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2.04 03:00
세종시~여의도 150㎞ 오가며 공중에 붕 떠버린 고위 공무원
현장 안 보고 윗사람 지도 없이 책상머리서 서류 만지는 사무관
휘청대는 공직 사회 경쟁력으로 국가적 위기 감당할 수 있을까
-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30쪽 남짓한 세종시 관련 회고에서 유심히 들여다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고려하게 된 계기를 설명한 구절이었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문득문득 세종시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경제 부처가 세종시로 내려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촌음을 다퉜던 경제 위기 와중에는 과천 청사조차 멀게 느껴졌다.' 이 대목에서 최근 전·현직 관료들을 만나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국무총리실 출신 퇴직 공무원은 한두 마디 안부를 주고받은 끝에 불쑥 이런 말을 했다. "현직에 있는 공무원들을 만나 보면 다들 공중에 붕 떠 있다. 공직 사회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세종청사의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은 "일주일에 두세 차례는 서울에 올라온다"고 한다. 장차관의 국회 출석 일정을 수행하는 것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서울 업무를 챙기기 위해서다. 세종청사를 기준으로 하면 서울 출장 일정이다.
아주 가까운 공무원들은 솔직하게 "일주일에 두세 차례 세종시에 내려간다"고 반대로 설명한다. 세종시로 집을 옮긴 공무원들의 80% 이상은 자녀가 없는 미혼들이다.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은 대부분 서울에 산다. 거주지를 기준으로 하면 서울 근무가 일상이고, 세종청사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원거리 출장에 해당하는 셈이다.
과거 공무원들은 청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출장 가는 일정은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곤 했다. 세종청사로 옮긴 후에는 스스로 서울 출장을 자청한다고 한다. 집무실을 비우는 시간이 일상처럼 돼 버렸고, 집무실에 가는 것을 출장처럼 여기는 공무원에게 차분한 업무 구상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공직 사회 분위기를 전직 관료는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고 느낀 것이다.
세종시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150㎞ 도로 위를 떠도는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에 대한 우려는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졌다. 반면 경제 부처 국장급 인사 A씨는 "세종 정부청사와 근처 집 사이만 오가며 세종시 붙박이가 된 후배 공무원들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공무원은 자신이 설계하고 집행하는 행정이 반영되는 현장을 관찰하고 점검해야 한다. 세종시에 박혀 있는 사무관들은 그런 기회를 잃고 있으며 그게 문제라는 의식조차 없다. 그저 사무실에서 책상머리 서류 작업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매일 강남 사람들과 밥 먹고 나온 정책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세종시로 행정부를 옮겨 공무원들이 강남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무원은 강남 사람, 강북 사람, 수도권 사람, 지방 사람 가리지 말고 만나서 밥 먹고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손톱 밑 가시'를 뽑을 수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
직장인들은 윗사람이 자리를 비우는 날을 우스갯소리로 '무두절(無頭節)'이라고 부른다. 어쩌다 하루쯤인 무두절은 예상치 못한 공휴일 같은 즐거움을 준다. 세종시 부처에선 장차관, 국·과장이 일주일에 절반은 자리를 비운다. 하루걸러 한 번씩 무두절을 맞는 셈이다. 그렇게 긴장감이 떨어진 조직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A씨는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예전 공무원들은 '내가 국가를 경영한다'는 자부심 비슷한 게 있었다. 요즘 세종 부처 사무관들은 현장에도 안 가고, 사람도 안 만나고, 국·과장의 잔소리도 듣지 않으면서 평범한 생활인이 돼 가고 있다. 몇 년 지나면 우리나라 공직 사회의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국가 리더십, 기업과 더불어 '한강의 기적'을 이끈 세 축 중 하나였다. 세종시가 지방 균형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관료 사회의 경쟁력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몇 차례 드러난 행정 난맥상도 장차관은 서울에, 국·과장은 도로 위에, 사무관은 세종시에서 제각각 움직이는 우리 행정부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7년이나 2008년 경제 위기 같은 국가적 재난이 닥쳐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