12.29 05:30
    • 스크랩 메일 인쇄
    • 글꼴 글꼴 크게 글꼴 작게
    최근 정치권에선 극장가 흥행 1위를 달리는 영화 ‘국제시장’과 관련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주목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문 의원은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문 의원은 지난 성탄절 전날 부인과 함께 노부부의 일상과 죽음을 다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관람했다고 합니다. 이 때까지도 문 의원의 영화 관람 사실이 별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문 의원이 당초 국제시장 관람을 고심하다가 대신 다른 영화를 택하게 된 것’이란 뒷이야기가 기사화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문 의원의 부모 역시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과 그 가족들처럼 6·25 전쟁 때 함경남도 흥남부두에서 미군 함정을 타고 피란을 떠나 부산에 정착하게 된 실향민 출신입니다. 어떻게 보면 문 의원이 자신의 가족사와 연관된 영화 대신 다른 영화를 택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게 된 겁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012년 11월 8일 부인 김정숙씨와 함께 광주시청에서 열린 '2012광주국제영화제'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모습. /조선일보DB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012년 11월 8일 부인 김정숙씨와 함께 광주시청에서 열린 '2012광주국제영화제'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모습. /조선일보DB
    문 의원은 지난 2011년 6월 펴낸 자서전인 ‘운명’에서 자신이 실향민의 아들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자신의 부모가 1950년 12월 흥남철수로 피란길에 오르던 상황을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문 의원이 태어나기 3년 전 일인데, 그가 부모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자서전에 정리해놓은 겁니다.

    문 의원의 아버지는 함흥농고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고 합니다. 흥남에선 솔안 마을로 불리던 곳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문씨 집성촌이 있을 만큼 친척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는 게 문 의원의 설명입니다.

    문 의원의 아버지는 북한 치하에서 공산당 입당을 강요받았지만 끝까지 버텼고, 6·25 발발 후 유엔군이 함흥에 진주했다가 철수할 때 함께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 의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유엔군이 금방 수복할 것으로 봤기 때문에 함흥에 남았답니다. 문 의원은 자서전에 ‘나중에 조부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정확한 시기는 알지 못한다’고 적었습니다.

    문 의원의 부모는 흥남을 떠날 때 당시 젖먹이였던 문 의원의 누나를 업고 피란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피란은 미군 LST(병력이나 전차를 상륙시키는 군용함정) 선박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정작 피란민들은 미군이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몰랐다. 2박3일 동안 배 밑창에서 생활했다…(중략) 미군이 피란민들을 데려다 준 곳은, 경남 거제도에 임시로 마련된 피란민수용소였다. 어머니는 흥남을 떠날 때 어디 가나 하얀 눈 천지였는데, 거제에 도착하니 온통 초록빛인 것이 그렇게 신기했다고 한다. ‘여기는 정말 따뜻한 남쪽 나라구나’라는 것이 거제를 본 어머니의 첫 인상이었다.”
    문재인 의원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던 지난 2004년 7월 11일 금강산 온정각에서 열린 1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머니 강한옥씨(왼쪽)와 함께 북측의 막내이모 강병옥씨를 만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문재인 의원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던 지난 2004년 7월 11일 금강산 온정각에서 열린 1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머니 강한옥씨(왼쪽)와 함께 북측의 막내이모 강병옥씨를 만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문 의원은 부모가 피란살이를 하던 1953년 1월 거제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노무일을, 어머니는 거제의 계란을 부산으로 가져가 파는 행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돈을 모아 이사를 간 곳이 부산 영도였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가난을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문 의원의 아버지는 부산의 한 양말공장에서 양말을 구입해 전남 지역 판매상들에게 공급해주는 일을 했지만 부도가 났고, 대신 어머니가 연탄 배달을 해 가족들이 근근이 먹고 사는 수준이었습니다.

    문 의원의 아버지는 문 의원이 20대일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 의원은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우리 집의 가난도 아팠지만, 분단과 전쟁 때문에 아버지가 당신의 삶을 잃은 것이 늘 너무 가슴 아팠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구속됐다가 출감 후 군대에 갔다 왔는데도 복학이 안 되던 낭인 시절, 내가 제일 어려웠던 때에 돌아가셨다. 내가 잘 되는 모습을 조금도 보여드리지 못한 게 참으로 죄스러웠다. 뒤늦게 내가 잘 된다고 해도 만회가 되는 일이 아니어서 평생의 회한으로 남아 있다.”

    문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자신이 실향민 집안 출신임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북방한계선)을 사실상 무효화 시키려고 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 의원을 공격했을 때, 문 의원은 “나는 북한 공산체제가 싫어 피란을 내려온 실향민의 아들이다. 또 공수부대에서 군복무를 떳떳이 마쳤다”며 반격했습니다.
    문재인 의원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012년 10월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해 이북도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조선일보DB
    문재인 의원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012년 10월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이북 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해 이북도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조선일보DB
    또 당시 대선후보 방송 연설 때도 “나는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내 부모님은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수송선을 타고 고향 흥남을 떠나 거제도 피란민수용소로 내려왔다”며 “나 문재인, 보통 국민처럼 투철한 안보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문 의원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실향민들이 주축인 이북도민 체육대회 행사장을 방문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게 환영을 받진 못했습니다. 당시 문 의원이 관중석을 돌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일부 참석자들로부터 “친북종북세력 물러가라”, “문재인 후보도 실향민인데 왜 종북세력과 가까이 하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또 일부는 문 의원을 향해 물을 뿌렸습니다. 이에 문 의원은 더 이상 관중석을 돌지 않고 트랙으로 내려갔고, 당초 현장에서 도시락 점심 식사를 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예정보다 빨리 행사장을 떠났습니다.

    한편, 문 의원이 고심하다가 보지 않은 영화 ‘국제시장’을 놓고선 이 영화가 파독(派獨) 광부, 베트남 파병 등을 다루며 결과적으로 ‘박정희 시대’와 보수 정서를 대변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 야권 일각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문재인 의원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012년 11월 12일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후보와 함께 영화‘남영동 1985’시사회장을 찾아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문재인 의원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012년 11월 12일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후보와 함께 영화‘남영동 1985’시사회장을 찾아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이에 문 의원의 이번 영화 선택에도 이런 점이 고려된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제기되기도 합니다. 문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곤 영화 ‘광해’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 지지층을 결집했고, 고 김근태 의원의 과거 고문 사건을 다룬 영화 ‘남영동 1985’ 등을 관람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5공 시절 공안사건인 ‘부림사건’ 관련자들과 함께 영화 ‘변호인’을 관람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 의원 측은 “부부가 함께 볼 영화를 고르다보니 노부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문 의원이 택하게 된 것”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