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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야당이 다음 대선 이기기 어려울 것”

화이트보스 2015. 4. 10. 16:17

윤여준, “야당이 다음 대선 이기기 어려울 것”

尹汝寯
⊙ 76세. 단국대 정치학과 졸업. 前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자.
⊙ 김영삼 정부 대통령 공보수석, 환경부 장관, 한나라당 국회의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국민통합추진위원장, 새정치추진위원회(안철수 의원 신당 창당
준비기구) 의장 역임. 現 정치소비자 협동조합 울림 이사장.
⊙ 저서: 《대통령의 자격》 《누가 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

임재민
⊙ 40세. 이화여대 교육학과 졸업.
⊙ MBC 공채MC 출신으로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출연 중.

글 | 임재민 방송인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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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6일은 무소속이던 안철수(安哲秀) 의원이 제1야당에 몸담은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작년 3월 2일 안 의원은 당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합당을 선언하고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 공동대표직에 올랐다. 안 의원은 “호랑이굴에 들어가 보니 호랑이가 없더라”며 핑크빛 미래를 꿈꿨다. 현실 정치는 그러나 그에게 ‘춘몽(春夢)’을 허용치 않았다.
 
  안 의원은 민주당과 통합 후 안철수식 새 정치의 ‘마지막 보루(堡壘)’처럼 여긴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고, 6·4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에서도 자기 세력인 윤장현(尹壯鉉) 광주시장 전략 공천을 강행해 당내 잡음에 휘말렸다.
 
  7·30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는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정치인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서울 동작을 후보를 전략 공천하면서 허동준(許同準) 전 지역위원장과 486 의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허 전 위원장을 배제한 채 광주 광산을에 출마하려던 기동민(奇東旻)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동작을에 전략공천하자 “486을 다 죽이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권은희(權垠希)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광주 광산을 공천 때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천정배 죽이기’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공천 과정에서 측근을 챙기지 못해 떠나보내기도 했다. 공천을 둘러싼 당내 잡음은 재보선 완패라는 결말을 낳았다.
 
  결국 안 의원은 대표임기(1년)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이후 안 의원의 인기는 급락했다. 야권의 차기 대권 주자 가운데 확고한 선두였던 안 의원의 지지율은 현재(2015년 3월) 4~7%까지 떨어진 상태다.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안 의원의 ‘호랑이 굴’ 실험은 실패한 셈이다. 과연 안 의원에게 미래가 있을까.
 
  한때 ‘안철수의 멘토’로 불렸던 윤여준(尹汝寯)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윤 전 장관은 안 의원을 두 번 도왔고 두 번 떠난 인물이다. 누구보다 안 의원의 장단점을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그간 대외 활동을 자제해 온 윤 전 장관을 지난 3월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근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안철수, 사실 정치할 성격은 아니다”
 
윤여준 전 장관은 안철수 의원의 민주당과 통합 결정에 크게 실망한 뒤 두 번째 결별을 선택했다. 2014년 3월 19일 회의에 참석한 안 의원과 윤 전 장관.
  —작년 3월 이후로 안 의원과 연락한 적이 있습니까?(그는 ‘안철수 신당’ 창당을 진두지휘하다 작년 3월 안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결별했다.)
 
  “연락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따로 통화하고 그럽니까.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을 때, 만나게 되는 계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안 의원이 장인상을 당했을 때 제가 문상을 가서 만난 것이나, 그 이후 안 의원이 전화로 ‘문상 와줘서 고맙다. 저녁식사 하자’고 해서 밥 먹고 하는, 그런 것이죠.”
 
  —안 의원과 오랜만에 식사한 것일 텐데요. 이야기는 많이 나눴나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안 의원이.”
 
  —그럼 주로 장관님이 이야기하나요.
 
  “둘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을 하는 편이지요.”
 
  —요즘 안 의원이 스킨십 강화를 위해 당내 의원, 언론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는데, 좀 변한 게 있던가요.
 
  “그 사람이 사람 많이 잃었어요. 싸움하려면 한참 (더) 해야 할 거예요. 제가 안 의원과 학교(서울대 의대)를 같이 다녔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안 의원이 학교 다닐 때도 혼자였대요. 컴퓨터 보안 쪽 일을 하면서도 폭넓은 사회적 교류를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늘 그렇게 살던 사람 같은데 그래도 짧은 기간에 많이 겪었으니까 깨달은 게 많겠지요.”
 
  —‘안철수 현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까.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정치사에서 개인의 이름 뒤에 ‘현상’이 붙은 건 안철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던 것이지요. 이런 엄청난 에너지를 한국 정치 업그레이드에 썼으면 좋겠다는 국민의 바람이 있었는데 이런 기대를 실체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현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된 것이죠.”
 
  —이제는 거의 소멸했는데 안 의원의 재기 가능성은 어떻게 봅니까.
 
  “저는 공개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본인에게 달렸다. 정치를 안 해본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와서 헛발질할 때도 있는 것이니까. 한번은 국민이 이해해 줄 것이다. 때문에 국민이 볼 때 다시 자신을 지지할 만한 말과 행동을 하면 한번은 기회를 더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모든 게 본인에게 달린 것이죠.”
 
  —잘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정치할 성격은 아닙니다. 정치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중해집니다. 당장 결정해야 하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상황 판단이 유리해진다고 기대하지요. 그런데 정치가 유동적이지 않습니까. 기다리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결국 다 놓치게 되지요. 이런 점은 이회창 총재도 비슷했습니다.”
 
  —지난 2011년 ‘청춘콘서트’를 기획하면서 안 의원과 인연을 맺었는데요. 당시 안 의원이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가려 했을 때 선거 준비를 총괄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때는 안 의원이 정치할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던 건가요?
 
  “청춘콘서트 후 앞으로 행보와 관련해 안 의원과 난상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때 안 의원이 ‘정치할 생각은 없지만 한국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이바지할 수 있다면 헌신하겠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때가 2011년 8월 말이었습니다. 저는 말렸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요. 한 이틀 말렸는데 굽히지 않더군요. 어떻게 합니까. 이왕 선거에 나가면 당선돼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당선 가능성을 짚어보니 단기전이라 해볼 만하더군요. 그래서 안 의원에게 ‘여야 거대 정당의 하부조직이 확장성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뿌리 깊은 조직인 만큼 절대 가볍게 보면 안 된다. 피 터지는 싸움을 해야 한다. 자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안 의원이 ‘자신 있다. 꼭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럼 빨리 결심을 알려라. 그게 국민, 시민에 대한 예의다. 그럼 곧바로 선거 준비하겠다’고 했지요. 안 의원 주변에 선거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결정을 뒤집은 것이군요.
 
  “출마한다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 ‘가족들의 반대가 완강해서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반대할 줄 몰랐습니까?’라고 했더니 알았는데 예상보다 심하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의절하자고 하고, 외국에 유학 중인 딸도 매일 전화를 걸어서 울고불고하고요. 그래서 제가 측근 회의 자리에서 ‘안 의원은 출마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제게 ‘왜 단정하느냐. 가족 설득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못 나오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그러기에 ‘내가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바로는 저렇게 출마 결정을 미루는 사람치고 선거에 나오는 사람 본 적 없다. 장담한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이야기가 맞았지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검토하던 안 의원은 2011년 9월 6일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1년 뒤 안 의원은 2012년 7월 23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출마와 관련 “(시장 출마해 볼까라는) 고민을 10% 정도 한 것 같다”고 했다.
 
 
  안 의원 신당 창당 작업에 참여한 이유
 
윤 전 장관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아서 지난 대선 때 지지선언을 했다고 밝혔다. 2012년 9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담쟁이캠프 1차 회의에 참석한 윤 전 장관.
  윤 전 장관과 안 의원은 2011년 9월 6일 안 의원의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이후 결별했다. 언론과 정치권은 안 의원의 멘토 300명 발언이 당시 두 사람이 갈라선 가장 큰 이유로 본다. 지난 2011년 9월 4일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하던 안 의원은 윤 전 장관에 대해 “윤 전 장관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는 김제동, 김여진씨 등 300명쯤 된다”고 깎아내린 바 있다.
 
  —멘토 300명 발언에 언짢았던 것은 사실이죠.
 
  “제가 그 발언 때문에 토라져서 안 의원을 떠났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제가 《대통령의 자격》(2011년 12월 5일 발간)이라는 책을 냈잖아요. 원래 원고를 9월까지 주고 10월 발간 예정이었는데 안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한 줄도 못 쓰고 있었지요. 그런데 안 의원이 불출마 선언하고 학교로 갔잖아요. 그래서 저는 책 내는 데 매달렸죠. 더는 만날 일도 없고, 저희가 친구 간도 아니지 않습니까. 세대 차도 많이 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게 된 것이죠. 멘토 발언 때문에 틀어진 것은 전혀 아닙니다.”
 
  —멘토 발언에 불만은 전혀 없었습니까.
 
  “발언 이후 안 의원에게 문자가 왔어요. 장관님을 보호하려고 한 발언이었는데 이상하게 됐다고, 죄송하다고. 당시 제가 안 의원에게 서울시장 나가라고 부추긴 사람으로 알려져서 굉장히 공격당하고 있었거든요. 안 의원은 그게 부담이었나 봐요. 저한테 미안하니까. 그래서 ‘서울시장 선거 출마는 윤 전 장관 생각이 아니다. 내 생각이다. 내가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멘토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멘토는 300명이다’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안 의원이 계산해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모욕을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표현력이 부족하고 서툰 거죠.”
 
  윤 전 장관과 안 의원은 윤 전 장관이 2014년 1월 안철수 신당창당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 5번째 공동위원장으로 합류하며 재결합한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안 의원의 불출마로 결별한 지 2년3개월 만에 다시 손을 맞잡은 것이다. 안 의원은 윤 전 장관을 영입하기 위해 ‘십고초려’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3개월 동안 안 의원에 대해 쓴소리도 많이 했습니다. 18대 대선 때는 문재인 의원을 돕기도 했고요. 왜 안 의원의 영입제의를 받아들인 것입니까. ‘십고초려’에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까.
 
  “십고초려는 언론에서 하는 말이고요. 제게는 이태규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이태규를 소개할 때 제 아우와 아들의 중간쯤이라고 소개하거든요. 이 친구가 제게 ‘장관님이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라고 부탁하더군요. 이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저는 이태규가 ‘이것을 같이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면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일이 아니면 다 합니다. 그 친구도 ‘내가 뭘 하는 데 힘 좀 보태’라고 하면 직장을 그만두고서라도 돕거든요. 이태규가 간곡하게 말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태규씨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인가요.
 
  “정말 정신 똑바로 박힌 유능한 친구입니다. 지금껏 같이 일한 사람 중 그보다 우수하다 생각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성격이 좀 까칠하긴 하지만요(웃음). 윗사람한테도 할 말 다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거 안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 친구가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정말 좋더라고요. 저는 회의할 때 아랫사람한테 ‘왜 안 대드느냐. 내 말이 뭐가 다 맞느냐’고 뭐라 하거든요.”
 
  이태규씨는 윤 전 장관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 출신으로 이명박 캠프 기획단장,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등을 지냈다. 2012년 안철수 대선 캠프에 합류해 미래기획실장을 맡아 단일화 협상 등을 도왔다. 이후에는 안철수 신당 창당 준비팀(새정치추진위원회) 팀장을 맡았다.
 
 
  “안철수 연기력 많이 늘었다” 발언의 진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두 번째 결합의 결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안 의원이 민주당과의 통합신당 창당을 결정하면서 결별했는데요. 당시 안 의원에게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고 쓴소리를 했다가 논란이 되니까 하루 만에 농담이라고 해명했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기자실에서 기자 몇 분과 떠들다가 나온 이야기입니다. 기자 몇 분이 제게 ‘안 의원이 언제부터 민주당과 합당을 추진했는지 아느냐. 장관님에게 합류를 요청할 때부터였다’고 취재한 것을 이야기해 주더군요. 사실이라면 제가 속은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막 웃으면서 ‘그동안 다 연기였던 거야? 그러면 아카데미상 감이네. 이자(안철수 의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네’라고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이것을 기사로 썼더군요.”
 
  —기자가 농담과 진담을 구별 못 했을까요. 발언을 유일하게 보도한 매체가 친정인 《경향신문》이던데요. 잘 아는 후배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한 것 아닌가요.
 
  “그 자리에 《경향신문》 기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있었지요. 그게 진담이었다면 다른 기자들은 왜 기사화하지 않았을까요. 농담한 거니까 안 쓴 것이지요. 농담이었지만 보도에 나온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윤 전 장관은 1966년 1월 5일 6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동아일보》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월간 《신동아》에서 3년6개월 일한 그를 회사가 사회부로 발령하자 “동기들이 이미 거쳐간 부서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할 순 없다”며 1969년 9월 《경향신문》 정치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8년 가까이 야당을 출입하며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이철승(李哲承) 등 차세대 정치 유망주들을 취재했다.
 
  —《경향신문》과 단독 인터뷰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네요.
 
  “단독 인터뷰였다면 제가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그렇게 말을 했겠습니까. 그렇게 하진 않지요.”
 
  《경향신문》은 2014년 3월 8일자 1면에 〈윤여준 “안철수 이자가 얼마나 거짓말했는지 알아야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중간 제목은 ‘윤 전 장관 《경향신문》 인터뷰서 격정 토로’였다.
 
  기사 내용을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윤 의장은 7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이자(안철수 의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고 원색적으로 얘기했다. 가슴에 쌓인 울화가 많은 듯했다.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제1 정통 야당을 한번에 접수하려는 환상에 빠져”
 
  —민주당과의 합당 발표 이후 안 의원에게 해준 말은 없습니까.
 
  “본인 생각으로는 민주당이라는 거대한 정통 야당을 자기가 단숨에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저기 가면 당신 생애에 겪어보지 못한 많은 일을 겪게 될 테니 독한 마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 충고를 듣고 안 의원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흐흐흐!”
 
  —충고를 안 들었군요.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안 의원이 한 일이라고는 당명 정한 것밖에는 기억이 없네요.
 
  “새 정치의 개념을 확립했어야 했는데 그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당을 만들고 대표가 되니 어림없었던 것이죠.”
 
  —호랑이굴인지 모르고 들어간 모양인데요. 당시 안 의원이 김한길 대표에게 속아서 합당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김 대표가 안 의원에게 뭐라고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속였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안 의원이 합당을 앞두고 여러 가지 환상적인 기대를 가졌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안 의원이 안쓰럽지는 않습니까.
 
  “안쓰럽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다 예상했던 일이었고, 충고도 했던 걸요.”
 
 
  박근혜 캠프 아닌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까닭
 
윤 전 장관과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호흡을 맞춘 것은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었던 2004년 17대 총선이었다. 2004년 4월 16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과 윤 전 장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법연수원 동기(12회)인 문재인(文在寅)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은 야권의 대표적인 대권 라이벌이다. 서로 “우리는 협력만 하는 사이”라고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드물다. 정치권의 대표적인 전략가로 통하는 윤 전 장관은 두 인물을 어떻게 볼까.
 
  —문재인 대표는 어떤 인물입니까.
 
  “저도 문 대표를 대선 직전에 처음 봤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보다 준비는 안 돼 있었지만, 사람이 포용적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포용성이 중요하지요.”
 
  민주당과의 합당 문제로 안 의원과 또다시 결별한 윤 전 장관은 지난 18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그는 캠프 국민통합추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문 대표가 제게 도와달라며 만나자고 했습니다. 코리아나호텔 일식집에서 조찬을 했는데 초면임에도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노무현의 실패를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언짢아하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듣더라고요. 제 말이 끝나니까 ‘윤 장관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사실 저는 대통령 할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별안간 불려 나왔는데 청와대 생활을 해보니까 완벽한 준비를 하고 대통령을 해도 국가 통치하는 게 정말 장난 아닙디다. 아무 준비 없이 별안간 불려 나온 제가 대통령이 돼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나갈까를 고민하면 밤잠을 설칩니다. 그러니 장관님이 좀 도와주세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당선된 날 봅시다’라고 하니 이 양반이 ‘그간 장관님 쓰신 글을 보니 평소 나라 걱정 많이 하시던데 왜 못 도와준다는 겁니까?’라고 말하는데 목소리에서 조금 언짢은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생각해 보겠습니다’하고 헤어졌는데 그 이후로 사람 하나가 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겁니다. ‘왜 그러시느냐’고 하니 문 대표가 승낙을 받아오라고 했다더군요. 이틀을 계속 쫓아다니니까 저도 승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근혜 캠프에서도 제의가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박근혜 캠프에서도 제의가 있었어요. 문 대표가 제의하기 전에요. 제가 김종인 장관과 평소에 가까이 지내잖아요. 그 양반이 탁월한 분이거든요. 그 양반이 하루는 같이 가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자고 해요. 그래서 ‘저는 안 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제가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 머릿속에는 민주주의가 없어요.”
 
  —김종인 전 장관이 그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당신 박근혜 대표 만나본 적 없잖아. 내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까 잘 알아. 후보 중 가장 나은 사람이니 내 말 듣고 가자’고 하는데 제가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박근혜란 사람을 처음 겪어본 게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었던 2004년 17대 총선이었습니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본부장직을 부탁해서 맡았습니다. 당시 제가 부산 지역구로 내려간 김형오 사무총장을 대신해 서울의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를 이끌면서 접한 박근혜 대통령은 초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집중력, 지구력, 헌신성이 엄청났지요. 그런데 이분의 성격이 개방적이지 않고 수직적이라 대통령이 되면 시대하고 충돌할 것으로 봤습니다. 청와대에서 엄청난 가족적 비극을 겪으면서 하루아침에 낭떠러지로 떨어졌는데 이것을 본인의 정신력으로 극복한 사람이에요. 이 과정에서 믿을 건 나밖에 없다며 갑옷을 겹겹이 입었을 터인데, 대중 정치인이 됐으면 갑옷을 벗어 던져야 하거든요. (대통령이 된 지금도) 갑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으니까 놀랄 만큼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의 주제는 다시 문 대표로 돌아왔다.
 
  —문 대표가 열린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의 국가관과 안보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잖습니까.
 
  “제가 문 대표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북한의 존재에 대한 본인의 관점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나는 북한을 어떻게 본다, 이렇게 본다,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야당 인사는 대부분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지 않습니까.
 
  “제가 야당 인사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들이 국민 상당수의 체험적 역사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사실 ‘공산주의가 이론적으로 좋고 나쁘고’가 문제가 아니거든요. 6·25전쟁을 체험한 역사가 있는데 이것을 논리를 들이대서 아니라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진보라 한다면 북한 체제를 찬양할 수 없습니다. 북한 체제를 찬양한다면 그것은 진보의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지요. 제가 2012년 대선캠프 참여할 때부터 문 대표에게 ‘박정희 묘소 참배해야 한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맡겨달라’는 말만 하고 끝내 안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한 걸 보니 본인도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어쨌든 문 대표가 북한에 대해 확실히 밝힐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문재인 VS. 박원순의 승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잘 아시는지요.
 
  “알긴 알죠. 아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 대표와 박 시장이 새정치민주연합 대선 후보 경선에서 붙으면 누가 이길까가 정치권 최고 관심사인데요.
 
  “지금 시점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문 대표를 선택할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는데 아직 2년이나 남았으니까요.”
 
  —박 시장도 만만치 않은 인물 아닌가요.
 
  “물론이죠. 박 시장은 시민운동을 한 분이니까 기가 세지요. 반면 문 대표는 기가 센 사람은 아니고. 그래도 문 대표가 센 기를 흡수해 버리면 그만이죠. 부딪치지 말고.”
 
  —그래도 박 시장이 이번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를 보고 희망을 좀 가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심(黨心)은 박지원(朴智元) 의원에게 쏠렸지 않습니까.
 
  “호남은 친노 정서가 아니죠. 박 시장도 그 점을 노리는 것 같긴 합니다. 서울시에 호남 출신 운동권 인사들이 많이 들어왔다지요? 그런데 이런 결정은 박 시장이 성급했다고 봅니다.”
 
  —말씀하셨듯이 호남은 친노 정서가 아닌데, 친노라는 타이틀이 문 대표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요.
 
  “저번 대선은 친노의 자만 때문에 졌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많은 사람 사이에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생겼습니다. 노무현에 대한 안쓰러움, 미안함인데 친노란 사람들이 이를 자신의 지지율로 해석했다고 봅니다. 그런 게 전혀 아닌데 아전인수로 해석한 것이죠. 캠프에 가서 느꼈습니다. ‘아, 이 선거 이미 끝났구나.’ 선거 준비가 엉터리더라고요.”
 
  —어느 정도로 엉터리였습니까.
 
  “문 대표와 안 의원이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을 하는데 당시 민주당 쪽에서는 안 의원을 겪어본 사람이 없었어요. 혹시나 제게 안 의원을 상대하려면 뭘 조심해야 하나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 나름 충고를 준비했는데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냥 넘어갔어요. 그런데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기에 제가 선거대책위원장 한 분을 찾아가서 ‘안 의원을 승패 구도로 몰고 가면 나자빠진다. 안철수라는 사람이 문재인이라는 사람한테 양보하도록 잘 다독여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군요. 이틀 후인가요. 안 의원이 후보 사퇴를 발표했어요. 당시 문재인 캠프는 완전 공황상태였지요.”
 
  차기 대선이 예정된 2017년, 우리는 과연 ‘대통령 후보 반기문’을 만나게 될까. 많은 이에게 궁금증을 낳게 하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엇갈린다. 윤 전 장관은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윤 전 장관(충남 논산)과 반 총장(충북 음성)은 충청도 출신으로 사이가 가까운 편이다. 두 사람은 ‘백소회’ 멤버이기도 했다. 백소회는 충청 출신 명사들의 모임이다.
 
 
  내가 아는 潘基文
 
  —반 총장과는 잘 아시죠.
 
  “개인적으로 잘 알고 친합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5월 전격 방한합니다. 우리나라에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3시간 정도이긴 한데요. 어쨌든 주춤했던 반기문 대망론이 또다시 거세질 것 같은데요. 반 총장은 어떤 인물입니까.
 
  “사무총장이 영어로 ‘세크러터리 제너럴(Secretary General)’입니다. 반 총장은 UN Secretary General로 불리는데 영국의 한 언론에서 반 총장을 제너럴(General·장군)보다는 세크러터리(Secretary·비서)에 가깝다고 표현한 것을 보고 참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 총장 성격이 그렇거든요. 온화하면서도 소심하고 조심하고. 반 총장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한민국 직업외교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답합니다.”
 
  —전형적인 외교관 스타일이란 뜻입니까.
 
  “직업외교관이 갖는 일반적인 속성이 있어요. 미국 백악관 관계자는 직업외교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직업외교관은 자신의 임기만 잘 채우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라고.”
 
  —반 총장에 대한 평가가 박하네요.
 
  “한국 국민이 UN 사무총장에 대한 오해가 있어요. 지금 우리를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라고 내세우는데 우리나라가 UN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UN이 지켜준 나라고, 그로 인해 탄생한 나라니까요. 그런데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라고 내세우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대개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이죠. 전임 사무총장도 가나의 코피 아난(Kofi Annan)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나를 선진국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UN 사무총장이 세계 대통령이라는 인식은 오해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국제사회에서는 웃습니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얘기인가요.
 
  “권력의지가 있다고 이야기하긴 그렇죠. 그런데 모르겠어요. 언론 보도를 보면 초기에는 ‘뭐 내가 무슨 대통령이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근래에는 하도 들리니까 ‘그래?’ 하는 정도인 것 같아요. 본인 결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오면 짧은 기간에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하는데 그걸 뚫고 하려 할까요. 저는 반 총장이 어떤 이유로 (대선에) 나오는 게 쉽진 않다고 봅니다.”
 
  윤 전 장관은 어떤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비리 같은 것은 아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3인방에 사표 받았어야”
 
윤 전 장관은 TV조선 생방송 토크쇼 〈윤여준의 정치 차차차〉를 진행하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은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건에 등장하는 청와대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묵묵히 고생하며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했다. 이번에 대대적으로 뒤집는 바람에 ‘(비리가) 진짜 없구나’라는 것을 저도 확인했다”고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이와 관련 윤 전 장관의 이야기다.
 
  “대통령이 되면 총무비서실, 제1부속실, 제2부속실 일을 심복에게 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위 3인방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 영역을 넘어 큰 힘을 사용한 것에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믿는 것은 나무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능력에 맞는 책임을 줘야 하거든요. 그렇지 못해서 사달이 난 것 아닙니까. 엄격히 책임을 물었어야 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도, 실제 전횡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일단 본인들 때문에 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을 준 것은 사실 아닙니까. 이것도 보통 큰 잘못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처음부터 날 위해서 몇십 년간 보필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방어벽을 쳤는데 그건 큰 실수입니다. 법적으로 죄가 없더라도 정치적으로 지탄받은 일이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복귀시키더라도 우선 사표는 받았어야 합니다.”
 
  —김기춘(金淇春) 비서실장 사표는 받아줬는데요.
 
  “한때 김기춘씨가 신문에 부통령이라고 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청와대 관계자에게 ‘신문에 김 실장이 부통령이라고 보도됐던데 그렇게 세?’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픽하고 웃습디다. 언론이 아무것도 모르고 쓴 것이라고. 그래서 실상이 뭐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장관님. 실상은요 대통령이 김 실장을 의논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놀라서 아니 뭐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김 실장이 억울하게 욕먹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병기(李丙琪) 신임 비서실장 임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요.
 
  “본인 입장에서는 국정원장 하는 게 나았을 겁니다. 이병기씨는 신사고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 쇄신이잖아요. 이병기 카드는 대통령의 쇄신 의지가 실렸다고 보기 어렵죠.”
 
  —김 실장보다는 소통을 잘 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사람이고 맘이 여린 사람이죠. 이런 점에서 김기춘씨하고는 다르죠. 대통령이 분명히 덕을 보긴 볼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 차원의 소통은 그런 게 아닙니다. 대통령의 소통은 집권당이 대신하는 겁니다. 집권당이 가진 전국 조직을 이용해서요. 많은 국회의원이 있잖아요. 당협위원장들도 있고. 대통령이 당과 소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나면 집권당을 무력화시키죠. 다른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윤 전 장관은 2002년 이회창 대선 캠프에서 이 신임 실장과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윤 전 장관은 전략기획팀에서, 이 실장은 정무특보로 활약했다.
 
  —최근 대통령이 직접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대통령이 국민하고 어떻게 직접 소통합니까. 여당 지도부와 수시로 교감하면서 집권당을 통해 소통해야 합니다. 권한을 주면 자기 힘이 약해진다는 걱정 때문에 여당 지도부를 멀리하는데 대통령은 힘을 나눌수록 더 세지는 법입니다.”
 
  —야당과의 관계도 좋아야 하지 않습니까.
 
  “당연하지요. 제1야당에 속한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자고 하면 최단시일 내에 만나야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만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를 무시하는 거예요. 너무 쓴소리만 하나요. 제가 쓴소리를 하도 해 찍혀서(웃음).”
 
  —밉보여서 피해본 적이 있습니까.
 
  “농담이죠. 전혀 없습니다. 제가 돈을 달라 합니까. 벼슬을 달라 합니까. 자유로우니까 말을 할 수 있지요.”
 
 
  “책사, 전략가는 과대 포장”
 
  윤 전 장관은 언론에서 ‘책사’ ‘전략가’로 통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책사, 전략가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불릴 만큼 뛰어난 인물이 아닌데다가 그 단어가 뭔가 어두운 지혜를 담은 사람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게 그렇게 듣기 싫습니까.
 
  “저를 과대 포장한 이야기라 그럽니다. 책사, 전략가에서 나중에는 ‘범보수의 제갈량’ ‘대한민국의 장자방’이라고까지 표현하는데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데 거기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분들이 살아 있었으면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겁니다.”
 
  —그럴 만하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1998년도에 이회창 총재를 도울 때였습니다. 제가 정치부 정당 출입을 해봐서 정치부 기자 생활을 잘 알거든요. 마감시간이 다가오는데 기사를 오른쪽으로 쓸지 왼쪽으로 쓸지 결정을 못 하면 취재기자는 부장한테 깨지고 부장은 국장한테 깨집니다. 그러면 저희는 기자들에게 인심을 잃지요. 기사가 이상하게 나가면 국민도 혼란스러워지고요. 그래서 제가 ‘디렉션(direction·방향)을 주는 백(back) 브리핑을 하자’고 이 총재에게 건의했습니다. 총재가 ‘그렇게 고도의 정치적 백 브리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에 누가 있느냐’고 묻기에 솔직히 최병렬 의원과 저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총재가 ‘최 의원한테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하느냐’며 제게 하라고 했지요. 그래서 제가 백 브리핑을 했습니다. 그런데 백 브리핑한 대로 이 총재가 움직이니까 기자들 사이에 ‘저놈 머리에서 다 나온다.’ 이렇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기자들이 그렇게 쓴 게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지금은 지략이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저는 여의도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세계사에 남은 뛰어난 책사들은 우선 대사(大事)를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1997, 2002, 2012년 대선 패배의 아픈 추억이 있네요.
 
  “아, 하늘이 제게 ‘이제 (정치는) 네 일이 아니야’라고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해석했어요.”
 
  —전략이나 충고를 따르지 않아 패배한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제 이야기를 듣게 하지 못한 것도 제 책임이지요.”
 
  —성공 못 해 안타까웠겠습니다.
 
  “그렇진 않아요. 아버님이 제게 《채근담(菜根譚)》에 나온 풍래소죽(風來疎竹)에 풍과이죽불류성(風過而竹不留聲)하고 안도한담(雁度寒潭)에 안거이담불류영(雁去而潭不留影)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바람이 성긴 대나무에 불어와 소리를 내다가도, 바람이 지나가면 대는 그 소리를 더 이상 내지 않고, 기러기가 쓸쓸한 못을 지나면서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기러기가 지나가고 나면 못에는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는 뜻인데 덕이 높은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마음을 움직여 이에 대응하지만, 그 일이 끝나면 마음을 비워 그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채근담》은 중국 명나라 말 유학자 홍응명(洪應明)이 쓴 책으로 유교 사상을 중심으로 노장(老莊)철학과 선(禪) 사상을 접합시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길을 제시하는 주옥같은 350구절을 담고 있다.
 
  윤 전 장관은 손사래 치지만 이름 뒤에 그만큼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정치인은 없다. 아직도 정권과 정책에 대한 그의 한마디에 언론과 정가가 주목하는 것도 윤 전 장관의 전략적 능력을 인정해서일 것이다.
 
 
  차기 대선 예상
 
  마지막으로 3년 남은 차기 대선에 대해 물었다. 윤 전 장관의 답변은 명쾌했다.
 
  “지금 여당 쪽에 마땅한 후보가 없어서 야권에서 정권을 잡는다고 보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에서 이기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 집권세력은 보수 연합입니다. 한국 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가진 세력이 뭉친 것이죠. 정권이 넘어가면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뭉친 세력인 만큼 굉장히 견고하다고 봅니다. 이런 세력을 야당이 쉽게 이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전에는 전략 전술이 뛰어난 분들이 야권에 많았어요. 오죽하면 제가 ‘민주당 몇 사람 빼오면 선거에서 이긴다’는 농담을 자주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이상하게 그런 능력을 갖춘 분이 없어요. 오히려 새누리당에 많지요. 때문에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보다 인물 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