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입니다. 아, 잘못 걸었네요” 뚜뚜뚜…
이재명기자 , 이재명기자
입력 2015-02-16 03:00:00 수정 2015-02-16 09:00:51
엉뚱한 사람에게 전화 걸어 “방위사업청장 맡아달라” 통보현정부 인사시스템 속살 보는듯…
여론의 “인사교체” 핵심메시지는 “대통령이 변해야한다”는 요구
《 청와대를 출입하는 이재명 정치부 차장의 정치권 뒷담화가 오늘부터 3주에 한 번씩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생생한 취재 내용에 날카로운 시선과 유쾌한 풍자를 버무려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정치의 새로운 맛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스쳐지나갔다고 한다. ‘전문가보다는 깨끗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건가? 아니면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사람을 쓰려는 건가?’ 당시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합동수사단을 꾸려 방산(防産) 비리와의 전쟁에 들어갔다. 생각을 가다듬은 전직 의원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방위사업은 제가 아는 분야가 아닙니다.”
그러자 김 실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윗분에게 다 보고했습니다. 그러니 내일 청와대로 오세요.” 전직 의원은 주춤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방위사업이 무슨 장학사업도 아닌데 덜컥 맡을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하루만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김 실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김문수는 무슨 김문수…” 하더니 “아, 전화를 잘못 걸었다”며 뚝 끊었다. 전직 의원은 김 전 지사의 보좌관 출신인 차명진 전 의원이다. 다음 날 발표된 방위사업청장은 국방과학연구소(ADD) 출신의 장명진이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명진’이다.
만약 차 전 의원이 그 자리에서 넙죽 “감사합니다”라며 방위사업청장직을 수락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김 실장은 당연히 장 청장에게 연락한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 앞에 떡하니 서 있는 사람은 차 전 의원이었을 테니 이보다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없었을 게다.
물론 단순 해프닝일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 인사시스템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아쉬운 느낌이 든다. 인사 대상자조차 발표 전날 통보받는다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사전 준비는 고사하고 자신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조차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이런 보안 강박은 국정 속도를 떨어뜨리는 급브레이크다.
김 실장이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지도 의문이다. 한동안 ‘두 명진’을 구분 못한 걸 보면 그저 ‘연락책’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인사는 원래 ‘소수의 환호, 다수의 한숨’이라고 했다. 누굴 뽑든 좋은 소리 듣기 어렵다. 그렇기에 한숨 쉬는 다수가 주억거릴 수 있도록 특정인을 발탁한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인사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의 메시지부터 제대로 짚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억장이 무너질지 모른다. 바꾸랄 땐 언제고 바꾸기만 하면 이리 떼처럼 물어뜯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나름의 승부수였다. 비서실장을 바꾸라고 했더니 총리를 바꾸겠다고 나섰다.(헷갈릴지 모르지만 총리가 비서실장보다 높다.) 그게 또 패착이었다. 화려한 스펙의 총리 후보자는 결정적으로 할 말, 못할 말을 구분 못했다. 야당 대표도 생뚱맞게 여론조사로 총리를 뽑자며 할 말, 못할 말 구분 못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여론이 득달같이 사람을 바꾸라고 한 건 그들에게 큰 죄가 있어서가 아니다. 대통령을 올바로 보필하지 못한 책임을 지라는 거였다. 다시 말해 인사 참사, 정책 혼선으로 표출된 국정 난맥 속에서 박 대통령을 대신할 희생양이 필요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국 인사 교체 요구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박 대통령의 변화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핵심을 짚지 못한 채 증세나 복지 구조조정이 국민에게 할 소리냐고 따져 묻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폭탄 맞은 국민에게 할 소리가 아니다. 선출직에겐 달력이 곧 권력이다. 박 대통령이 짚지 못한 여론의 메시지를 참모들조차 멀뚱히 지켜보면서 벌써 2년 치 달력이 사라졌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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