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플러스의 게시물은 중앙일보 편집 방향 및 논조와 다를 수 있습니다.

4·29 재보궐 선거 최대 격전지였던 서울 관악을에서 승리를 거머 쥔 오신환 당선인. 사진=뉴시스
어젯밤(29일) 개표가 시작되기 전 4ㆍ29 재보선 결과를 예측해보라는 동료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현실(Sein)보다는 당위(Sollen)로 답한 이유가 있다.
나는 이번 선거 결과가 2대2가 되기를 희망했다. 선거 결과에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안했으면 하는 뜻에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제발 정치가 평상으로 돌아가 일을 했으면 해서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의 포털을 가지고 있다(나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생각은 나중에 별도 글로 밝히겠다). ‘공룡' 네이버는 종종 대한민국 사람들의 관심을 파악하는데 아주 유용한 툴(tool)을 제공한다. 남성이 더 많이 보는 뉴스와 여성이 더 많이 보는 뉴스, 또는 10대가 많이 보는 뉴스와 50대 이상이 많이 보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성별 뉴스에 대한 관심도와 연령별 뉴스에 대한 관심도를 간접 측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주일동안 이 추이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사람들은 선거에 관심이 덜하다.
‘위기의 문재인’, ‘문재인 전패’, ‘0대4 참패’ 등의 놀라운 선거 결과가 전해진 30일 아침에도 대한민국의 절반인 여성들이 많이 본 뉴스 10위 안에 선거 기사는 없었다. 여성들이 많이 본 뉴스 1위는 자녀와의 소통 기사였다(중앙일보 ‘꿈꾸는 목요일- ”돈 덩어리야 너 같은 애 낳아 고생해봐“ 이런 말 참으세요). 물론 남성이 많이 본 뉴스 10위 중 6개는 선거였다. 연령별로는 10대, 20대가 많이 본 뉴스 10위 안에 선거 기사는 한두 개였다. 대신 이들은 대학 평균 등록금이 얼마인지 하는 뉴스, 중소기업 임금이 오른다는 뉴스들에 눈길이 쏠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4곳 선거에서 2대 2의 결과가 나오면 정치권은 쉬 선거를 잊을 게다. 서로 이겼다고 할 수도 있고, 비겼다고도 할 수 있는 이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 하기엔 김무성이든, 문재인이든 쑥스러울 게다. 더 이상 선거가 누구도 심판한 게 아닌 게 되면 “자 이제 공무원연금 개혁도 하고, 경제도 살리고, 일 좀 합시다", " 우리가 선거로 정신이 팔린 사이에 일본 총리는 미국 가서 오바마와 40분간 같은 차를 타고 링컨기념관을 갔다는데…", " 미국과 일본이 밀월이라는데 우리 외교엔 아무런 이상이 없는건지", "이젠 청년 실업 해소, 창업가 육성 등에 관심을 가집시다" 등등의 얘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게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9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재·보선 국회의원 선거구 4곳 중 한 곳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사진=최승식 기자]
결과적으로 내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네티즌들이 붙인 별명대로 문재인은 ‘문죄인’이 돼야 하는 하루가 며칠이나 이어질지 모르는, 뒷끝있는 선거 결과가 나왔다.
새정치연합은 4ㆍ29 재보선 결과로 얼마나 시끄러운 판을 만들지….
선거 결과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애당초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선거에 큰 변수가 안될 걸로 봤다. 파문이 터진 지 1주일 내에 선거가 치러졌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게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가 발견된 지 이미 스무날이 지났다. 성완종이란 사람을 몰랐던 대중들은 성완종이란 '반 기업인, 반 정치인'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에 대해 대부분 알게 됐다. 스무날이면 온라인 뉴스망이 촘촘한 한국에선 여론이 스무번은 더 섞인 게 된다. 성 전 회장이 그렇게 억울하지도 않고, 새누리당만 해먹은 것도 아니고, 되려 리스트에 오른 8인보다 더 해먹은 사람이 야당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짐작 쯤은 할 수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그렇다. 성완종 파문이 보름 지난 시기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과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이렇게 여론이 특별히 어느 한 쪽을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국면에선 대개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건 구도다.
이번에 새정치연합은 불과 5개월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누구는 당에서 쫓아냈고, 누구는 당을 박찼지만, 암튼 그렇다. 반면 새누리당은 분열없이 온전한 채로 선거판에 나섰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두 사람을 상대해서 이기기는 어려운 벱이다. 하물며 내 힘과 기술과 머리로 싸우는 게 아니라 불특정 다수, 장삼이사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선거'에선 말할 것도 없다. 서울관악을 선거 결과를 일별해보면 안다. 당선자인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43.9%를 얻은 반면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는 34.2%를 얻었다. 서울 선거에서 1,2위 후보가 10%p 격차를 보였다면 드물게 큰 차이다. 이유가 있다.정태호 후보와 한솥밥을 먹던 정동영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무려' 20.1%를 가져갔다. 참고로 정동영은 2007년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대선 후보였다(그가 탈당해 출마하는 그림도 내 상식으론 이해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둘을 합치면 54.3%다. 이런 구도에서 새정치연합이 이긴다면 그게 오히려 이변이다. 다시 말하지만 선거 결과를 가볍게 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버하지 말자는 얘기다.
내가 선거를 앞두고 2 대 2를 희망했던 건 이런 ‘잔’ 계산보다 2015년 우리가 할 일이,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 세대가 할 일이 천지에 널려있고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어제 미국에선 무슨 일이 있었고, 오늘 중국의 젊은이들은 뭘하고 있고, 일본의 기업들은 어떻게 뛰는지를 보라. 성완종 리스트, 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종북 논란과 친일 논란, 1945년으로 돌아간 과거사 논란을 벌일만큼 우린 한가한가.
그래서 승자가 할 몫이 이제 더 커졌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팔을 벌려 상처입은 야당을 끌어안아야 한다. 다음에 다시 한번 제대로 붙자고 하곤 “선걸랑은 잊고 이제 우리 아들딸의 미래를 위해 일 한 번 열심히 해보자”고 달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국정 5년을 맡긴 청와대, 집권당이 된다.
할 수 있을까? 해야 한다. 김무성 대표가 달라진 게 위안이 된다.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이긴 뒤 이정현 의원을 업고 사진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과 달라진 게. 이번에는 선거 상황실에 꽃다발을 없애라고 지시하고, 낮은 자세로 "일하자"고 했단다.