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동생 번쩍 들어올릴 로봇 꿈꿨다"

입력 : 2015.04.01 09:30 | 수정 : 2015.04.03 13:44
- ▲ 한재권 박사 /이하 사진 한재권 박사 제공
“로봇은 짧게는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우리 삶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로봇을 받아들였다가는 사회가 겪을 혼란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로봇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는 로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더 시급하다.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아직 해답은 얻지 못했다. 로봇도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지만 악용되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로봇은 다른 기술과 달리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발전의 방향을 잘 잡아야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로봇은 지금 막 첫 돌을 지난 어린아이와 같다. 지금 이 때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잘 잡아야 로봇을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로봇이 인간에게 이롭고 행복을 가져다 줄 기술이 되기 위한 열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로봇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로봇을 꿈꿨다. TV 만화영화 속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로봇이 번쩍번쩍 들어 구해 주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저런 능력이라면 내 동생을 잘 돌봐 줄 수 있을 텐데...’
한 살 밑 남동생은 날 때부터 뇌성마비였다. 눈빛과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걷기는커녕 말도 못하는 한 살배기 아기 신세였다.
그런 동생 같은 장애우를 돕는 로봇을 그는 늘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로봇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심했다. ‘내가 로봇을 만들어 동생 같은 사람들을 돌봐 줘야지.’
대입 때 전공도 주저 없이 기계공학을 택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꿈꾸던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대기업 연구소로 갔다. 성실히 일했다. 성과도 좋았다. 상도 받았다. 하지만 허전했다.
진짜 꿈을 뒤로 한 삶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고심 끝에 아내에게 털어놨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까.” 아내가 답했다. “그래, 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를 다시 살게 해준 구원의 말이었다.
로봇 박사 한재권. 그가 남다른 이력과 꿈을 담은 책을 냈다. ‘로봇 정신’(월간 로봇). 지금 그는 미국에 가 있다. 오는 6월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사상 최대 규모 재난구조 로봇 대회다.
이미 결선까지 진출한 상태다. 자신이 속한 ‘로보티즈’ 팀원들과 캘리포니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현지 훈련에 땀을 흘리고 있다. 그에게 이메일 질문을 보냈다. 바쁜 중에도 꼼꼼히 답을 적어 보내왔다. 소개한다.
-제목에서 말하는 ‘로봇 정신’이란 게 뭔가?
책에서는 ‘로봇 정신’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않았다. 단지 곧 다가올 로봇과 함께할 미래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제안을 담았을 뿐이다.
로봇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함으로써 '건강한 로봇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정신을 만들어 가보자'는 취지로 쓴 책이다. 굳이 풀어서 쓰자면 ‘좋은 로봇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정신’ 쯤 되겠다.
-뇌성마비 증세를 보이는 동생 때문에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게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계기였나?
그렇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로봇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면서 장애우들을 돕는 로봇을 상상해 왔다. TV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이 우리 집에 있으면 동생을 잘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로봇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내가 로봇을 만들어야겠다 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동생은 현재 로봇 기술 덕을 보고 있나? 앞으로는 어떨 것 같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들이 기술의 혜택을 보고 있는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로봇은 장애우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꾸준히 나아가면 곧 장애우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로봇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좋은 직장을 다니다가 갑자기 로봇 공부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두렵지 않았나? 어떻게 극복했나?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로봇 연구라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더 간절했던 것 같다. 더불어 아내가 옆에서 지지해 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내에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가자고 했을 때 아내가 흔쾌히 동의하고 응원해 준 것이 아직도 고맙다.
-지금 로봇 대회 출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그동안 대회 성적은 어땠고, 이번에는 어떤 대회이고 어떻게 예상하나?
미국 버지니아공대 유학 시절에 데니스홍 교수님의 로멜라 연구실에 소속되어 로보컵이라는 세계 로봇 축구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로보컵은 로봇 자율 축구 대회다. 목표가 2050년에는 현재 사람이 기량을 겨루는 월드컵 축구 우승팀을 로봇 팀이 이기는 것이다. 지금의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권위있는 로봇 대회였다.
나는 2009년부터 데니스 홍 교수 지도 하에 팀 주장으로 출전했다. 2011년에는 ‘찰리’ 라는 로봇을 만들어 우승도 했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재난구조 로봇 대회다. 현재 이 대회 결선까지 진출해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아 우리 팀 로보티즈와 카이스트, 서울대 등 총 3개 팀이 결선에 진출한 상태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이탈리아의 최고 연구소 등 모두 25개 팀이 자국의 명예를 걸고 자웅을 가리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후회 없이 경기를 치르고 싶다.
우리 팀 로보티즈는 지금 대회가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현지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는 6월 초에 결선이 열린다. 한국 팀들에게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로봇 월드컵 같은 대회가 어떤 의미가 있나? 그 동안 로봇 발전에 가져온 성과나 기여는?
로보컵 같은 로봇 축구 대회가 얼핏 보면 재미로 하는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발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축구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빠르고 안정적인 2족 보행 기술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몸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수시로 넘어지고 일어나야 한다. 그런 거친 시합 환경 속에서도 고장이 나지 않는 신뢰성 높은 하드웨어 제작은 기본이다.
로봇이 인간만큼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다면 실생활에서도 원활하게 쓰일 수 있을 정도의 운동신경과 신뢰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매년 열리는 로보컵 경기를 통해 전 세계 로봇 과학자들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로봇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지금 열리는 재난구조 로봇 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만 해도 결선 출전자들 중에는 로보컵 우승자 출신들이 많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로보컵이 로봇 기술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로봇이라면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안다. 카네기멜런대학의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서 ‘로봇 퓨처’(레디셋고)에서 과거 생명체의 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캄브리아기와 비슷하게 현재 로봇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려 한다고 쓴 걸 봤다. 정말 그런가?
로봇을 오래 연구한 분들 중에는 그런 시각을 가진 분이 많은 것 같다. 현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사회 전체가 고령화됨에 따라 로봇을 필요로 하는 압력이 심해지고 있다. 고령화 시대의 해법으로 로봇의 등장을 얘기하고 있고, 많은 관련 프로젝트들이 가동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로봇 개발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아마도 누르바흐시 교수의 말은 현실이 될 것 같다.
-한 박사는 그 중에서도 어떤 분야가 전문인가? 왜 그 분야를 택했나?
나는 로봇의 기계 부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로봇은 기계, 전기, 전자, 컴퓨터, 디자인,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필요한 종합 학문이다. 따라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제대로 된 로봇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그 많은 분야의 한 분야인 기계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기계 분야를 택한 것은 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직접 기계 만드는 것을 보고 배워왔기 때문에 내게는 가장 친숙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것 같다.
-로봇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눠 본다면 국제사회 전체로 볼 때 각각 어떤 수준에 와있나? 한국은 어느 정도인가?
일본과 미국이 많이 앞서 가 있다. 하드웨어는 확실히 일본이 앞서고 있고, 소프트웨어는 미국의 수준이 높다.
우리는 냉정하게 말해서 이들에게는 뒤처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뛰어난 로봇 공학자들이 많이 있다. 또 로봇을 친숙하게 써줄 우수한 소비자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연구실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연구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과학자, 공학자, 학생들이 많이 있다. 나는 이분들이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현상은 현재 로봇 관련 소프트웨어의 많은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구글이 2013년 열린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본선에서 우승했던 일본의 샤프트(SCHAFT) 라는 회사를 인수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군용 로봇 회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보스턴 다이나믹스도 동시에 인수했다. 그런 방식으로 구글은 로봇 하드웨어에 대한 기술도 한순간에 확보하면서, 그 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로봇 잠재력을 가진 회사가 됐다.
기술력을 가진 회사의 인수 합병이 이런 식으로 국경을 초월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의 기술력 비교는 어쩌면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로봇 개발이 국가 간 헤게모니 경쟁 양상을 띄고 있다고 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로봇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국가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지난 몇 년간 로봇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앞 다투어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으로 향했던 공장들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을 잡고 있다. 다시 돌아오는 공장에는 사람은 별로 없고 주로 로봇들이 일을 하게 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렸던 중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로봇은 분명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로봇은 중요하다. 이미 지금도 무인 폭격기, 무인 장갑차와 같은 로봇 무기들이 실전 배치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런 기술이 발전해 로봇 군인이 나타나게 된다면 로봇 기술을 가지지 못한 국가는 로봇 기술을 가진 국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총이나 구한말의 군함이 미래 세계에서는 로봇으로 형태만 바뀔 뿐 마찬가지의 위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특히 기술에 있어서는 남에게 뒤쳐져서 안 되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로봇은 기술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영역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로봇의 발달 동인(動因)으로 인간의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구’를 꼽았는데?
인간의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구야말로 위대한 것이다. 이 욕망이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로봇은 이 욕망의 결정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모두가 개인 비서를 집에 한 명씩 두고 산다고 가정해 보라. 자신이 해야 할 많은 잡다한 일들을 로봇이 대신해 준다고 생각해 보라. 다시 말해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망이 모두 충족된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한다. 이 욕망이 로봇 기술을 발전시켜주는 강력한 동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인터넷 웹페이지를 저마다 만들어 사용하는 것처럼 장차 로봇도 3D 프린터와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각자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도 한다.
미래 사회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3D 프린터의 발달은 제조와 물류 면에서 인간의 삶을 바꿔 줄 기술임에는 틀림 없다. 갖고 싶은 물건을 사거나 배달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파일을 내려 받아 직접 만들어 내는 시대를 열어 줄 기술이다.
로봇은 단지 그런 물건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3D 프린터가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3D 프린터 기술은 분명 빠르게 진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로봇 개발에서 당면한 최대 과제는 무엇인가?
로봇이 실생활에서 원활하게 쓰이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로봇이 할 수 있으려면 인간의 의 근육처럼 효율성이 높은 구동기가 있어야 하고,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도 더 발전돼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 체계에 필적할 만한 인공지능도 발전해야 한다.
현재 로봇 기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최근 몇 년 간 가속도가 붙어 획기적인 기술 개발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는 로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더 시급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개발 막바지에 있는 무인자동차(자율주행 자동차)만 하더라도 그렇다. 도로에서 같이 달리고 있는 옆 차에 운전자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 무섭지 않을까?
로봇은 짧게는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우리 삶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로봇을 받아들였다가는 사회가 겪을 혼란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로봇이 함께 살아갈 사회에 대해 고민한다고 했다. 인간이 더 행복해질까?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아직도 그 해답은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로봇도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지만 이것이 악용되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래서 발전 초기에 방향을 잘 잡고 나아가야 한다. 로봇에게 인간에게 이롭고 행복을 가져다 줄 기술이 되기 위한 열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로봇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로봇 중에서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것이 섹스 로봇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성욕은 식욕, 수면욕과 더불어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세 가지 욕구 중 하나다. 기본 욕구와 관련된 상품은 구매력이 상당히 강하다. 로봇은 기술적으로 인간의 성욕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 줄 수 있다.
물론 인간 사이의 영혼의 울림과 같은 깊은 감동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로봇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면 어느 정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래서 그 구매력과 파급력은 상상보다 더 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로봇이 야기할 문제에 대한 해답은 공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에 있다고 했는데?
기술은 언제나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 오류를 다른 기술로 잡으려 한다면 또 새로운 오류가 생겨날 것이다. 이는 오류의 무한 반복을 의미한다.
기술의 오류는 인문학이 잡아 줘야 한다.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제어할 수 있어야 기술을 오류 없이 잘 제어할 수 있다.
인간을 제어하는 해법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봇을 어떻게 만들어야 잘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인간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을 만드는 것도 인간을 위해서이고 로봇을 쓰는 것도 인간이다.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쓸지 있을지는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해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평소 인문학 공부도 하나?
특별히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다. 시중에 발간되는 책을 보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자 분들을 많이 만나서 가르침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아직은 내 인문학 수준이 낮아서 말이 잘 안 통한다고 해도, 계속 꾸준히 질문하고 의견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유명한 생명과학자들이 국제 사회에 대해 유전자 조작 기술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자고 촉구했다. 유전질환 치료로 개발된 유전자 변형술이 지능이나 신체 증강에 마구 남용되는 데 대한 우려였다. 아직 사회적 윤리적 논의가 부족하고 준비가 안돼 있다면서. 로봇공학 기술 쪽은 그럴 필요가 없나?
로봇 윤리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로봇을 어떻게 대할지, 로봇에게 어떤 일은 하게 하고 어떤 일은 못 하게 할지, 로봇의 행동 판단 기준을 어떤 윤리적 잣대로 세워 줄지, 로봇의 사회 윤리적 지위는 어느 정도로 부여해 줄지 등등 로봇 윤리에 관한 문제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이 문제들은 공동의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로 풀어나가야 한다.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공감대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로봇이 우리 곁에 들어오게 되면 사회는 극심한 혼란과 부작용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물류업을 하고 있는 장인에게 전업을 권했다고 했다. 바꾸셨나? 앞으로 사라질 직업으로 외과의사, 펀드매니저, 택시/운송 기사, 배송기사 등을 이야기했는데, 어떤 직업을 피하고 어떤 일을 찾는 게 좋은가?
아직 바꾸지 않았다. 물류업을 로봇이 대체하기까지는 다행히도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다.
비록 현재 아마존에서는 드론을 이용한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고, 얼마 전 미국 항공청(FAA)에서는 제한적인 조건 하에서 운행 시험을 허가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본격적인 운행을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머지 않아 물류업은 로봇의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 내 전망이다. 세계 미래학회에서는 앞으로 없어질 직종과 생겨날 직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곳에서도 로봇 기술의 발달이 인간 직업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어 보인다.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로봇이 인간보다 더 잘하는 고소득 서비스 업종과 로봇이 하기 쉬운 단순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처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인간은 보다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로봇은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일을 인간만큼 잘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로봇 산업의 발전을 잘 제어한다면,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뺏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하고, 인간은 보다 인간적인 일을 하게 되는 사회적 분업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로봇이 케인즈와 하이에크 사이에 서 있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자본주의는 그 동안 케인즈의 수정 자본주의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그때그때 당면했던 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며 발전해 왔다. 그런데 로봇과 함께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경제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로봇이 상당히 위험한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신자유주의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만 작동하는 원리이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인간에게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정부의 규제조차 받지 않는 자유 시장은 생산의 효율성만 추구할 테고, 기업들은 생산성 증대를 위해 로봇들을 무분별하게 도입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효율성 면에서 기계인 로봇을 이길 수가 없다. 고용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월급을 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로봇이 인간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최소한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게 된다.
이들은 당장 들어가야 할 의료비, 주거비 등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배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전보다 더 열악한 근로 조건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 인구가 감소하고 빈민층이 증가하며, 이로 인해 내수가 악화될 것이다. 로봇의 투입이 개별 기업 입장에선 당장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겠지만, 결국 사회 전체가 불황으로 빠져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대안으로 로봇을 활용한 복지 자본주의를 지지한다고 했다. 간략히 설명한다면?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 나갈 것이다. 이 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 만약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빈민이 증가하고 사회 구매력이 감소해서 내수가 악화되는 불황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교육 기회를 주고, 실업 기간 중에는 육아,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줌으로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커지고 내수가 증가함으로써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본적인 육아, 교육, 의료 걱정이 없는 사회를 함축적으로 말해서 복지 자본주의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로봇은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하고, 인간은 보다 인간적인 일을 하는 효율적인 분업 사회가 될 것이다.
이는 생산가능 인구의 증가를 뜻하며 내수 시장의 확대를 뜻한다. 로봇이 경제의 선순환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복지 자본주의가 기본 경제 체제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로봇은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다른 기술과는 달리 작용과 반작용의 시행착오를 거칠 만한 여유가 없다고 했는데.
로봇은 다른 기술과 달리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발전의 방향을 잘 잡아야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다. 어린 아이 때 처음 잘못 들인 버릇과 생각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는 잘 고쳐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로봇은 지금 막 첫 돌을 지난 어린아이와 같다. 지금 이 때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잘 잡아야 로봇을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이점(Singulrarity)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우월해질 경우의 우려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보다 더 우월해지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분들이 많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컴퓨터는 인간보다 수 십, 수 백 배 빨리 연산한다. 하지만 생각에서 중요한 것은 방식이지 속도가 아니다.
생각의 방식을 컴퓨터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알고리즘을 로봇 스스로가 진화시키지 못하게 한다면 싱귤레리티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우월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영역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력이나 경우의 수 계산 부분에서는 인공지능이 더 우월할 수 있다 .하지만 창의적인 생각이나 감성적인 생각은 인간이 보다 더 우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봇무기가 핵무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로붓 군대가 세계 패권의 핵심 전략이 된다고 했다. 왜 그런가?
전쟁을 막는 최후의 보루는 인간의 윤리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쟁을 인간이 아닌 로봇이 수행하게 된다면 윤리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안전한 벙커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듯 모니터를 보며 조이스틱으로 전쟁을 하는 순간, 전쟁은 최후까지 피하고 싶은 수단이 아닌 여차하면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로봇 군대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는 전쟁의 승패가 이미 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손자는 전쟁은 이기고 나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원리를 아는 국가들이 로봇 군대를 보유하려는 욕심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로봇을 이용한 무기 개발이 한창이다.
로봇 군대를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보유한 국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세계 패권의 핵심 전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과거 조총이나 군함과 같은 신식 무기가 모양만 바꿔 나타나는 역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든다.
-로봇무기나 군대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하면서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순 아닌가?
모순 맞다. 하지만 핵무기도 2차 세계대전 중 두 차례 사용된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 아직까지 누구도 감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국가들은 연합해서 더 이상의 핵무기 제조를 막고 있다.
핵무기는 로봇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로봇 군대의 통제 문제 있어서 좋은 벤치마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국가가 로봇 군대를 보유한다면 우리도 보유해야 한다. 그렇게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서로 쓰지 못하게 해야 주권을 올바로 지키면서도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운용의 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의 등장이 국민과 권력자 간의 사회계약서를 다시 쓰게 만들 것이라고 했는데.
국민은 국가에 노동력과 세금을 제공하는 대신, 국가는 국민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사회를 안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 사회 계약이다. 만약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게 된다면 국민과 국가 간의 사회 계약은 힘을 잃게 된다.
따라서 국민과 국가 간에 계약서를 갱신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어떤식의 계약이 성립해야 모두 윈윈할 수 있을지는 인문학자들이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이 로봇 덕분에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되면 육체적 존재에서 벗어나 정신적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예술가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술도 경쟁이나 희소성의 원리가 따르지 않을까? 대중 누구나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예술적 소양이나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적 능력이나 소양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름의 삶이 있을 것이다. 사회에는 언제나 주류와 비주류가 있게 마련이고, 앞으로는 그 주류가 예술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 것뿐이다. 주류의 삶이 아니라고 해서 행복하지 않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이오공학과 로봇공학의 결합에 의한 신인류, 호모 로보티쿠스의 탄생을 지지하나? 이러한 기술이 장애 치료나 보완보다 부유층의 수명연장이나 능력 신장 쪽으로 더 빨리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호모 로보티쿠스의 삶이 행복할지 불행할지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단지 더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 호모 로보티쿠스의 탄생을 가져올 것 같다는 예상을 한 것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그 혜택을 부유층 사람들부터 받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호모 로보티쿠스의 삶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쉽게 예상되지 않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그동안 많이 나왔다. 최근에도 많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로봇 캐릭터는?
최근에 ‘빅히어로 6’(국내에는 ‘빅 히어로’로 개봉)를 극장에서 봤는데 로봇의 순작용과 역작용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로봇의 순작용과 역작용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로봇 베이멕스의 움직임이 실제 로봇의 움직임과 상당히 비슷했는데 곳곳에서 리얼리티가 디테일하게 살아있어서 로봇공학자로서 보기에 즐거웠다.
-가장 설득력 있게 보였던 로봇 영화는? 가장 황당하게 보였던 설정은?
영화 ‘로봇 앤 프랭크’는 로봇이 우리에게 친구로 다가왔을 때 인간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그렸다. 아마도 로봇이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 모두 프랭크가 느낀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낄 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개봉했던 ‘로보캅 리메이크’ 버전은 로봇에 대한 자본의 욕망과 부작용을 그리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 어떤 로봇이 좋은 로봇인가? 착한 로봇과는 다른가?
좋은 로봇은 반려동물과 같은 로봇이라고 생각한다. 주인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친구 같은 로봇이 내가 꿈꾸는 로봇이다.
반면에, 인간의 모든 명령을 다 수행하는 착한 로봇은 좀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옆집에 사는 아무개씨가 밉다고 로봇에게 그를 한 대 때려주고 오라고 명령하더라도 로봇은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그런 경우들을 우리 사회가 잘 합의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대학을 가려고 하는 문화를 비판했다. 로봇 공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내 주변에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혹은 로봇은 전공하지 않아도 로봇을 잘 만드는 분들이 많이 있다. 로봇은 창의력과 노력으로 승부하는 분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런 사례가 많지 않다.
분명 대학은 로봇에 대한 이론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학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대학을 나온)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비겁하게 들리겠지만, 앞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훌륭한 로봇을 만들어 내는 로봇계의 스티브 잡스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로봇에 관심 있는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지금 당장에는 로봇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것 같다. 현재 로봇 과목이 정규 과목으로 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르쳐 주는 기관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팀이나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방법을 택하기를 추천한다.
로봇은 결국 한사람의 영웅이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 로봇은 팀워크의 산물이다.
많은 분들이 로봇은 '아이언 맨'에 나오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 같은 천재 과학자가 만들어 내는 기계라고 생각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로봇은 기계, 전기, 전자, 전파, 컴퓨터 같은 공학의 여러 분야와 디자인 같은 미학 분야, 심리학과 인지과학 같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잘 녹아 있어야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온다.
이 많은 분야를 한 사람이 다 완벽하게 잘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로봇은 여러 분야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내는 팀워크의 결정체다. 좋은 팀이 좋은 로봇을 만든다.
내가 속한 팀 로보티즈도 마찬가지다. 나는 단지 기계 분야를 맡고 있을 뿐, 엑튜에이터 제작, 모터 제어, 이족 보행, 사물 인식, 매니퓰레이션,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통신 등 여러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이 우리 로봇 똘망이를 함께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들의 헌신적인 열정이 나 한 사람에 의해 가려지는 것은 마음이 불편한 일이다. 로봇을 볼 때 그 뒤에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헌신적으로 다하고 있는 많은 연구원들을 봐 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팀 로보티즈가 너무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럽다. 이들과 같이 세계 최고 로봇 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결승전을 같이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한재권
-로봇 공학 박사. 현재 로보티즈 수석연구원.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저 결선 진출
-2013년 재난 구조용 휴머노이드 로봇 똘망2 설계 제작
-2012년 버지니아대 공대 공학박사 학위 취득
-2011년 자신이 제작한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가 시사주간 타임 선정 ‘2011년 올해 최고 발명품 50’에 선정됨. 로보컵 2011 어덜트 시리즈 리그, 키즈 시리즈 리그 동시 우승, 최고 휴머노이드상 수상
-2010년 미국 최초 성인 크기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 설계 및 제작
-2009년 버지니아 공대 RoMeLa 연구실 다윈(DARwin) 로봇 시리즈 중 최고 사양 다윈-HP 설계 및 제작
-2007년 리얼 트랜스포머 로봇 설계 및 제작, 유튜브 300만건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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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근 기자
입력 : 2015.04.01 09:30 | 수정 : 2015.04.03 13:44
- ▲ 한재권 박사 /이하 사진 한재권 박사 제공
“로봇은 짧게는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우리 삶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로봇을 받아들였다가는 사회가 겪을 혼란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로봇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는 로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더 시급하다.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아직 해답은 얻지 못했다. 로봇도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지만 악용되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로봇은 다른 기술과 달리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발전의 방향을 잘 잡아야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로봇은 지금 막 첫 돌을 지난 어린아이와 같다. 지금 이 때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잘 잡아야 로봇을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로봇이 인간에게 이롭고 행복을 가져다 줄 기술이 되기 위한 열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로봇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로봇을 꿈꿨다. TV 만화영화 속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로봇이 번쩍번쩍 들어 구해 주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저런 능력이라면 내 동생을 잘 돌봐 줄 수 있을 텐데...’
한 살 밑 남동생은 날 때부터 뇌성마비였다. 눈빛과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걷기는커녕 말도 못하는 한 살배기 아기 신세였다.
그런 동생 같은 장애우를 돕는 로봇을 그는 늘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로봇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심했다. ‘내가 로봇을 만들어 동생 같은 사람들을 돌봐 줘야지.’
대입 때 전공도 주저 없이 기계공학을 택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꿈꾸던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대기업 연구소로 갔다. 성실히 일했다. 성과도 좋았다. 상도 받았다. 하지만 허전했다.
진짜 꿈을 뒤로 한 삶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고심 끝에 아내에게 털어놨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까.” 아내가 답했다. “그래, 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를 다시 살게 해준 구원의 말이었다.
로봇 박사 한재권. 그가 남다른 이력과 꿈을 담은 책을 냈다. ‘로봇 정신’(월간 로봇). 지금 그는 미국에 가 있다. 오는 6월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사상 최대 규모 재난구조 로봇 대회다.
이미 결선까지 진출한 상태다. 자신이 속한 ‘로보티즈’ 팀원들과 캘리포니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현지 훈련에 땀을 흘리고 있다. 그에게 이메일 질문을 보냈다. 바쁜 중에도 꼼꼼히 답을 적어 보내왔다. 소개한다.
-제목에서 말하는 ‘로봇 정신’이란 게 뭔가?
책에서는 ‘로봇 정신’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않았다. 단지 곧 다가올 로봇과 함께할 미래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제안을 담았을 뿐이다.
로봇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함으로써 '건강한 로봇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정신을 만들어 가보자'는 취지로 쓴 책이다. 굳이 풀어서 쓰자면 ‘좋은 로봇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정신’ 쯤 되겠다.
-뇌성마비 증세를 보이는 동생 때문에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게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계기였나?
그렇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로봇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면서 장애우들을 돕는 로봇을 상상해 왔다. TV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이 우리 집에 있으면 동생을 잘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로봇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내가 로봇을 만들어야겠다 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동생은 현재 로봇 기술 덕을 보고 있나? 앞으로는 어떨 것 같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들이 기술의 혜택을 보고 있는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로봇은 장애우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꾸준히 나아가면 곧 장애우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로봇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좋은 직장을 다니다가 갑자기 로봇 공부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두렵지 않았나? 어떻게 극복했나?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로봇 연구라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더 간절했던 것 같다. 더불어 아내가 옆에서 지지해 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내에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가자고 했을 때 아내가 흔쾌히 동의하고 응원해 준 것이 아직도 고맙다.
-지금 로봇 대회 출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그동안 대회 성적은 어땠고, 이번에는 어떤 대회이고 어떻게 예상하나?
미국 버지니아공대 유학 시절에 데니스홍 교수님의 로멜라 연구실에 소속되어 로보컵이라는 세계 로봇 축구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로보컵은 로봇 자율 축구 대회다. 목표가 2050년에는 현재 사람이 기량을 겨루는 월드컵 축구 우승팀을 로봇 팀이 이기는 것이다. 지금의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권위있는 로봇 대회였다.
나는 2009년부터 데니스 홍 교수 지도 하에 팀 주장으로 출전했다. 2011년에는 ‘찰리’ 라는 로봇을 만들어 우승도 했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재난구조 로봇 대회다. 현재 이 대회 결선까지 진출해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아 우리 팀 로보티즈와 카이스트, 서울대 등 총 3개 팀이 결선에 진출한 상태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이탈리아의 최고 연구소 등 모두 25개 팀이 자국의 명예를 걸고 자웅을 가리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후회 없이 경기를 치르고 싶다.
우리 팀 로보티즈는 지금 대회가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현지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는 6월 초에 결선이 열린다. 한국 팀들에게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로봇 월드컵 같은 대회가 어떤 의미가 있나? 그 동안 로봇 발전에 가져온 성과나 기여는?
로보컵 같은 로봇 축구 대회가 얼핏 보면 재미로 하는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발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축구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빠르고 안정적인 2족 보행 기술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몸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수시로 넘어지고 일어나야 한다. 그런 거친 시합 환경 속에서도 고장이 나지 않는 신뢰성 높은 하드웨어 제작은 기본이다.
로봇이 인간만큼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다면 실생활에서도 원활하게 쓰일 수 있을 정도의 운동신경과 신뢰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매년 열리는 로보컵 경기를 통해 전 세계 로봇 과학자들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로봇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지금 열리는 재난구조 로봇 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만 해도 결선 출전자들 중에는 로보컵 우승자 출신들이 많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로보컵이 로봇 기술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로봇이라면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안다. 카네기멜런대학의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서 ‘로봇 퓨처’(레디셋고)에서 과거 생명체의 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캄브리아기와 비슷하게 현재 로봇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려 한다고 쓴 걸 봤다. 정말 그런가?
로봇을 오래 연구한 분들 중에는 그런 시각을 가진 분이 많은 것 같다. 현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사회 전체가 고령화됨에 따라 로봇을 필요로 하는 압력이 심해지고 있다. 고령화 시대의 해법으로 로봇의 등장을 얘기하고 있고, 많은 관련 프로젝트들이 가동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로봇 개발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아마도 누르바흐시 교수의 말은 현실이 될 것 같다.
-한 박사는 그 중에서도 어떤 분야가 전문인가? 왜 그 분야를 택했나?
나는 로봇의 기계 부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로봇은 기계, 전기, 전자, 컴퓨터, 디자인,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필요한 종합 학문이다. 따라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제대로 된 로봇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그 많은 분야의 한 분야인 기계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기계 분야를 택한 것은 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직접 기계 만드는 것을 보고 배워왔기 때문에 내게는 가장 친숙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것 같다.
-로봇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눠 본다면 국제사회 전체로 볼 때 각각 어떤 수준에 와있나? 한국은 어느 정도인가?
일본과 미국이 많이 앞서 가 있다. 하드웨어는 확실히 일본이 앞서고 있고, 소프트웨어는 미국의 수준이 높다.
우리는 냉정하게 말해서 이들에게는 뒤처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뛰어난 로봇 공학자들이 많이 있다. 또 로봇을 친숙하게 써줄 우수한 소비자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연구실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연구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과학자, 공학자, 학생들이 많이 있다. 나는 이분들이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현상은 현재 로봇 관련 소프트웨어의 많은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구글이 2013년 열린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본선에서 우승했던 일본의 샤프트(SCHAFT) 라는 회사를 인수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군용 로봇 회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보스턴 다이나믹스도 동시에 인수했다. 그런 방식으로 구글은 로봇 하드웨어에 대한 기술도 한순간에 확보하면서, 그 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로봇 잠재력을 가진 회사가 됐다.
기술력을 가진 회사의 인수 합병이 이런 식으로 국경을 초월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의 기술력 비교는 어쩌면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로봇 개발이 국가 간 헤게모니 경쟁 양상을 띄고 있다고 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로봇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국가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지난 몇 년간 로봇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앞 다투어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으로 향했던 공장들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을 잡고 있다. 다시 돌아오는 공장에는 사람은 별로 없고 주로 로봇들이 일을 하게 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렸던 중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로봇은 분명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로봇은 중요하다. 이미 지금도 무인 폭격기, 무인 장갑차와 같은 로봇 무기들이 실전 배치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런 기술이 발전해 로봇 군인이 나타나게 된다면 로봇 기술을 가지지 못한 국가는 로봇 기술을 가진 국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총이나 구한말의 군함이 미래 세계에서는 로봇으로 형태만 바뀔 뿐 마찬가지의 위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특히 기술에 있어서는 남에게 뒤쳐져서 안 되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로봇은 기술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영역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로봇의 발달 동인(動因)으로 인간의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구’를 꼽았는데?
인간의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구야말로 위대한 것이다. 이 욕망이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로봇은 이 욕망의 결정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모두가 개인 비서를 집에 한 명씩 두고 산다고 가정해 보라. 자신이 해야 할 많은 잡다한 일들을 로봇이 대신해 준다고 생각해 보라. 다시 말해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망이 모두 충족된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한다. 이 욕망이 로봇 기술을 발전시켜주는 강력한 동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인터넷 웹페이지를 저마다 만들어 사용하는 것처럼 장차 로봇도 3D 프린터와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각자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도 한다.
미래 사회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3D 프린터의 발달은 제조와 물류 면에서 인간의 삶을 바꿔 줄 기술임에는 틀림 없다. 갖고 싶은 물건을 사거나 배달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파일을 내려 받아 직접 만들어 내는 시대를 열어 줄 기술이다.
로봇은 단지 그런 물건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3D 프린터가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3D 프린터 기술은 분명 빠르게 진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로봇 개발에서 당면한 최대 과제는 무엇인가?
로봇이 실생활에서 원활하게 쓰이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로봇이 할 수 있으려면 인간의 의 근육처럼 효율성이 높은 구동기가 있어야 하고,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도 더 발전돼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 체계에 필적할 만한 인공지능도 발전해야 한다.
현재 로봇 기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최근 몇 년 간 가속도가 붙어 획기적인 기술 개발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는 로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더 시급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개발 막바지에 있는 무인자동차(자율주행 자동차)만 하더라도 그렇다. 도로에서 같이 달리고 있는 옆 차에 운전자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 무섭지 않을까?
로봇은 짧게는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우리 삶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로봇을 받아들였다가는 사회가 겪을 혼란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로봇이 함께 살아갈 사회에 대해 고민한다고 했다. 인간이 더 행복해질까?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아직도 그 해답은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로봇도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지만 이것이 악용되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래서 발전 초기에 방향을 잘 잡고 나아가야 한다. 로봇에게 인간에게 이롭고 행복을 가져다 줄 기술이 되기 위한 열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로봇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로봇 중에서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것이 섹스 로봇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성욕은 식욕, 수면욕과 더불어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세 가지 욕구 중 하나다. 기본 욕구와 관련된 상품은 구매력이 상당히 강하다. 로봇은 기술적으로 인간의 성욕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 줄 수 있다.
물론 인간 사이의 영혼의 울림과 같은 깊은 감동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로봇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면 어느 정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래서 그 구매력과 파급력은 상상보다 더 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로봇이 야기할 문제에 대한 해답은 공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에 있다고 했는데?
기술은 언제나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 오류를 다른 기술로 잡으려 한다면 또 새로운 오류가 생겨날 것이다. 이는 오류의 무한 반복을 의미한다.
기술의 오류는 인문학이 잡아 줘야 한다.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제어할 수 있어야 기술을 오류 없이 잘 제어할 수 있다.
인간을 제어하는 해법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봇을 어떻게 만들어야 잘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인간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을 만드는 것도 인간을 위해서이고 로봇을 쓰는 것도 인간이다.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쓸지 있을지는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해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평소 인문학 공부도 하나?
특별히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다. 시중에 발간되는 책을 보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자 분들을 많이 만나서 가르침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아직은 내 인문학 수준이 낮아서 말이 잘 안 통한다고 해도, 계속 꾸준히 질문하고 의견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유명한 생명과학자들이 국제 사회에 대해 유전자 조작 기술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자고 촉구했다. 유전질환 치료로 개발된 유전자 변형술이 지능이나 신체 증강에 마구 남용되는 데 대한 우려였다. 아직 사회적 윤리적 논의가 부족하고 준비가 안돼 있다면서. 로봇공학 기술 쪽은 그럴 필요가 없나?
로봇 윤리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로봇을 어떻게 대할지, 로봇에게 어떤 일은 하게 하고 어떤 일은 못 하게 할지, 로봇의 행동 판단 기준을 어떤 윤리적 잣대로 세워 줄지, 로봇의 사회 윤리적 지위는 어느 정도로 부여해 줄지 등등 로봇 윤리에 관한 문제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이 문제들은 공동의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로 풀어나가야 한다.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공감대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로봇이 우리 곁에 들어오게 되면 사회는 극심한 혼란과 부작용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물류업을 하고 있는 장인에게 전업을 권했다고 했다. 바꾸셨나? 앞으로 사라질 직업으로 외과의사, 펀드매니저, 택시/운송 기사, 배송기사 등을 이야기했는데, 어떤 직업을 피하고 어떤 일을 찾는 게 좋은가?
아직 바꾸지 않았다. 물류업을 로봇이 대체하기까지는 다행히도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다.
비록 현재 아마존에서는 드론을 이용한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고, 얼마 전 미국 항공청(FAA)에서는 제한적인 조건 하에서 운행 시험을 허가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본격적인 운행을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머지 않아 물류업은 로봇의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 내 전망이다. 세계 미래학회에서는 앞으로 없어질 직종과 생겨날 직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곳에서도 로봇 기술의 발달이 인간 직업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어 보인다.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로봇이 인간보다 더 잘하는 고소득 서비스 업종과 로봇이 하기 쉬운 단순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처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인간은 보다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로봇은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일을 인간만큼 잘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로봇 산업의 발전을 잘 제어한다면,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뺏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하고, 인간은 보다 인간적인 일을 하게 되는 사회적 분업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로봇이 케인즈와 하이에크 사이에 서 있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자본주의는 그 동안 케인즈의 수정 자본주의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그때그때 당면했던 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며 발전해 왔다. 그런데 로봇과 함께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경제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로봇이 상당히 위험한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신자유주의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만 작동하는 원리이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인간에게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정부의 규제조차 받지 않는 자유 시장은 생산의 효율성만 추구할 테고, 기업들은 생산성 증대를 위해 로봇들을 무분별하게 도입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효율성 면에서 기계인 로봇을 이길 수가 없다. 고용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월급을 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로봇이 인간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최소한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게 된다.
이들은 당장 들어가야 할 의료비, 주거비 등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배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전보다 더 열악한 근로 조건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 인구가 감소하고 빈민층이 증가하며, 이로 인해 내수가 악화될 것이다. 로봇의 투입이 개별 기업 입장에선 당장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겠지만, 결국 사회 전체가 불황으로 빠져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대안으로 로봇을 활용한 복지 자본주의를 지지한다고 했다. 간략히 설명한다면?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 나갈 것이다. 이 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 만약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빈민이 증가하고 사회 구매력이 감소해서 내수가 악화되는 불황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교육 기회를 주고, 실업 기간 중에는 육아,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줌으로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커지고 내수가 증가함으로써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본적인 육아, 교육, 의료 걱정이 없는 사회를 함축적으로 말해서 복지 자본주의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로봇은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하고, 인간은 보다 인간적인 일을 하는 효율적인 분업 사회가 될 것이다.
이는 생산가능 인구의 증가를 뜻하며 내수 시장의 확대를 뜻한다. 로봇이 경제의 선순환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복지 자본주의가 기본 경제 체제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로봇은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다른 기술과는 달리 작용과 반작용의 시행착오를 거칠 만한 여유가 없다고 했는데.
로봇은 다른 기술과 달리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발전의 방향을 잘 잡아야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다. 어린 아이 때 처음 잘못 들인 버릇과 생각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는 잘 고쳐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로봇은 지금 막 첫 돌을 지난 어린아이와 같다. 지금 이 때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잘 잡아야 로봇을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이점(Singulrarity)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우월해질 경우의 우려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보다 더 우월해지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분들이 많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컴퓨터는 인간보다 수 십, 수 백 배 빨리 연산한다. 하지만 생각에서 중요한 것은 방식이지 속도가 아니다.
생각의 방식을 컴퓨터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알고리즘을 로봇 스스로가 진화시키지 못하게 한다면 싱귤레리티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우월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영역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력이나 경우의 수 계산 부분에서는 인공지능이 더 우월할 수 있다 .하지만 창의적인 생각이나 감성적인 생각은 인간이 보다 더 우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봇무기가 핵무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로붓 군대가 세계 패권의 핵심 전략이 된다고 했다. 왜 그런가?
전쟁을 막는 최후의 보루는 인간의 윤리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쟁을 인간이 아닌 로봇이 수행하게 된다면 윤리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안전한 벙커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듯 모니터를 보며 조이스틱으로 전쟁을 하는 순간, 전쟁은 최후까지 피하고 싶은 수단이 아닌 여차하면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로봇 군대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는 전쟁의 승패가 이미 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손자는 전쟁은 이기고 나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원리를 아는 국가들이 로봇 군대를 보유하려는 욕심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로봇을 이용한 무기 개발이 한창이다.
로봇 군대를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보유한 국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세계 패권의 핵심 전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과거 조총이나 군함과 같은 신식 무기가 모양만 바꿔 나타나는 역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든다.
-로봇무기나 군대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하면서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순 아닌가?
모순 맞다. 하지만 핵무기도 2차 세계대전 중 두 차례 사용된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 아직까지 누구도 감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국가들은 연합해서 더 이상의 핵무기 제조를 막고 있다.
핵무기는 로봇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로봇 군대의 통제 문제 있어서 좋은 벤치마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국가가 로봇 군대를 보유한다면 우리도 보유해야 한다. 그렇게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서로 쓰지 못하게 해야 주권을 올바로 지키면서도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운용의 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의 등장이 국민과 권력자 간의 사회계약서를 다시 쓰게 만들 것이라고 했는데.
국민은 국가에 노동력과 세금을 제공하는 대신, 국가는 국민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사회를 안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 사회 계약이다. 만약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게 된다면 국민과 국가 간의 사회 계약은 힘을 잃게 된다.
따라서 국민과 국가 간에 계약서를 갱신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어떤식의 계약이 성립해야 모두 윈윈할 수 있을지는 인문학자들이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이 로봇 덕분에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되면 육체적 존재에서 벗어나 정신적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예술가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술도 경쟁이나 희소성의 원리가 따르지 않을까? 대중 누구나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예술적 소양이나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적 능력이나 소양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름의 삶이 있을 것이다. 사회에는 언제나 주류와 비주류가 있게 마련이고, 앞으로는 그 주류가 예술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 것뿐이다. 주류의 삶이 아니라고 해서 행복하지 않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이오공학과 로봇공학의 결합에 의한 신인류, 호모 로보티쿠스의 탄생을 지지하나? 이러한 기술이 장애 치료나 보완보다 부유층의 수명연장이나 능력 신장 쪽으로 더 빨리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호모 로보티쿠스의 삶이 행복할지 불행할지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단지 더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 호모 로보티쿠스의 탄생을 가져올 것 같다는 예상을 한 것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그 혜택을 부유층 사람들부터 받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호모 로보티쿠스의 삶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쉽게 예상되지 않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그동안 많이 나왔다. 최근에도 많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로봇 캐릭터는?
최근에 ‘빅히어로 6’(국내에는 ‘빅 히어로’로 개봉)를 극장에서 봤는데 로봇의 순작용과 역작용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로봇의 순작용과 역작용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로봇 베이멕스의 움직임이 실제 로봇의 움직임과 상당히 비슷했는데 곳곳에서 리얼리티가 디테일하게 살아있어서 로봇공학자로서 보기에 즐거웠다.
-가장 설득력 있게 보였던 로봇 영화는? 가장 황당하게 보였던 설정은?
영화 ‘로봇 앤 프랭크’는 로봇이 우리에게 친구로 다가왔을 때 인간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그렸다. 아마도 로봇이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 모두 프랭크가 느낀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낄 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개봉했던 ‘로보캅 리메이크’ 버전은 로봇에 대한 자본의 욕망과 부작용을 그리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 어떤 로봇이 좋은 로봇인가? 착한 로봇과는 다른가?
좋은 로봇은 반려동물과 같은 로봇이라고 생각한다. 주인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친구 같은 로봇이 내가 꿈꾸는 로봇이다.
반면에, 인간의 모든 명령을 다 수행하는 착한 로봇은 좀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옆집에 사는 아무개씨가 밉다고 로봇에게 그를 한 대 때려주고 오라고 명령하더라도 로봇은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그런 경우들을 우리 사회가 잘 합의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대학을 가려고 하는 문화를 비판했다. 로봇 공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내 주변에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혹은 로봇은 전공하지 않아도 로봇을 잘 만드는 분들이 많이 있다. 로봇은 창의력과 노력으로 승부하는 분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런 사례가 많지 않다.
분명 대학은 로봇에 대한 이론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학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대학을 나온)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비겁하게 들리겠지만, 앞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훌륭한 로봇을 만들어 내는 로봇계의 스티브 잡스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로봇에 관심 있는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지금 당장에는 로봇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것 같다. 현재 로봇 과목이 정규 과목으로 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르쳐 주는 기관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팀이나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방법을 택하기를 추천한다.
로봇은 결국 한사람의 영웅이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 로봇은 팀워크의 산물이다.
많은 분들이 로봇은 '아이언 맨'에 나오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 같은 천재 과학자가 만들어 내는 기계라고 생각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로봇은 기계, 전기, 전자, 전파, 컴퓨터 같은 공학의 여러 분야와 디자인 같은 미학 분야, 심리학과 인지과학 같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잘 녹아 있어야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온다.
이 많은 분야를 한 사람이 다 완벽하게 잘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로봇은 여러 분야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내는 팀워크의 결정체다. 좋은 팀이 좋은 로봇을 만든다.
내가 속한 팀 로보티즈도 마찬가지다. 나는 단지 기계 분야를 맡고 있을 뿐, 엑튜에이터 제작, 모터 제어, 이족 보행, 사물 인식, 매니퓰레이션,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통신 등 여러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이 우리 로봇 똘망이를 함께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들의 헌신적인 열정이 나 한 사람에 의해 가려지는 것은 마음이 불편한 일이다. 로봇을 볼 때 그 뒤에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헌신적으로 다하고 있는 많은 연구원들을 봐 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팀 로보티즈가 너무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럽다. 이들과 같이 세계 최고 로봇 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결승전을 같이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한재권
-로봇 공학 박사. 현재 로보티즈 수석연구원.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저 결선 진출
-2013년 재난 구조용 휴머노이드 로봇 똘망2 설계 제작
-2012년 버지니아대 공대 공학박사 학위 취득
-2011년 자신이 제작한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가 시사주간 타임 선정 ‘2011년 올해 최고 발명품 50’에 선정됨. 로보컵 2011 어덜트 시리즈 리그, 키즈 시리즈 리그 동시 우승, 최고 휴머노이드상 수상
-2010년 미국 최초 성인 크기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 설계 및 제작
-2009년 버지니아 공대 RoMeLa 연구실 다윈(DARwin) 로봇 시리즈 중 최고 사양 다윈-HP 설계 및 제작
-2007년 리얼 트랜스포머 로봇 설계 및 제작, 유튜브 300만건 조회- 전병근 기자
입력 : 2015.04.01 09:30 | 수정 : 2015.04.03 13:44
- ▲ 한재권 박사 /이하 사진 한재권 박사 제공
“로봇은 짧게는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우리 삶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로봇을 받아들였다가는 사회가 겪을 혼란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로봇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는 로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더 시급하다.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아직 해답은 얻지 못했다. 로봇도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지만 악용되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로봇은 다른 기술과 달리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발전의 방향을 잘 잡아야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로봇은 지금 막 첫 돌을 지난 어린아이와 같다. 지금 이 때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잘 잡아야 로봇을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로봇이 인간에게 이롭고 행복을 가져다 줄 기술이 되기 위한 열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로봇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로봇을 꿈꿨다. TV 만화영화 속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로봇이 번쩍번쩍 들어 구해 주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저런 능력이라면 내 동생을 잘 돌봐 줄 수 있을 텐데...’
한 살 밑 남동생은 날 때부터 뇌성마비였다. 눈빛과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걷기는커녕 말도 못하는 한 살배기 아기 신세였다.
그런 동생 같은 장애우를 돕는 로봇을 그는 늘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로봇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심했다. ‘내가 로봇을 만들어 동생 같은 사람들을 돌봐 줘야지.’
대입 때 전공도 주저 없이 기계공학을 택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꿈꾸던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대기업 연구소로 갔다. 성실히 일했다. 성과도 좋았다. 상도 받았다. 하지만 허전했다.
진짜 꿈을 뒤로 한 삶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고심 끝에 아내에게 털어놨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까.” 아내가 답했다. “그래, 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를 다시 살게 해준 구원의 말이었다.
로봇 박사 한재권. 그가 남다른 이력과 꿈을 담은 책을 냈다. ‘로봇 정신’(월간 로봇). 지금 그는 미국에 가 있다. 오는 6월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사상 최대 규모 재난구조 로봇 대회다.
이미 결선까지 진출한 상태다. 자신이 속한 ‘로보티즈’ 팀원들과 캘리포니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현지 훈련에 땀을 흘리고 있다. 그에게 이메일 질문을 보냈다. 바쁜 중에도 꼼꼼히 답을 적어 보내왔다. 소개한다.
-제목에서 말하는 ‘로봇 정신’이란 게 뭔가?
책에서는 ‘로봇 정신’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않았다. 단지 곧 다가올 로봇과 함께할 미래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제안을 담았을 뿐이다.
로봇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함으로써 '건강한 로봇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정신을 만들어 가보자'는 취지로 쓴 책이다. 굳이 풀어서 쓰자면 ‘좋은 로봇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정신’ 쯤 되겠다.
-뇌성마비 증세를 보이는 동생 때문에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게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계기였나?
그렇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로봇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면서 장애우들을 돕는 로봇을 상상해 왔다. TV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이 우리 집에 있으면 동생을 잘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로봇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내가 로봇을 만들어야겠다 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동생은 현재 로봇 기술 덕을 보고 있나? 앞으로는 어떨 것 같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들이 기술의 혜택을 보고 있는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로봇은 장애우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꾸준히 나아가면 곧 장애우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로봇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좋은 직장을 다니다가 갑자기 로봇 공부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두렵지 않았나? 어떻게 극복했나?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로봇 연구라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더 간절했던 것 같다. 더불어 아내가 옆에서 지지해 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내에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가자고 했을 때 아내가 흔쾌히 동의하고 응원해 준 것이 아직도 고맙다.
-지금 로봇 대회 출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그동안 대회 성적은 어땠고, 이번에는 어떤 대회이고 어떻게 예상하나?
미국 버지니아공대 유학 시절에 데니스홍 교수님의 로멜라 연구실에 소속되어 로보컵이라는 세계 로봇 축구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로보컵은 로봇 자율 축구 대회다. 목표가 2050년에는 현재 사람이 기량을 겨루는 월드컵 축구 우승팀을 로봇 팀이 이기는 것이다. 지금의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권위있는 로봇 대회였다.
나는 2009년부터 데니스 홍 교수 지도 하에 팀 주장으로 출전했다. 2011년에는 ‘찰리’ 라는 로봇을 만들어 우승도 했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재난구조 로봇 대회다. 현재 이 대회 결선까지 진출해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아 우리 팀 로보티즈와 카이스트, 서울대 등 총 3개 팀이 결선에 진출한 상태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이탈리아의 최고 연구소 등 모두 25개 팀이 자국의 명예를 걸고 자웅을 가리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후회 없이 경기를 치르고 싶다.
우리 팀 로보티즈는 지금 대회가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현지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는 6월 초에 결선이 열린다. 한국 팀들에게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로봇 월드컵 같은 대회가 어떤 의미가 있나? 그 동안 로봇 발전에 가져온 성과나 기여는?
로보컵 같은 로봇 축구 대회가 얼핏 보면 재미로 하는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발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축구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빠르고 안정적인 2족 보행 기술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몸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수시로 넘어지고 일어나야 한다. 그런 거친 시합 환경 속에서도 고장이 나지 않는 신뢰성 높은 하드웨어 제작은 기본이다.
로봇이 인간만큼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다면 실생활에서도 원활하게 쓰일 수 있을 정도의 운동신경과 신뢰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매년 열리는 로보컵 경기를 통해 전 세계 로봇 과학자들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로봇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지금 열리는 재난구조 로봇 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만 해도 결선 출전자들 중에는 로보컵 우승자 출신들이 많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로보컵이 로봇 기술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로봇이라면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안다. 카네기멜런대학의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서 ‘로봇 퓨처’(레디셋고)에서 과거 생명체의 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캄브리아기와 비슷하게 현재 로봇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려 한다고 쓴 걸 봤다. 정말 그런가?
로봇을 오래 연구한 분들 중에는 그런 시각을 가진 분이 많은 것 같다. 현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사회 전체가 고령화됨에 따라 로봇을 필요로 하는 압력이 심해지고 있다. 고령화 시대의 해법으로 로봇의 등장을 얘기하고 있고, 많은 관련 프로젝트들이 가동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로봇 개발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아마도 누르바흐시 교수의 말은 현실이 될 것 같다.
-한 박사는 그 중에서도 어떤 분야가 전문인가? 왜 그 분야를 택했나?
나는 로봇의 기계 부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로봇은 기계, 전기, 전자, 컴퓨터, 디자인,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필요한 종합 학문이다. 따라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제대로 된 로봇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그 많은 분야의 한 분야인 기계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기계 분야를 택한 것은 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직접 기계 만드는 것을 보고 배워왔기 때문에 내게는 가장 친숙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것 같다.
-로봇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눠 본다면 국제사회 전체로 볼 때 각각 어떤 수준에 와있나? 한국은 어느 정도인가?
일본과 미국이 많이 앞서 가 있다. 하드웨어는 확실히 일본이 앞서고 있고, 소프트웨어는 미국의 수준이 높다.
우리는 냉정하게 말해서 이들에게는 뒤처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뛰어난 로봇 공학자들이 많이 있다. 또 로봇을 친숙하게 써줄 우수한 소비자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연구실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연구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과학자, 공학자, 학생들이 많이 있다. 나는 이분들이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현상은 현재 로봇 관련 소프트웨어의 많은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의 구글이 2013년 열린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본선에서 우승했던 일본의 샤프트(SCHAFT) 라는 회사를 인수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군용 로봇 회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보스턴 다이나믹스도 동시에 인수했다. 그런 방식으로 구글은 로봇 하드웨어에 대한 기술도 한순간에 확보하면서, 그 후 명실상부한 최고의 로봇 잠재력을 가진 회사가 됐다.
기술력을 가진 회사의 인수 합병이 이런 식으로 국경을 초월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의 기술력 비교는 어쩌면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로봇 개발이 국가 간 헤게모니 경쟁 양상을 띄고 있다고 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로봇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국가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지난 몇 년간 로봇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앞 다투어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으로 향했던 공장들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을 잡고 있다. 다시 돌아오는 공장에는 사람은 별로 없고 주로 로봇들이 일을 하게 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렸던 중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로봇은 분명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로봇은 중요하다. 이미 지금도 무인 폭격기, 무인 장갑차와 같은 로봇 무기들이 실전 배치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런 기술이 발전해 로봇 군인이 나타나게 된다면 로봇 기술을 가지지 못한 국가는 로봇 기술을 가진 국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총이나 구한말의 군함이 미래 세계에서는 로봇으로 형태만 바뀔 뿐 마찬가지의 위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특히 기술에 있어서는 남에게 뒤쳐져서 안 되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로봇은 기술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영역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로봇의 발달 동인(動因)으로 인간의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구’를 꼽았는데?
인간의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구야말로 위대한 것이다. 이 욕망이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로봇은 이 욕망의 결정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모두가 개인 비서를 집에 한 명씩 두고 산다고 가정해 보라. 자신이 해야 할 많은 잡다한 일들을 로봇이 대신해 준다고 생각해 보라. 다시 말해 게으르고 싶어하는 욕망이 모두 충족된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한다. 이 욕망이 로봇 기술을 발전시켜주는 강력한 동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인터넷 웹페이지를 저마다 만들어 사용하는 것처럼 장차 로봇도 3D 프린터와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각자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도 한다.
미래 사회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3D 프린터의 발달은 제조와 물류 면에서 인간의 삶을 바꿔 줄 기술임에는 틀림 없다. 갖고 싶은 물건을 사거나 배달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파일을 내려 받아 직접 만들어 내는 시대를 열어 줄 기술이다.
로봇은 단지 그런 물건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3D 프린터가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3D 프린터 기술은 분명 빠르게 진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로봇 개발에서 당면한 최대 과제는 무엇인가?
로봇이 실생활에서 원활하게 쓰이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로봇이 할 수 있으려면 인간의 의 근육처럼 효율성이 높은 구동기가 있어야 하고,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도 더 발전돼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 체계에 필적할 만한 인공지능도 발전해야 한다.
현재 로봇 기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최근 몇 년 간 가속도가 붙어 획기적인 기술 개발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는 로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더 시급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개발 막바지에 있는 무인자동차(자율주행 자동차)만 하더라도 그렇다. 도로에서 같이 달리고 있는 옆 차에 운전자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 무섭지 않을까?
로봇은 짧게는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우리 삶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로봇을 받아들였다가는 사회가 겪을 혼란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로봇이 함께 살아갈 사회에 대해 고민한다고 했다. 인간이 더 행복해질까?
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아직도 그 해답은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로봇도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지만 이것이 악용되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래서 발전 초기에 방향을 잘 잡고 나아가야 한다. 로봇에게 인간에게 이롭고 행복을 가져다 줄 기술이 되기 위한 열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로봇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로봇 중에서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것이 섹스 로봇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성욕은 식욕, 수면욕과 더불어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세 가지 욕구 중 하나다. 기본 욕구와 관련된 상품은 구매력이 상당히 강하다. 로봇은 기술적으로 인간의 성욕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 줄 수 있다.
물론 인간 사이의 영혼의 울림과 같은 깊은 감동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로봇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면 어느 정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래서 그 구매력과 파급력은 상상보다 더 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로봇이 야기할 문제에 대한 해답은 공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에 있다고 했는데?
기술은 언제나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 오류를 다른 기술로 잡으려 한다면 또 새로운 오류가 생겨날 것이다. 이는 오류의 무한 반복을 의미한다.
기술의 오류는 인문학이 잡아 줘야 한다.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제어할 수 있어야 기술을 오류 없이 잘 제어할 수 있다.
인간을 제어하는 해법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봇을 어떻게 만들어야 잘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인간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을 만드는 것도 인간을 위해서이고 로봇을 쓰는 것도 인간이다.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쓸지 있을지는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해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평소 인문학 공부도 하나?
특별히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다. 시중에 발간되는 책을 보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자 분들을 많이 만나서 가르침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아직은 내 인문학 수준이 낮아서 말이 잘 안 통한다고 해도, 계속 꾸준히 질문하고 의견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유명한 생명과학자들이 국제 사회에 대해 유전자 조작 기술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자고 촉구했다. 유전질환 치료로 개발된 유전자 변형술이 지능이나 신체 증강에 마구 남용되는 데 대한 우려였다. 아직 사회적 윤리적 논의가 부족하고 준비가 안돼 있다면서. 로봇공학 기술 쪽은 그럴 필요가 없나?
로봇 윤리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로봇을 어떻게 대할지, 로봇에게 어떤 일은 하게 하고 어떤 일은 못 하게 할지, 로봇의 행동 판단 기준을 어떤 윤리적 잣대로 세워 줄지, 로봇의 사회 윤리적 지위는 어느 정도로 부여해 줄지 등등 로봇 윤리에 관한 문제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이 문제들은 공동의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로 풀어나가야 한다.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공감대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로봇이 우리 곁에 들어오게 되면 사회는 극심한 혼란과 부작용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물류업을 하고 있는 장인에게 전업을 권했다고 했다. 바꾸셨나? 앞으로 사라질 직업으로 외과의사, 펀드매니저, 택시/운송 기사, 배송기사 등을 이야기했는데, 어떤 직업을 피하고 어떤 일을 찾는 게 좋은가?
아직 바꾸지 않았다. 물류업을 로봇이 대체하기까지는 다행히도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다.
비록 현재 아마존에서는 드론을 이용한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고, 얼마 전 미국 항공청(FAA)에서는 제한적인 조건 하에서 운행 시험을 허가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본격적인 운행을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머지 않아 물류업은 로봇의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 내 전망이다. 세계 미래학회에서는 앞으로 없어질 직종과 생겨날 직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곳에서도 로봇 기술의 발달이 인간 직업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어 보인다.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로봇이 인간보다 더 잘하는 고소득 서비스 업종과 로봇이 하기 쉬운 단순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처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인간은 보다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로봇은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일을 인간만큼 잘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로봇 산업의 발전을 잘 제어한다면, 로봇이 인간의 직업을 뺏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하고, 인간은 보다 인간적인 일을 하게 되는 사회적 분업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로봇이 케인즈와 하이에크 사이에 서 있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자본주의는 그 동안 케인즈의 수정 자본주의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그때그때 당면했던 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며 발전해 왔다. 그런데 로봇과 함께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경제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로봇이 상당히 위험한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신자유주의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만 작동하는 원리이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인간에게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정부의 규제조차 받지 않는 자유 시장은 생산의 효율성만 추구할 테고, 기업들은 생산성 증대를 위해 로봇들을 무분별하게 도입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효율성 면에서 기계인 로봇을 이길 수가 없다. 고용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월급을 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로봇이 인간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최소한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게 된다.
이들은 당장 들어가야 할 의료비, 주거비 등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배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전보다 더 열악한 근로 조건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 인구가 감소하고 빈민층이 증가하며, 이로 인해 내수가 악화될 것이다. 로봇의 투입이 개별 기업 입장에선 당장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겠지만, 결국 사회 전체가 불황으로 빠져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대안으로 로봇을 활용한 복지 자본주의를 지지한다고 했다. 간략히 설명한다면?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 나갈 것이다. 이 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 만약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빈민이 증가하고 사회 구매력이 감소해서 내수가 악화되는 불황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교육 기회를 주고, 실업 기간 중에는 육아,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줌으로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커지고 내수가 증가함으로써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본적인 육아, 교육, 의료 걱정이 없는 사회를 함축적으로 말해서 복지 자본주의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로봇은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하고, 인간은 보다 인간적인 일을 하는 효율적인 분업 사회가 될 것이다.
이는 생산가능 인구의 증가를 뜻하며 내수 시장의 확대를 뜻한다. 로봇이 경제의 선순환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복지 자본주의가 기본 경제 체제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로봇은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다른 기술과는 달리 작용과 반작용의 시행착오를 거칠 만한 여유가 없다고 했는데.
로봇은 다른 기술과 달리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발전의 방향을 잘 잡아야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다. 어린 아이 때 처음 잘못 들인 버릇과 생각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는 잘 고쳐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로봇은 지금 막 첫 돌을 지난 어린아이와 같다. 지금 이 때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잘 잡아야 로봇을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이점(Singulrarity)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우월해질 경우의 우려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보다 더 우월해지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분들이 많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컴퓨터는 인간보다 수 십, 수 백 배 빨리 연산한다. 하지만 생각에서 중요한 것은 방식이지 속도가 아니다.
생각의 방식을 컴퓨터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알고리즘을 로봇 스스로가 진화시키지 못하게 한다면 싱귤레리티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우월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영역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력이나 경우의 수 계산 부분에서는 인공지능이 더 우월할 수 있다 .하지만 창의적인 생각이나 감성적인 생각은 인간이 보다 더 우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봇무기가 핵무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로붓 군대가 세계 패권의 핵심 전략이 된다고 했다. 왜 그런가?
전쟁을 막는 최후의 보루는 인간의 윤리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쟁을 인간이 아닌 로봇이 수행하게 된다면 윤리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안전한 벙커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듯 모니터를 보며 조이스틱으로 전쟁을 하는 순간, 전쟁은 최후까지 피하고 싶은 수단이 아닌 여차하면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로봇 군대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는 전쟁의 승패가 이미 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손자는 전쟁은 이기고 나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원리를 아는 국가들이 로봇 군대를 보유하려는 욕심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로봇을 이용한 무기 개발이 한창이다.
로봇 군대를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보유한 국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세계 패권의 핵심 전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과거 조총이나 군함과 같은 신식 무기가 모양만 바꿔 나타나는 역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든다.
-로봇무기나 군대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하면서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순 아닌가?
모순 맞다. 하지만 핵무기도 2차 세계대전 중 두 차례 사용된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 아직까지 누구도 감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국가들은 연합해서 더 이상의 핵무기 제조를 막고 있다.
핵무기는 로봇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로봇 군대의 통제 문제 있어서 좋은 벤치마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국가가 로봇 군대를 보유한다면 우리도 보유해야 한다. 그렇게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서로 쓰지 못하게 해야 주권을 올바로 지키면서도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운용의 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의 등장이 국민과 권력자 간의 사회계약서를 다시 쓰게 만들 것이라고 했는데.
국민은 국가에 노동력과 세금을 제공하는 대신, 국가는 국민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사회를 안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 사회 계약이다. 만약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게 된다면 국민과 국가 간의 사회 계약은 힘을 잃게 된다.
따라서 국민과 국가 간에 계약서를 갱신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어떤식의 계약이 성립해야 모두 윈윈할 수 있을지는 인문학자들이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이 로봇 덕분에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되면 육체적 존재에서 벗어나 정신적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예술가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술도 경쟁이나 희소성의 원리가 따르지 않을까? 대중 누구나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예술적 소양이나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적 능력이나 소양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름의 삶이 있을 것이다. 사회에는 언제나 주류와 비주류가 있게 마련이고, 앞으로는 그 주류가 예술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 것뿐이다. 주류의 삶이 아니라고 해서 행복하지 않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이오공학과 로봇공학의 결합에 의한 신인류, 호모 로보티쿠스의 탄생을 지지하나? 이러한 기술이 장애 치료나 보완보다 부유층의 수명연장이나 능력 신장 쪽으로 더 빨리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호모 로보티쿠스의 삶이 행복할지 불행할지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단지 더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 호모 로보티쿠스의 탄생을 가져올 것 같다는 예상을 한 것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그 혜택을 부유층 사람들부터 받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호모 로보티쿠스의 삶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쉽게 예상되지 않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그동안 많이 나왔다. 최근에도 많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로봇 캐릭터는?
최근에 ‘빅히어로 6’(국내에는 ‘빅 히어로’로 개봉)를 극장에서 봤는데 로봇의 순작용과 역작용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로봇의 순작용과 역작용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로봇 베이멕스의 움직임이 실제 로봇의 움직임과 상당히 비슷했는데 곳곳에서 리얼리티가 디테일하게 살아있어서 로봇공학자로서 보기에 즐거웠다.
-가장 설득력 있게 보였던 로봇 영화는? 가장 황당하게 보였던 설정은?
영화 ‘로봇 앤 프랭크’는 로봇이 우리에게 친구로 다가왔을 때 인간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그렸다. 아마도 로봇이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 모두 프랭크가 느낀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낄 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개봉했던 ‘로보캅 리메이크’ 버전은 로봇에 대한 자본의 욕망과 부작용을 그리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 어떤 로봇이 좋은 로봇인가? 착한 로봇과는 다른가?
좋은 로봇은 반려동물과 같은 로봇이라고 생각한다. 주인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친구 같은 로봇이 내가 꿈꾸는 로봇이다.
반면에, 인간의 모든 명령을 다 수행하는 착한 로봇은 좀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옆집에 사는 아무개씨가 밉다고 로봇에게 그를 한 대 때려주고 오라고 명령하더라도 로봇은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그런 경우들을 우리 사회가 잘 합의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대학을 가려고 하는 문화를 비판했다. 로봇 공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내 주변에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혹은 로봇은 전공하지 않아도 로봇을 잘 만드는 분들이 많이 있다. 로봇은 창의력과 노력으로 승부하는 분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런 사례가 많지 않다.
분명 대학은 로봇에 대한 이론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학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대학을 나온)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비겁하게 들리겠지만, 앞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훌륭한 로봇을 만들어 내는 로봇계의 스티브 잡스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로봇에 관심 있는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지금 당장에는 로봇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것 같다. 현재 로봇 과목이 정규 과목으로 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르쳐 주는 기관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팀이나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방법을 택하기를 추천한다.
로봇은 결국 한사람의 영웅이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 로봇은 팀워크의 산물이다.
많은 분들이 로봇은 '아이언 맨'에 나오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 같은 천재 과학자가 만들어 내는 기계라고 생각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로봇은 기계, 전기, 전자, 전파, 컴퓨터 같은 공학의 여러 분야와 디자인 같은 미학 분야, 심리학과 인지과학 같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잘 녹아 있어야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온다.
이 많은 분야를 한 사람이 다 완벽하게 잘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로봇은 여러 분야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내는 팀워크의 결정체다. 좋은 팀이 좋은 로봇을 만든다.
내가 속한 팀 로보티즈도 마찬가지다. 나는 단지 기계 분야를 맡고 있을 뿐, 엑튜에이터 제작, 모터 제어, 이족 보행, 사물 인식, 매니퓰레이션,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통신 등 여러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이 우리 로봇 똘망이를 함께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들의 헌신적인 열정이 나 한 사람에 의해 가려지는 것은 마음이 불편한 일이다. 로봇을 볼 때 그 뒤에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헌신적으로 다하고 있는 많은 연구원들을 봐 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팀 로보티즈가 너무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럽다. 이들과 같이 세계 최고 로봇 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결승전을 같이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한재권
-로봇 공학 박사. 현재 로보티즈 수석연구원.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저 결선 진출
-2013년 재난 구조용 휴머노이드 로봇 똘망2 설계 제작
-2012년 버지니아대 공대 공학박사 학위 취득
-2011년 자신이 제작한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가 시사주간 타임 선정 ‘2011년 올해 최고 발명품 50’에 선정됨. 로보컵 2011 어덜트 시리즈 리그, 키즈 시리즈 리그 동시 우승, 최고 휴머노이드상 수상
-2010년 미국 최초 성인 크기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 설계 및 제작
-2009년 버지니아 공대 RoMeLa 연구실 다윈(DARwin) 로봇 시리즈 중 최고 사양 다윈-HP 설계 및 제작
-2007년 리얼 트랜스포머 로봇 설계 및 제작, 유튜브 300만건 조회 - 전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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