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28 19:42
지난 11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총회. photo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야권이 신당론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친노(親盧) 진영에 대한 비노(非盧) 성향 인사들의 반감이 주 요인이다. 게다가 야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라 호남 지역 의원들도 상황에 따라 신당 창당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다.
야권의 신당창당론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구당구국(求黨求國)’ 모임을 이끌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 상임고문과 정동영 상임고문이다. 이들은 원외에서 “특정 계파(친노)가 당을 장악하면 신당이 불가피하다”고 말했었다. 정 고문은 최근에도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내년 7~8월쯤 신당이 창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면서 차기 당권도 가져갈 가능성이 높은 친노 진영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를 한 것이다.
정동영 고문 또한 지난 11월 한 강연에서 “‘특정 계파가 당권을 장악하게 되면 그 당은 지지할 수 없다. 그때는 100% 신당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현재 호남의 다수 여론이고 분위기”라고 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천정배 전 의원은 지난 11월 자신의 정치연구소인 ‘희망의 호남’을 열면서 주변 인사들에게 “신당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전 의원 측 인사는 최근 안철수 전 대표를 만나서도 이런 뜻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천 전 의원뿐 아니라 호남 지역의 현역 의원 상당수도 “친노가 당권을 잡은 뒤에도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고 국민의 실망감이 커지면 호남을 중심으로 한 신당이 창당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하고 있다.
영남 신당론 이야기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제7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젊은 인사 등이 ‘영남 신당론’을 내세워 여러 사람을 접촉 중에 있다”면서 “‘안철수 현상’에 희망을 걸었다가 실망한 중도 성향의 정치권 인사들도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안철수 전 대표와 가까웠던 ‘6인회’ 중 새누리당 출신 김성식 전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김영춘 전 의원 등도 신당 창당 요구를 받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6인회는 이들과 정장선·정태근·홍정욱 전 의원이었다.
야권의 신당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지난 9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탈당 논란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당내 반발에 직면했던 박 위원장이 외부인사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영입하려고 하자 강경파의 비판이 다시 쏟아졌고 박 위원장은 “탈당을 고민하고 있다”며 잠적했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 위원장이 탈당을 감행할 경우 정치권에 제3신당이 탄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국민공감혁신위원장과 원내대표직을 차례로 사퇴하기는 했지만 당을 떠나지는 않았다. 최근 국민이 정당의 공천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혁신 과제로 중점 제시하고 있는 그는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만 잘 정착되면 지금 야당에서도 계파주의 폐해를 극복하고 국민과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다음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 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지난 7·30 재보선 패배로 대표직에서 물러난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에게도 신당론에 대한 의견을 묻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는 당내 비노 진영의 사실상 리더이기 때문에 그가 움직일 경우 이런 움직임의 파괴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관망 중인 상태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신당론 관련 질문에 “시기적으로 지금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그런 생각으로 나한테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는데 현실성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안 전 대표는 아직 신당론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여전히 주목받는 차기 대선 후보로서 민주당과의 합당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의 제3세력을 이끌었던 안 전 대표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안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신당과 관련해 아직은 어떤 언급도 없었다”며 “일단은 당과 거리를 두고 정책 행보에 매진한 뒤, 변해가는 정치 상황을 지켜보고 대응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기존의 신당론은 현재 여야 구도의 중간 지대에 중도적 성향의 대안정당을 만들자는 측면이 강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앞두고 진보 정당 재편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수호·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등 진보·좌파 진영 인사 20여명이 조만간 ‘새로운 대중적 진보 정당 건설’에 대한 제안문을 발표할 것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재편 대상에서 통진당은 배제할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관계자는 “정당 건설 제안문에는 새정치민주연합에는 희망이 없다는 내용과 함께 현재 정의당과 노동당 등으로 분열된 진보 정당의 재편과 통합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중적 진보 정당 노선을 강조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노동자 중심주의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함세웅 신부, 명진 스님, 손호철 서강대 교수, 송주명 한신대 교수 등과 함께 최근 진보 노선 강화를 주장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을 연일 비판하고 있는 정동영 상임고문도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 상임고문은 “새 진보 정당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정해진 것도 없다”고 했다.
야권의 신당론에 대해 현재 야당 내의 계파 간 권력 지형을 보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분석이 많다. 친노와 비노, 호남과 비호남 의원들 간에 이념적·정책적 의견 차이가 크기 때문에 반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이 다음 전당대회 과정에서 심각하게 불거지면 장기적으로 당이 쪼개지고 신당이 나타날 수 있다는 예측이다. 하지만 당장 신당론이 힘을 받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총선을 2년이나 앞둔 상태에서 제1야당 소속이라는 안전한 지위를 버리고 신당 창당이라는 가시밭길에 몸을 던질 의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다음 당 대표가 누가 되고, 그 대표가 차기 총선 공천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서 신당론의 현실화 여부는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한 중진 의원은 “만약 현재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의원이 당 대표가 되고 그런 구조 속에서 친노 진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당이 흘러가면서 공천마저 불공정 논란에 휩싸인다면 분당은 당연한 수순이 될 것”이라며 “이번 전당대회는 야권 전체의 정치 지형이 완전히 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은 “계파에서 자유로운 정치를 하게 되면 당이 잘 굴러갈 수 있을 텐데 그게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운 과제”라며 “당내 계파가 사라지지 않는 한 신당론, 분당론은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