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2.18 03:00
"朴대통령 잘 보필해달라" 金실장, 수석들에게 당부
박 대통령이 후임 실장을 지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 실장의 사의 수용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비서실장 교체 없이는 인적 쇄신의 의미가 없다'는 여론의 압박이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실장은 그동안 '현 정부 불통(不通)의 진원지'라는 비판을 재임 기간 내내 받아왔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거듭된 인사 실패, 그리고 '정윤회 문건' 파동을 제대로 예방하지 못한 책임 등이 고스란히 김 실장에게 떨어졌다.
-
김기춘(왼쪽)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동필(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종범(오른쪽) 청와대 경제수석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김 실장이 박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공유하며 정권 안착에 큰 기여를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76세의 고령임에도 현안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빠르고 의사 결정이 신속·정확하고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 당·정·청(黨政靑)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김 실장에 대해 누구보다 두터운 신뢰를 표시했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실장에 대해 "정말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며 "가정에서도 참 어려운 일이 있지만 자리에 연연할 이유도 없이 옆에서 도와주셨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김 실장은 '왕실장'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정 운영의 핵심 역할을 맡아 왔다.
김 실장은 이날 박 대통령의 사의 수용 발표 전에 이뤄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수석들과 사실상 작별 인사를 나눴다. 김 실장은 그 자리서 "오늘 내가 인사를 많이 하게 되네"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김 실장은 이날 수석비서관들과 고별 만찬도 가졌다고 한다. 김 실장은 수석비서관들에게 "박 대통령을 잘 보필해달라. 열심히 일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실장은 검사 시절인 1974년 육영수 여사를 시해한 문세광을 조사하면서 소설 '자칼의 날'을 거론해 하루 만에 자백을 받은 비화 등을 소개했다고 한다.
김 실장 교체는 확정됐지만 후임 인사는 정해지지 않았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비서실장 인선이 말 그대로 인선난(難)인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숙고 모드에 들어간 이유는 인적 쇄신 부담감이 가중됐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완구 총리 카드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비서실장 인선에 대한 부담감은 배가된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